회귀
수서에서 남한산성 밑 까지 가는 버스를 기다린다.
장애자 아파트 밑 프라자 아파트 옆의 치과는 몇 년 전 갔었는데 전화번호를 모른다.
빗방울은 흩날리는데 버스는 꽤나 오래 기다려도 오지를 않고 담배를 피워 물자니 버스가 닥칠까 싶어 기다린다.
10여 분도 더 기다린 것 같다.
그냥 귀찮은데 치과는 그만두고 약국에 가서 진통제나 사 먹을까 싶다.
담뱃갑을 꺼내니 버스가 모퉁이를 돌아 들어온다.
마을버스도 아닌데 이상하게 골목길을 돌아드는 버스는 제일은행 근처에서 구치소 쪽으로 향한다.
십여 년 전 S의료원에 들어가기 전 이곳에 작은처남 사무실이 있어 이곳에 있었는데..
잠시 기분전환도 하고 자원봉사도 할 겸 병원에 갔었던 것인데 훌쩍 10여 년이 지난 것이다.
떠났던 장소로 회귀한 것인가?
어느 틈에 버스 좌석에서 졸고 있는데 웬 젊은 아주머니가 손잡이를 잡으려다 손에든 검은 비닐봉투로 내 얼굴을 쳐 깜짝 놀라 눈을 뜨곤 주의해야지 라고 나무란다.
이가 아파 치과에 모처럼 가는 길인데, 얼굴전체가 욱신거리는 통증과 불편감인데 얼굴을 딱 치니 정말 화가 치솟는다.
부랴부랴 일어서 다음 정거장에 내린다.
어금니, 사랑니, 웃니 합해 무려 이 3대를 발치한다.
십년 전 쯤 우측 윗니 가 빠져 금으로 해 넣었던 것이 외레 불편하여 사용치 않다가 몇 해 전엔 위 어금니 뺀 것을 그냥 두었더니 옆 이에도 안 좋았나보다. 세월이 흐르니 어쩔 수 없지 싶다.
“숨이 답답하거나 머리가 어지러우면 왼손을 드세요.”
깍지를 낀 손을 웬만하면 풀지 않을 텐데 하도 아파 혹 손을 들게 될까 싶어 깍지를 풀고
고통을 참는다.
중간중간 엑스레이를 찍어가며 1시간 20분이 걸렸다.
임플란트를 하려면 530만원이라는 견적을 듣고 발치비용은 15,000원을 낸다.
임 닥터에게 고개를 숙여 감사를 표한다.
뚱뚱한 그는 그 퉁퉁한 손으로 어떻게 작은 입속의 발치를 하는지 신기하기는 하지만 항상 진지한 모습으로 바둑을 두던 그의 모습에 그저 신뢰를 가질 뿐이다.
치과 밑 버스정거장에서 기다린다.
아 이곳은 내가 전에 S의료원에 출근하느라 새벽에 버스를 기다리던 곳인데.
저 건너 길은 언젠가 퇴근 후 기원에 걸어 내려가는데 아들과 차를 타고 지나던 전처가 경멸하는 눈빛으로 쳐다보던 곳인데.
앞 쪽 프라자 아파트는 언젠가 미국에서 여행사에 혼자 찾아왔던 손님이 비행기 투어를 신청하며 자기가 한국에서 사는 곳이라 했던 기억인데.
정류장 옆 고기 집은 언젠가 동백여인과 약사인 동창 녀석을 만나 식사를 하던 곳인데.
이빨이 빠진 자리는 텅 빈 느낌이다.
한 쪽은 다 없어 졌으니 시원한 것일까?
머리가 욱신거리던 통증은 없어졌다.
버스는 골목길을 돌아드며 내려간다.
이 길을 걸어 오르내렸었는데.
구치소 옆 작은 병원엔 친구 녀석이 이비인후과 전공으로 동네아기들 콧구멍만 들여 보다 내가가면 반가이 담배만 같이 폈었지.
전처가 애와 같이 병원에 들렸다가 학교 졸업 표식을 보곤 얘기해 내가 찾아 갔었지.
그 옆 기원엔 사람들이 항상 많지는 않았었지.
골목골목으로 버스는 거의 가락동에 다가간다.
교촌치킨이 있다.
교촌이 있는 줄은 몰랐었는데. 이제사 본 것인가? 새로 생겼을까?
동백여인이 교촌을 하다 그만 두었었다지.
막걸리 집들이 많다.
막걸리는 전엔 정말 싫어하고 절대 안 먹는 술이었는데.
검소했던 전 처의 유일한 사치는 당시 1,200원 하던 막걸리를 사다 놓곤 저녁에 혼자 마시는 것이었지.
“몸이 아프면 병원에 가듯이 마음이 아픈 것도 병원에 가 봐야 되는 것일지 몰라.”
“내가 미친년이란 말이야?”
술만 먹으면 욕을 하고 싸움을 걸어 언젠가 한번 말해보았더니 더 악화만 됐었지.
막걸리 먹는 모습이 싫고 그 후의 일이 걱정되어 막걸리는 정말 싫어하게 됐었지.
버스는 이제 익숙한 풍경 속으로 든다.
이마트 에브리데이, 이름도 멋있고 혼자 사는 사람들에 적합한 메뉴와 소량의 찬거리들을 구색을 갖춘 나의 단골집이다.
현미만 팔기에 이것도 전기밥솥에 같이 하면 되냐 물으니 여직원은 친절하게 현미는 거칠다며 아끼바리 쌀을 권해줬었지.
미소야, 멋진 이름의 퓨전 일식집인지 들어가 본 적은 없는데.
버스에서 내리려는데 누가 휘청하며 의자를 붙잡는다.
가락시장에서 아들에게 물려주고 은퇴한 노인이군.
이곳에서 내리는 것은 기원에 가는 길이겠지.
숙소에 들어선다.
숙소에 들어서면 안도감이 드는 것은 이제 세상이 무서워서 일까? 피곤해서 일까?
기다리던 벗은 묻지도 않고
미소야에 우동정식 2인분을 주문한다.
먹어도 되는 것일까? 이빨이 괜찮을까?
잠깐 치과에 다녀 온 길이 지난 10여 년을 주마등 처럼 훝어본 길이 되었다.
사라져 가는 내 몸의 일부.
엉망이 되어가는 것이 느껴지는 몸의 컨디션.
아무것도 남은 것이 없다는 소외감.
아무것도 바라지 않게 될 것 같은 무욕감.
벗과 둘이 앉아 우동을 먹는다.
원래 우동을 좋아하지만 미소야의 우동은 초밥도 4개 곁들였다.
초밥 한 개를 벗의 그릇에 옮겨 놓는다.
입속 한 쪽으로 오물오물 작게 떼어먹는 우동가락이지만 맛있다.
내가 돌아 온 이곳에 이 순간에 벗의 존재가 따사롭다.
춥고 휑한 마음속에 우동국물은 따듯하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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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말
팔공선달
들풀처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