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일기 199, 기연(奇緣)

토요일 아침 야탑 역 시외버스 터미널에서 점촌 행 버스를 탄다.

직원 결혼식에 동료직원 셋과 소풍을 가는 즐거운 기분이다.

머리를 빡빡 깎은 청년 둘은 순수함이 얼굴과 몸에 묻어나는 동량들이다.

결혼식에 가려고 새로 사 입은 하얀 양복 윗도리는 저런 착한 청년들이 하얀 양복을 입는 의사였었으면 하고 속으로 생각해본다.

세 시간을 옆자리의 50넘은 시니어 직원과 얘기를 하며 가노라니 금새 점촌이다.

1.5km이라는 안내에 걸어서 천천히 간다는 것이 청년의 새 양복은 땀으로 범벅이다.

작은 읍으로만 생각했는데 꽤 크고 멀었다.

서울행 버스는 15:20이어 부지런히 뷔페에서 식사를 한다.

음식차림이 서울만큼 다양하지는 않아도 정갈하고 맛깔스런 것들이 많다.

문경까지 간 김에 진주에 들려보려던 계획은 도중 엄두가 안나 포기했었는데 인연의 연이 적지 않은지 대구에 들려 일행을 더하여 진주로 향한다.

고색창연한 고도에 아스라한 저녁 해지기전 아름다운 풍광 속에 도착한다.

한식집의 정갈한 찬에 장어는 별미이지만 술잔들만 바삐 나눈다.

들풀시인과 선달내외분, 점촌에서 따라온 청년 1명, 나 5명의 정담은 끝이 없다.

평소 21:30문을 닫는 것을 22:30에 닫겠다는데 시간은 15분 밖에 안 남았다.

江가에 자리를 옮겨 캔맥주와 소주 병은 연이어 즐거움을 나눈다.

노래방의 마무리는 벗 이란 단어가 부끄럽지 않게 신뢰하는 사람들끼리의 정겨운 술판이다.

언제 다시 올지 모를 진주에서 후회 없는 밤이다.

아침은 촉석루로 향한다.

매표소에서 표를 사고 돌아서니 당근님이 서계신다.

집안 결혼식에 참석하시느라 새벽 6시 서울에서 출발했는데 너무 빨리 와 구경을 오셨단다.

기연일까 깊은 인연일까?

촉석루 아래 벼랑 위에서 논개를 새겨본다.

논개의 고향은 장수 인데 그 곳에서 기생이 아니었고 후 첩 이었단다.

진주에 부임 오는데 따라 왔던 것이란다.

역사에 이름을 남긴 여인! 우리들의 어머니이자 처 이자 딸 인 여인들. 여인만도 못한 범부들은 또 얼마나 많은가? 나 자신의 이야기이군.

추어탕 집에서 석별을 나눈다.

정갈한 찬과 절묘한 맛의 김치는 어린 시절을 회상케 한다.

아스라한 여운이 남는 맛과 멋의 멋있는 여정이었다.

詩人과의 대화!

순수덩어리 젊은 청년과의 동행!

선달내외분과 당근님 형제분.

촉석루 문 앞에서 만나는 기연이지만 인연이란 예비되어 있었던 것일까?

아픔과 괴로움을 같이 나누며 서로를 위무하며 벗들이 있음을 자부 할 수 있으니 이만하면 족한 살림 아닌가?

이 모든 공은 바둑을 평생 벗으로 여겨와서 얻은 것이니 바둑일기의 마감에 기쁨으로 벅찬 아쉬움 없는 마무리를 짓는다.

내가 언제 쓰러지더라도 그들이 내 빈소를 지켜줄 것이라 즐거이 생각한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