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애는 머릿속이 혼란스러워졌다. 돌변한 직원의 태도는 그녀의 본능에 위기 신호를 보냈다. 몇 차례 경기 진행을 한 것 외에는 아무것도 알지 못하는 김회장이라는 사람과 처음 보는 그의 일행들, 알지 못하는 곳의 비밀스러운 방에서 자신을 제압하려는 사람과 같이 있는 자신.

‘내가 너무 경솔하게 경계심을 풀었다. 자칫하면 내가 매우 위험한 지경에 빠질 수도 있다.’

여자이기에 갖는 위기감일 수도 있지만, 정애는 자신이 지금 우호적이지만은 않은 상황에 빠진 것이라는 것만은 확실하게 이해했다.

‘어떻게 하든 마성씨에게 연락을 해야 한다.’

정애가 고분고분해지자 직원의 낯빛이 다시 부드러워졌다.

“여기에 오신 분들은 자신에게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날지 대략 짐작하고 계시죠. 저희도 그 일을 위해 준비를 해드리는 것입니다. 어떤 분들은 아예 기대까지 하고 오시는 분들도 있죠. 이곳을 나가실 때에는 꽤 후한 보상을 얻고, 거기에다 이곳에서 충분하게 즐길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고객님은 처음이신 듯해서 참고삼아 말씀드립니다.”

“그 일이라는 것이 뭐죠?”

정애의 얼굴이 더 굳어지며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전혀 모르고 오신건가요? 여기는 섹스파티를 하는 곳입니다. 온갖 일들로 세상에 지쳤거나 세상의 일에 흥미를 잃은 사람들이 마지막으로 찾는 돌파구이자 피난처.”

정애는 아찔해져서 눈을 질끈 감아버렸다. 염려하던 일이 현실로 나타나자 두려움이 점점 그녀를 조여 왔다.

“보시다시피 저는 예쁘지도 않고 몸매도 그저 그런데요. 거기에다 나이도 적지 않아요. 저분들이 왜 하필 저를 골랐을까요?”

“미안한 말이지만 나도 그쪽이 왜 선택되었는지 잘 모르겠어요. 하지만 회장님이 접대하려고 하는 분의 취향이 독특할 수도 있는 일이죠.”

이제는 편한 상대방에게 말하듯이 직원은 사실들을 말해주었다.

“그러면 저는 지금 회장이라는 분이 누군가를 접대하기 위해 데려온 접대부 신분인가요?”

정애의 말에 그녀는 잠시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마치 아무것도 모르고 납치라도 당했다는 듯 말을 하시네요. 세상 돌아가는 이치 뻔히 아는 사람들끼리 숨기려 들지 맙시다. 당신도 즐기고 싶었거나 돈이 욕심났던 거 아닌가요?”

직원은 아예 그녀를 접대부 취급을 하고 있었다.

정애는 그녀를 조심스럽게 살폈다. 꽤 강단 있어 보이는 몸이었다.

‘저 여자를 제압하고 이곳을 나가는 것은 불가능해보이네. 그래도 기회를 찾아야 돼. 이렇게 당할 수는 없어. 나는 절대로 내가 원하지 않는 섹스는 못해.’

이것은 정애에게는 신조였다. 섹스를 좋아하고 즐기자는 생각이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자신이 원하는 상대와 원하는 때의 행위였다. 강간당하듯 하는 섹스는 절대 용납할 수 없는 것이었다. 그렇지만 지금은 자신에게 어떤 일이 닥칠지 가늠되지 않았다. 다만 앞으로 분명 누군가와 원하지 않는 섹스를 해야 할 것 같았고 그 대상은 김차관일 가능성이 매우 높았다.

‘내가 이곳을 무사히 빠져나갈 수 있을까?’

이제야 김회장이 직원을 자신에게 딸린 이유가 납득이 되었다. 행여 붙잡아온 여자가 딴 마음을 먹지 못하도록 감시하도록 하는 것이었다. 후회와 절망감이 그녀를 휘감았다.

“어머! 울면 어떻게 해요. 기껏 단장을 시켜놨는데 다 망가지잖아요.”

당연하게 이 직원의 관심사는 그녀의 마음이 아닌 망가지는 화장이었다. 그렇지만 같은 여자의 입장이라서 그런지 직원은 급 친절해졌다. 아마 그녀를 달래보려는 심산인 것 같았다.

“미안해요! 하지만 지금 제 처지가 너무 한심하네요. 집에서 아이가 혼자 있는데 밥은 먹었는지 잠은 제대로 잘 것인지 걱정도 되고요.”

“어머나! 아이까지 있어요?”

“네. 여자아이요. 혼자 자면 무서울 텐데 잘 자라고 말도 못해주고.”

여직원의 얼굴에 잠시 흔들리는 느낌이 일었다.

“아니, 무슨 애까지 있는 여자를 데려온 거야. 정말 취향이 이상하시네.”

갑자기 신경질적으로 변한 그녀를 의아한 얼굴로 물끄러미 바라보자, 그녀는 아까 가져갔던 휴대폰을 툭 던져주었다.

“짧게 딸하고만 통화해요. 이상한 짓하면 즉시 전화기 다시 빼앗을 겁니다.”

“어머 정말요?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정애는 연신 고개를 꾸벅이며 전화기를 들었다.

“민지야! 아직 안 잤어?”

“엄마 어딘데 아직 안 오고 전화만 해?”

“응! 엄마가 아직 일이 안 끝나서. 민지 먼저 잘래? 혼자 잘 할 수 있어?”

“걱정 마, 엄마! 나 혼자서도 잘하잖아. 그리고 아까 아저씨도 전화해서 엄마 늦을지도 모르니 혼자서도 잘 자라고 말해주셨어.”

“그랬구나. 우리 딸 굿나잇.”

통화를 마치자마자 옆에서 그녀를 감시하던 직원이 다시 휴대폰을 나꿔 채갔다.

“내가 밖으로 통화 하도록 허락한 거 비밀이에요. 위에서 알면 나 맞아 죽어요.”

“그럼요. 딸과 통화까지 하도록 해주셨는데!”

“자 그럼 치장 마무리합시다.”

임무를 마친 직원은 밖으로 나가면서 문 옆에 있는 무슨 버튼을 눌렀다.

‘준비를 마쳤다고 신호라도 보내는 가보네.’

할 수 있는 것이 아무 것도 없는 그녀는 닥쳐올 일이 두려워 잔뜩 움츠러들었다. 무섭기도 했다. 그런데 잠시 시간이 흐르자 이상하게 위축되었던 마음이 점차 느긋하게 여유로워졌다. 마음의 무슨 조화인지 알 수 없었지만, 여유를 되찾은 그녀는 편안한 자세로 침대에 누웠다. 그렇게 시간이 조금 더 흐르자 방안이 더워졌다.

‘난방이 너무 되고 있나?’

그렇지만 그녀는 이내 자신의 몸이 흥분상태로 변해가고 있음을 깨달았다. 배란기가 되어 조그마한 자극에도 몸이 예민하게 반응하던 때의 기억과 비슷한 기분. 그녀는 슬그머니 클리토리스를 만져보았다.

“허억.”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신음을 내뱉었다. 아무리 배란기였어도 지금처럼 살짝 건드린 자극에 이렇게 강력한 쾌감이 온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이상한 느낌에 그녀는 다시 한 번 더 조금 강하게 클리토리스를 건드렸다.

“어헉.”

자신도 모르게 고개가 뒤로 제처 지는 쾌감이 온 몸을 엄습했다. 이상하다는 생각과 달리 그 쾌감이 너무 강렬하여 그녀는 다시 자극을 가했다.

“으어어어.”

그녀는 손가락을 질 속으로 집어넣었다.

“아아아아.”

그녀 앞에 닥쳐있던 현실의 불안과 두려움은 이제 몸의 쾌감에 떠밀려 사라져 버렸다.

“잘 익고 있습니다. 이제 드시기만 하면 될 것 같습니다.”

다른 방에서 모니터를 바라보던 김회장은 김차관을 돌아보며 말했다.

“저렇게 흥분제까지 풀어놓아 잔뜩 몸이 달아올랐으니, 안 그래도 명기인 몸이 더 난리 났겠네요. 이거 무척 기대됩니다.”

김차관이 옷을 벗으며 말했다. 벌써 그의 입에는 침이 잔뜩 고여 있었다.

“몸 축나시지 않게 조심하셔야 할 것 같습니다.”

“지나친 걱정은 몸에 해로우십니다. 이래봬도 명기 사냥꾼 경력이 십년을 넘었습니다. 잘 먹고 올 테니 이따 보시죠.”

그가 방안으로 들어서자 정애는 화들짝 놀랐다. 은밀한 행동을 들킨 수치심과 갑자기 들어온 이방인에 대한 경계심이었다. 하지만 마음과 달리 몸은 자위의 행위를 멈추지 못하고 있었다. 더구나 그녀의 눈에는 방에 들어선 이가 윤철로 보이기까지 했다.

“네가 어떻게 알고 왔어?”

그러다 그 남자는 다시 마성으로 변했다.

“아! 자기였구나. 내가 안와서 찾으러 온 거야?”

김차관은 그녀의 반응에 괘념치 않았다. 이 환각제에 취하면 어떤 여자든 보이는 반응이었다. 그는 말없이 그녀에게 다가가 그녀를 안았다.

“내가 너를 얻으려고 얼마를 애쓰며 기다렸는지 알아?”

“나도 자기를 만나려고 살아온 것 같아.”

정애의 마음은 마성에게 포근하게 안겼다.

“네가 나를 누구로 생각하고 있든 그건 아무 상관없어. 중요한 것은 네가 내 품에 있다는 사실이니까. 나는 이럴 때 권력이 내게 있음에 자부심을 갖는다. 모니터로 이 방을 보고 있을 저 늙은이가 무엇 때문에 너를 자기가 차지하지 않고 내게 상납했겠니. 너는 이해할 수 없지? 몰라도 된단다. 이 세계가 가지고 있는 먹이 사슬이 몹시 복잡하고 너저분한 일이거든.”

김차관은 서두르지 않았다. 이 순간만큼은 모든 것을 잊고 마음껏 누리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