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딩동.”

초인종 소리가 나자 민지가 재빠르게 현관으로 뛰어가며 말했다.

“아저씨 오셨나봐.”

현관문이 열리자 두 손 가득히 선물꾸러미와 꽃을 들고 마성이 환하게 웃고 있었다.

“어서 와요.”

그는 반기는 그녀를 가볍게 안아주고는 민지를 번쩍 안아들었다.

“아가씨, 다시 만나게 돼서 반가워요.”

까르르 웃는 민지의 웃음이 집안에 가득 퍼졌다. 정애는 아이의 웃음소리만으로도 집안에 행복한 기운이 가득해진다는 것을 오늘 처음 느꼈다.

“음식 준비하느라 힘들었지요. 밖에서 먹자니까.”

손수 저녁을 지어 먹이고 싶은 그녀의 마음을 모르지 않음에도 그는 고생했을 그녀가 안쓰러웠다.

“자기가 아무거나 잘 먹는다고 해서 도전은 해봤지만, 맛없다고 타박하면 안돼요.”

“혹시 너무 맛있어서 아예 눌러 앉고 싶으면 어떻게 하지.”

둘의 대화에 민지가 끼어들었다.

“그러면 우리랑 같이 살면 되지요.”

“와! 기분 좋은걸. 방금 봤죠. 나 민지에게 허락받은 거”

“민지야, 너무 쉽게 허락한 거 같은데.”

“아니야, 엄마. 아저씨가 우리를 엄청 사랑하는 거 같아. 맞죠, 아저씨.”

“그걸 어떻게 알았을까. 민지 참 똑똑하네.”

“그래서 나도 아저씨를 좋아할 거야.”

“얘 좀 봐. 자기는 대체 어떻게 민지 마음을 사로잡았대요.”

“동물하고 아이들은 본능적으로 착한 사람과 악한 사람을 구분할 수 있대. 그러니까 민지가 착한 사람을 척 보고 알아낸 거지.”

“말이 갑자기 이상해지는데요.”

세 사람이 한바탕 웃었다.

알콩달콩 즐겁게 식사를 마치고 가벼운 게임을 하는 동안 민지가 졸음이 오는지 하품을 했다.

“민지 졸려?”

“응, 엄마. 아저씨 나 잘게요. 가지 말고 내일 아침에 또 놀아줘야 돼요.”

“그럴게. 아저씨가 재워줄까?”

정애는 딸을 안고 들어가는 마성을 보며 마음 한구석에 묘한 울림을 느꼈다. 그녀는 주방과 거실을 정리하며 와인과 안주를 준비했다. 오래지 않아 그가 방을 나왔다.

“민지가 빨리 잠들었네요.”

“피곤했나봐. 몇 번 토닥이지도 않았는데 숨소리가 쌔근거리던걸.”

“애가 자기를 잘 따라서 정말 다행이에요.”

“그러게. 고맙고 잘된 일이야.”

“우리 와인 한 잔 하고 자요.”

그녀가 주방에서 와인과 안주를 들고 나왔다.

“좋지. 어느새 이런 걸 준비했네.”

두 사람은 거실 조명을 분위기 있는 무드 등으로 바꾸고 여유를 만끽했다.

“제대로 고맙다는 말도 못했네요. 아파트 정말 고마워요.”

“몇 번이나 감사를 하네. 자기와 민지가 편하고 행복하게 지내는 것을 보니 내가 더 좋아요.”

두 사람은 분위기에 취해 자연스럽게 애무를 시작했다. 편안하고 행복한 마음은 섹스의 만족감을 크게 배가시킨다. 서로에게 신뢰를 가지고 있고 존중하는 마음이 있다면 만족감은 거기에 다시 배가된다. 서두르지 않고 부드럽게 그리고 따뜻하게 서로는 서로에게 녹아들었다.

“여기서 하게요? 민지가 깨서 나오기라도 하면 어쩌려고.”

“방으로 가요. 당신이 신경 쓰이면 멋진 섹스가 어렵지.”

말을 마치고 그는 그녀를 안아들었다.

“어머, 나 보기보다 무거울 텐데.”

그녀는 그가 힘들까봐 두 팔로 그의 목을 힘껏 안았다. 그렇지만 그는 별로 힘들지 않는 것으로 보였다. 한 손으로 문까지 여유롭게 열고 침대에 그녀를 살며시 내려놓았다. 그리고는 침대 맡에 무릎을 꿇고 정성스럽게 그녀의 옷을 즐기듯 천천히 하나씩 바닥으로 떨구었다. 두 사람의 몸에는 실오라기 하나도 남지 않았다.

‘나를 황홀경으로 데려가줘요.’

그녀의 몸이 그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렇지만 그는 선뜻 손길을 뻗지 않았다.

‘기대하며 기다리게 하는 것도 직접적인 자극에 못지않게 효과적이다.’

오로지 이 순간을 맞이하기 위해 지난 수년을 살아왔었다. 수많은 섹스 경전을 섭렵하고 그가 얻은 결론은 명료했다.

‘서두르지 않고 여유롭게 행하는 섹스만이 둘이 함께 극치감에 다다를 수 있다.’

세상에 존재하는 단어들 중 가장 다양한 가짓수가 있는 것이 ‘섹스’라는 낱말일 것이다. 품위 있는 단어부터 저속한 단어까지 구사하는 계층과 상황과 필요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또한 모든 생명체에 궁극의 행위다. 대부분의 생명체는 종족 번식과 후손을 이어나가기 위해 이 행위를 한다. 그러나 오로지 인간만은 즐기기 위해 이 행위를 하기도 한다. 아니 인간 대부분의 이 행위는 즐기는 것이 목적이 되어있다. 이런데도 극히 일부의 인간은 섹스를 경멸하고 불결하게 여기며 저속하게 여긴다. 전처와 마찬가지로.

먹잇감이 풍부한 시기에 배란이 시작되고 그 배란기에 맞춰 교미를 하는 생명체들과 달리 인간은 먹잇감의 굴레에서 일찍 해방되었다. 그에 따라 인간은 매달 배란이 가능해지는 진화를 이루어 현재에 이르렀다. 그렇지만 임신기간은 10개월로 그대로 유지되는 언밸런스가 발생하자 또 다른 상황이 되었다. 배란기가 되어 여성의 성적 욕구가 강해졌고, 남성은 그 욕구를 해결해 줄 수 있어야 했다. 자기 짝의 욕구를 해결해주지 못하면 다른 대상에게서 욕구를 해결하려는 시도가 생기게 되는 때문이다.

남성도 드디어 자기 짝이 임신된 동안에 다른 여성에게도 임신을 시키려고 주변을 두리번거리게 되었다. 이는 남성의 잘못이 아닌 진화의 산물이다. 다양한 DNA만이 각종 질병과 다른 생명체들과의 경쟁에서 살아남아 종족을 보존할 수 있기에 이런 방향으로 진화가 진행된 것이다. 드디어 남성은 여성에게 즐거운 교미를 해주면 교미의 기회가 더 많이 생긴다는 진리까지 깨달았다. 고대로부터 다양한 경전들이 전해져 오는 까닭이다.

그는 ‘접이불루’에 주목했다. 수많은 후궁과 궐내의 젊은 여자들을 상대해야 하는 지존. 그를 위한 방중술에 대한 고민이 만들어 낸 기교. 그렇지만 대부분의 남성들은 잘 안다. ‘사정’의 쾌감을! ‘사정’없는 섹스라니 그것을 왜 한단 말인가. 그건 종족유지 본능에 어긋나는 행위다. 그러기에 일반 남성들에게는 아무 의미가 없는 지침이었다. 그렇지만 그에게는 금과옥조의 지침이었다. 그는 섹스의 목적이 달랐다.

극치감을 얻는 것이었다. 그렇지만 그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극치감은 혼자만의 만족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상대방과 함께 해야만 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여성의 흥분 주기는 남성과 사뭇 다르다. 남성은 불과 몇 분 만에 사정을 하기도 하지만 여성은 적어도 수십 분의 시간이 필요하다. 이 극명한 시간 차이를 극복하는 방법을 터득해야만 ‘극치감’은 얻을 수 있는 것이다.

그는 잘 안다. 파트너를 만족시켜야 자신도 만족할 수 있고, 그런 분위기 속에서만 둘이 함께 궁극의 쾌감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을. 그는 파트너가 오르가슴에 다다르도록 도움을 주는 섹스에 자신도 만족하도록 스스로 진화를 이루었다. ‘접이불루’는 그를 통해 새로운 의미를 가지게 되었다. 이전에는 여러 파트너와 섹스를 더 많이 하려는 것이 목적이었다면, 이제는 순도 높은 쾌락의 경지에 이르기 위해 그것이 필요해졌다. 마성은 거기에 한 가지 진전을 더 이루었다. 길고 힘든 수련을 통해 ‘무동사정’의 경지를 얻은 것이다. 일반적으로 남성의 사정은 사정에 관계하는 근육, 신경들이 있어 사정, 발기의 사령탑인 전립선의 작용으로 골반근육의 강력한 수축작용에 의해 일어나는 시스템이다. 그러나 불행히도 근육의 수축에 의한 사정이 일어나면 음경해면체, 요도해면체의 근육 수축과 요도동맥의 수축으로 성기가 쪼그라든다. 심장 근육처럼 불수의근인 근육들이 호르몬의 지배를 받는 것이다. 마성이 터득한 ‘무동사정’은 근육의 수축 없이 사정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사실 사정과 오르가슴은 별개의 시스템이다. ‘무동사정’의 가장 매력 있는 장점은 사정 후에도 음경이 수축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의 손길을 기다리며 호흡이 거칠어지던 정애가 살짝 움직였다. 그의 손길이 필요한 순간이 되었다. 그는 손바닥을 둥글게 오므리고 손가락들을 이용해 여체를 더듬어 나갔다. 부드러운 촉감이 목덜미와 가슴을 지나 옆구리의 곡선을 타고 내려가자 여체는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그의 손길은 아담하고 탄력 있는 엉덩이로 향했다. 두어 차례 엉덩이를 감아 돌던 그의 손길이 그녀의 회음부를 거쳐 덤불이 우거진 계곡에 접어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