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이코프스키

일요일 오전의 병원근무는 그리 바쁘지 않아 마음의 여유가 있다.

직원들이 잘 하는지 체크를 하며 이곳저곳 순찰을 돈다.

9시와 4시에는 성당에서 미사가 있고 개신교의 예배는 10:30에 6층 회의실에서 열린다고 원내 방송은 알린다. 근무 중이니 예배에 참가 할 수는 없지만 찬송가 소리라도 들으려 복도 밖에서 서성이는데 의자에 앉기를 권해 못이기는 체 앉아 기도를 드린다.

처의 건강을 지켜주시기를 간절히 기도한다.

직원들 모두에게 각자 소중한 직장이니 한 번 더 그들의 입장에서 생각하며 설령 부족한 점이 있어도 인사 조치를 하기 전에 부족한 부분을 고치고 채워 나갈 수 있게 선량한 인도자의 역할을 하리라 다짐해 본다.

차이코프스키와 만나는 밤 이라는 제하에 병원로비에는 무대를 설치하고 러시아 심포니 오케스트라 단원 4~5십 명이 준비를 한다. 신관건설시 후원을 한 분들에 대한 감사의 표시로 마련된 음악회라는데 러시아 단원들을 초빙하는데 적지 않은 경비가 들었을 것으로 내가 괜히 걱정이다. 오후 늦게 공연은 시작되나본데 1시경부터 도착한 단원들은 준비를 시작한다.

국제진료소와 가정의학과 외래 진료소등에 짐을 보관하고 옷을 갈아입는데 예술인들도 사람은 같은 것인지 러시아 단원들은 진료소내의 자동혈압체크기에 서로 팔뚝을 집어넣어 본다.

자리를 잡고 관악기들은 뒤편으로 바이올린 등의 현악기는 앞쪽에서 지휘자에 맞춰 연습을한다. 고교 밴드부의 관악기 공연에 지지난해 다녀온 적은 있지만 이런 공연연습을 보기는 처음이다. 음률과 제목도 모르지만 연주곡에 끌려 2층 발코니에서 내려다보며 뭔지 몰라도 음률에 마음이 끌리며 차분해 지는 기분이다.

일요일 점심 무렵의 병원은 한가하여 현장을 벗어나 사무실로 가 본다. 콜센터에 오더가 들어오는 추세를 한 눈에 알아볼 수 있다. 여직원중 하나는 소장의 자리에 앉아 다른 의자를 앞에 끌어당겨 놓고 두발을 쭉 뻗고 앉아있다 내가 들어가도 못 본 채 그대로이다. 콜 담당 남직원 하나는 유니폼도 갈아입지 않은 채 병동의 전화를 받다 쾅하고 내리치며 전화를 끊는다. 젊은것들이 정말 싸가지가 없군 싶다. 여자애는 27~8세 정도 되었을 것이고 이름도 모르지만 얼마 전 회식자리에 갔을 때 술은 엄청 처먹는 것을 보았었다. 30초반이나 됐을까 싶은 남자 녀석은 소장이 전에 근무하던 병원에서 수하직원이어 데리고 왔다던데 저리 싸가지가 없는 것을 소장만 모르고 계시는 것일까? 현장 근무 직원들 중 근태불량이나 부적절한 근무자세 등으로 이달에만 셋이 잘린 것을 저것들도 알고는 있을 텐데 자신들은 콜 담당으로 사무실에 근무하니 다르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속으로만 생각하며 말 한마디 하지 못한 채 내가 오히려 슬그머니 사무실을 나가버린다.

러시아 심포니 오케스트라 단원들의 연주를 들으며 마음을 삭힌다. 대학시절 명동의 클래식음악을 틀어주는, 극장처럼 의자를 죽 늘어놓은 좁고 답답한 공간에서 감상을 하던 기억이 난다. 잘 알지도 못하는 클래식이지만 졸지는 않았었던 기억이다. 고교1학년 때는 슈베르트에 대한 글을 써서 교지에 실리기도 하였었지. 병원에 근무하는 덕에 러시아 심포니 오케스트라를 다 볼 기회가 생긴 것일까? 음악과 문화는 접해 보아야 선입견등이 달라지는 것은 몇 번 체험을 했다. 티브이에서 젊은 애들이 노래하며 백댄서라고 남자들이 뒤에서 춤추는 것을 보면 왜 저 짓을 할까 싶었다. S의료원의 매주 목요일 공연에 언젠가 우연히 성시경인지 하는 가수가 노래를 하고 백댄서 남자들이 춤추는 것을 가까이서 보게 되니 젊은이들의 힘찬 박진감이 느껴지며 노래도 마음에 와 닿는 것을 느껴 본 적이 있었지. 구 소련지역이건 히말라야의 산자락 소수민족 마을이건 의료봉사가 끝난 후 마을사람들과 어울려 춤추고 노래할 때는 무언지 모를 동질감과 흥을 느끼게 된다.

그래 내 자식들도 내 마음대로 안 되는 세상인데 남의 자식들에게 잘 하기를 바랄 필요도 없겠지. 아웃소싱 비정규직 작은 업체에 근무하는 젊은이들이 자신들의 처지를 비관하며 그저 시간이 지나기만 기다리는 것인지도 모르지. 육사의 젊은 생도들처럼 국가관과 사명감이 투철하고 知와 勇을 겸비한 선남선녀들이 근무하러 올 회사가 아니지.

차이코프스키의 선율은 그저 마음속을 부드럽게 흐른다.

빨리 퇴근해야지.

빨리 전화를 해 처의 목소리를 듣는 것이 내게는 가장 큰 기쁨이지.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