똑딱. 똑딱.

세상의 모든 수다를 다독인 새벽의 인내는 시계소리만 불침번으로 세워놓았다

하루를 정신없이 보내고도 알량한 소득은 하루하루 벌이에 일희일비하는 직업이라

내일 할머니 뵈러 가는 길을 무겁게 한다.

커피 한 모금에 길게 뿜어 낸 담배 연기 닿는 곳에 자학과 변명과 위로가 뒹굴고

나의 고독은 달빛 스며드는 창가에 쪼그리고 앉아 이젠 꾸벅이며 졸고 있다.

담뱃재 떨어지는 소리가 요란하다

새벽은 그것을 느끼기 전에 그의 침묵으로 소리가 되어 전한다.

좋은 생각으로 실천한다면 우리네 삶은 모범이라 말하고 깨우침은 방해가 된다고 한다.

생각마저도 거추장스럽고 가식인 깨우침은 모범을 앞서 있고.

모범도 힘겨우니 깨우침이야 언감생심이라 해야겠지만 우리의 오만은 그것을 앞서있다

정직이 어리석고 겸손이 비굴하거나 가식이 되어버린 세상에서 그리운 건 사람이다

나를 잊지 않고 찾아주는 사람.

내가 어리석고 비굴하거나 가식적인 사람이 아니라 믿어주는 몇 안 되는 사람이…….

“동생 나야”

이미 입력해 둔 이름이 떠 있어 상대를 알고 있다.

“네. 형님 반갑습니다.”

“나 지금 경주에 있는데 내일 잠깐 들러 얼굴이라도 보고 갈려는데 시간 어때.”

“시간이야 형님이 내라면 24시간 방목해 놓았잖습니까.”

앞 뒤 가릴 것 없이 튀어나간 말들을 이제야 추슬러 본다.

오늘 부지런히 벌어서 어머님 모시고 할머니 뵈러 갈려고 했는데 너무 쉽게 말했나.

내가 일하는 날에는 여태 연락하지 않았던 분이라 순간적으로 뭔가 있다고 생각했었다

사연이야 후에 들어 보면 알 것이고 나의 사정은 잠시 제쳐 놓았었다

“그런데 말이야…….”

경주에서 일이 끝나고 김해공항으로 가야하는데 서너 시간 여유가 있어 들르려는 것이고

서울 가는 차편으로 올라오다가 만나자는 것인데 고속도로에서 만나자는 것이다

지금껏 여러 번의 만남을 가졌었지만 이번은 예외도 특별한 예외다

완전 007작전을 펼치자는 것인데.

얼른 대구에서 가까운 경산휴게소에서 내리면 어떻겠느냐는 말에 그러자고 했다

“그러면 제가 모시러 가죠.”

그러나 돌아서 가만히 짚어보니 경산 휴게소는 지척에 두고 영천까지 가서 되돌아와야 했다

아닌데.

그 정도 거리가 우리 만남에 장애가 될 수는 없지만 뭔가 비능률적이었다.

전날 전화를 받고 우렁각시에게 통보(사실은 결재 ^^:)했다

“형님께서 그 정도로 연락이 왔다면 다 이유가 있겠지요.”

나와 같은 반응에 고마웠고 일단 아침에 출근시간 전이니 자기도 뵙고 간다고.

“그래서 말이야 영천으로 갔다가 돌아와야 하니 아침에 조금 서둘러…….”

여기서 불현듯 떠오르는 생각이 있었다.

그래. 휴게소는 아니다.

정상적인 장소는 아니지만 톨게이트 진입로에서 만나면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 나는 영천을 왕복하는(100Km 가량) 수고와 경비를 절감할 수 있었다

“아니 그러면 나보고 거기서 톨게이트까지 걸어오라고.”

이런 영감탱이하고는.

처음엔 뜻밖인 듯 서로 소통이 되지 않았다. 하지만 몇 번의 설명으로 소통을 이루고

우리는 고속도로 팔공산 톨게이트 입구에서 만나기로 하였다

서로를 신뢰하지 않으면 이루어지기 힘든 약속이다

아닌 말로 내가가지 않으면 거기서 실제 미아가 되는 것이고 사막이나 다름 아니니

나는 여타 불가피한 사정도 용납되지 않았다.

신년 만남으로 그것도 딱 한 시간 반의 만남을 위한 우리들의 긴박한 작전이었다.

약속장소에 미리 도착해 기다리는데 예상보다 시간이 늦어졌다

혹여 잘못 내렸다면.

사실 경주 쪽에서 올라오면서 팔공산 톨게이트까지는 두 곳의 IC (동대구. 포항)가 있다

불안감으로 전화를 하니 불통이다.

고속도로 갓길에서 기다리는 것도 불안한데 10여 차례나 했는데도 연락두절.
차에서 내려 휘달리는 차들의 물결속에서 애타게 기다리다 추워 다시 몸을 녹이고
다시 내려서 기다리다 전화해 보고.
나중엔 별의별 생각들이 난무하고 불안한 마음에 담배만 줄기차게 피워됐다

예상시간보다 30여분이나 지나서 연락이 왔고 이유는 손님과 수다라.

여튼 정초부터 가치 한 마리 접대하는데 애간장을 다 녹이고도 우리의 만남은

한 시간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별도로 준비도 하지 못했으나 그래도 신년만남에 사나이들이 시간을 따지겠나.

오는 길에 등심 한 근을 사오고 소주 두병을 곁들였다.

형님은 반병 나는 한 병 반을 그간의 안부와 작년에 있었던 잠깐의 오해를 양해하고

오로 얘기와 인연의 애매모호하고도 오묘한 행마를 논했다

인터넷으로 만난 지도 벌써 5년이 넘어간다.

한 시간의 이야기는 별 의미가 없지만 그 한 시간을 있게 한  시간들이 더 소중하다

아마도 우리의 만남은 이번 외에도 앞으로도 특별한 더 많은 추억들을 만들 것 같다

그것은 서로를 비교하지 않고 상대를 인정하고 나를 믿어주는 상대를 믿기 때문이리라

누구인지는 밝히지 않는다.

본인이 직접 밝힌다면 몰라도 글로 짐작하는 그 사람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말하고 싶은 것은 환경이 어떻든 간에 만남은 목적에 앞서 믿음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그래야만 오래도록 지속되고 그 만큼 외롭지 않다는 것.

나이가 들어가면서 그것이 더욱 절실해지는 까치 한 마리 다녀간 임진년 어느  날 기억을
새벽녃에 추스려 둘 만의 추억의 온기를  여기  내 생각의 단지에 담아 보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