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고費

조용히 일어나 샤워를 하고 살그머니 처가 깨지 않게 출근을 하면 되는데 화장실에서 나와보니 어느 틈에 일어나 와이셔츠와 여름양복 상의를 다려놓았다. 푹 자는 모습이 내게는 더 안심이 되는데 우리는 둘 다 종달새인가보다.

두 잔 째 의 커피에 토스트를 먹는다. 평소 아침은 거르는 것이 버릇인데 미금 역까지 부득불 차를 태워주겠다며 조금 남는 시간을 풍성하게 채워준다. 5:35분 도착하니 30분에 첫 차는 지나갔나 보다. 6:05 분이 되어도 오지 않는 차에 불안해하니 서초동까지 부득불 태워준다. 석탄일 휴일 아침 이어 막힘 없는 차 속에서 처의 건강과 안전운행을 걱정해본다.

Night 번 과의 교대 후에도 Routine Job 아침 엑스레이를 찍는 환자들의 행렬은 끝이 없다. 임상병리과로 출근하는 직원 둘과 Day 번 이송담당 6명, 응급실 1명, 콜 센터 2명, 약제부 3명, 모두 이상이 없다. 21층의 VIP병동부터 아래로 Rounding하며 각 병동의 차지(선임 간호사)와 AN(여자 보조원) 들과 인사를 나누고 우리직원들과 관련된 업무 만족도, 평가 등을 청취한다. 병동 별로 중앙의 큰 휴게실과 양측의 작은 휴게실을 모두 돌아본다. 혹시 벌써 구석에 쳐 박혀 일은 뒷전으로 미루는 직원은 없는지. 간호부에서도 순찰 라운딩이 있으니 나라도 자주 다녀야 경각심을 가질 텐데 모처럼 한가한 휴일 이어 시간을 내 보았다.

중환자실의 경우 머리수술을 한 NS ICU 환자가 겉보기에는 주의를 하며 이송에도 힘 들 것 같지만 내과 중환자실(MICU) 환자가 가장 어렵고 신경을 써야 한다. VRE 나 MRSA같은 슈퍼 박테리아 감염도 보편적 이어 평소 직원들 교육과 안전에 치중해야 하는데 아직 부족한 점이 적지 않다.

내과 중환자실에서 병동으로 가는 환자를 이송하는 우리 직원을 돕는다. 말 한마디 없던 할머니 환자는 병실에 도착해서 침대를 누워서 옮겨진 채 그제서야 손에 꼬깃꼬깃 말아 들고 있던 만 원짜리 몇 장을 아들인지 보호자에게 건넨다. 아무 말 없이 받는 보호자. 저 돈은 무슨 의미일까? 속으로 생각한다. 간혹 이송에 수고했다고 잔돈을 건네 주시는 환자나 보호자도 계시긴 하다. 좋은 옷에 부유해 보이는 이들은 절대 그런 경우가 없고 시골 깡촌에서 올라온 듯한 할머니 들이 주로 그러신다. 사양할 까봐 슬그머니 주머니에 찔러 넣어주시는 것을 나중에 보면 일 이만 원이다. 그런 경우에는 간호 스테이션에 신고하고 그 돈은 사회복지과로 보내졌다가 인근의 복지원 등으로 보내진다.

언젠가 벌써 꽤 오래 전 중환자실의 보호자 한 분이 대형 고급 차에서 내리며 옷차림도 화려한 여자분이 바로 그 날 그분의 가족이 병동으로 이송되는데 엘리베이터 속 뒤 켠의 그 여자분은 주머니에서 돈을 꺼내 세는 소리가 들린다. 불안했다. E/L 속의 감시카메라에 찍히면 괜한 오해를 받겠구나 싶었다. 돈 세는 소리는 한 열 장은 되는지 한참을 세더니 주머니에 뒤에서 찔러 넣으며 사양하는데도 뿌리친다. 나중에 보니 천 원짜리 10장 이었다.

직원들에게 절대 돈을 받으면 안 된다고 교육을 시키는 것을 잊고 있었는데 할머니가 우리 젊은 직원에게 수고비 감사의 표시로 주려는 것이 아닌가 일순 걱정했는데 기우였나보다.

연휴인데도 출근하신 소장과 담배를 피우며 이야기를 나눈다. 젊은 소장은 머리회전이 비상하다. 나도 젊었을 때는 저리 똑똑했을까?

문득 옛 생각이 난다.

대형화재 후 6개월간 워카를 신고 집에도 안가며 재건축한 공장이 다시 부도가 나 비상대책위원장으로 일하며 앞문에는 법원 집달리들이 떼로 온 것을 막아내며 뒤쪽 공장의 화재에 불길이 옮겨지지 않게 비상대책을 지시하는데 마침 놀러 왔던 친구가 한 말. “너 참 대단하다.”

“집에서도 병원 걱정만 되요.”

소장은 내게는 부담이 없으신지 마음 속을 털어 놓는다.

소장의 짐을 덜어드리고 걱정을 미리미리 일 처리를 완벽하게 하여 사전예방을 해야 하는데 어깨가 무겁다.

신관 21층의 우리인원이 90인데 구관이 리모델링이 끝나 예정대로 600병상의 호스피스 병동으로 탄생하면 신관과 합해 1800 병상에 우리인원도 1~2 백 명은 늘어날 텐데 초기에 기틀을 잘 잡고 병원 측의 신뢰를 얻어야 할 텐데 내 능력으로 가능할까?

백의종군이라더니 자원봉사를 하는 분들도 많은데 월급 받으며 하는 일이니 더 열심히 해야겠지 싶으며 소신껏 즐겁게 일 할 수 있는 처지이니 분골쇄신 해야겠지.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