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별이 쉬운 문제가 아닌 것 같다..

분별이란 의타기성을 말하는 것이니까 연기법을 말하는 것이다..

그런데 유식학에선 의타기성의 인식에 따라서 원성실성과 볍계소집성으로 갈라진다고 한다..

공감이 가는 말이다..

이전에 좋아한 말 중에서 연기법을 선용하는 것이 보살이라는 말이 있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금강경의 구절에 비해선 쓰임에 치중한 말인 듯한 느낌이 들었다..

금강경에선 무아법에 통달하는 것이 보살이라는 말이 나오는데 이 말은 비교적 본체에 치중된 느낌이 들었고, 반면에 연기법을 선용하는 것은 쓰임을 중시하는 듯한 느낌이 들었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느낌은 결국 둘이 같은 말이라는 것처럼 느껴지곤 했는데

왜냐하면 연기법을 선용하게 되면, 선용하는 자는 연기법과는 차원이 좀 달라야 한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하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의 느낌이 바로 이런 것이었다..

의타기성, 즉 만물이 서로 연관되어서 기대고 있다는 것을 인식하면, 즉 분별을 인식한다는 것은 바로

무분별의 무언가가 있다는 말이다.. 만약 변계소집성처럼

두루 계교하고 집착하는 데에 물들어 있으면 연기라든가 의타기의 성질, 혹은 분별로 인한 만상의 갈라짐을 인식하기 힘든다.. 그런데 의타기를 인식하면, 그것은 이미 변계와 소집에선 어느 정도 벗어난 것이다..

노자의 제 2장은 분별을 말하여 그 대응책으로서의 성인의 행동양식을 말하는데

그 앞을 보면, 유명이 만물의 어머니라는 말이 나온다..

이름지음의 세계는 만물의 영역이라는 말이다. 즉 분별에 의하여 만상이 따로 존재할 수 있다는 말로 이해된다..

제 2장은 비교적 분별을 중심으로 치중되어 있는 반면에

제 1장은 상대적으로 볼 적에, 유명과 무명을 공히 논하고 있는 것 같다. 즉 분별과 무분별을 함께 논하는 것이다..

무명은 천지를 낳고 유명은 만물의 메이트릭스가 되므로, 그래서

묘에 계합하려면 무욕이어야 되고, 의도를 가지면 현상의 영역을 인식한다는 말이 되는 셈인데

결국 이름지음의 영역은 바로 분별의 영역이라는 말과 어울리는 것 같다..

대개는 무분별이 고매해보이지만, 실무적인 경우에는 사정이 달라지는 것처럼 보인다..

무분별을 논하는 것은 제 1장을 쓰는 노자가 되는 셈이다.. 대개의 경우 말이 안되는 상황이다..

분별도 쉬운 것이 결코 아닌 것 같다. 분별을 논하려면 적어도 변계소집성에서 어느 정도 벗어나야 한다..

신심명에서 논하는 숫한 대대법들과 헤능스님의 교수법강의 등이 모두 분별을 말하고 있는 셈이다..

계교하고 집착하는 것에서 어느 정도 떨어져야 비로소 모든 인식은 반대인식을 함께 말한다는 것이 드러나는 것 같고, 아마도 그런 데에 상당히 숙달이 되어야 비로소 무분별이 선물로 주어지는 것이 아닌가 싶다..

그래서 신심명에서도 앞에서 총론을 말한 다음에 매우 많은 분별을 논하다가

뒤에 가서야 비로소 진여법계 운운하는 내용이 다루어지고 있다..

분별은 바로 거래이고, 거래는 인과이고, 인과는 바로 균형을 말한다.

균형은 말로는 간단하지만, 모든 면에서 균형을 갖는 것은 균형 이전을 맛보지 않으면 힘든다. 그래서 아마도

균형을 파악하기 좋도록 보시를 말하는 지도 모른다..

보시를 해보고 양보를 해나가다가 보면, 양보라고 생각했던 것이 일종의 균형임이 드러날 가능성이 있다..

균형과 거래와 인과와 분별에 숙달한 사람이 그러한 균형과 거래와 인과법에의 분별을 통하여 얻게 되는 보이지 않는 평안함, 그것이 바로 무분별이고 사랑이고 고요함일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분별이 아닌 것을 구도심으로 먼저 맛보아야 한다는 주장도 있는데

과연 어느 쪽 만이 타당한 것인지...

먼저 맛을 보아야 한다는 말은 계속 공부하다가 보면

노자가 말하는 무명을 맛보게 되며, 그를 통하여 노자 2장의 분별도 이해하게 된다는 발상인데

노자 2장을 잘 이해함으로써 분별을 쉬는 연습을 함으로써 무명과 무분별의 세계가 드러날 가능성은 없을지..

연기를 주로 말하는 것은 그것이 중간 쯤에 해당하기 때문이 아닐까?

지구에 내가 산다는 것은 바로 변계소집상을 말하는 것인데, 연기가 되면 내가 있다 하더라도 꼭이 있다고 하기도 어렵다는 말이 된다.. 원성실성은 그 바탕에서 애초에 어떻게 나와 세계가 성립하였는가 라는 모든 것의 모든 것을 말하는 영역이 될테니 내가 있고, 지구가 있어서 우리 가족이 잘 살아야 하고, 한국이 이겨야 하는 입장과는 차이가 상당히 많다.. 아마도 그 매개가 되어주는 것이 연기일텐데

그러고보면 연기는 윤회의 모든 영역 혹은 삼천대천세계를 말하고, 원성실성은 애초에 윤회가 생겨나기 전이고, 변계소집상에선 윤회의 안에 푹 잠겨 있으니 윤회조차도 인식하기 힘들 것이다..

화엄경을 보면 여래성기품이라는 말이 나오는데

이렇게 생각해보면, 연기보다는 성기라는 말이 더 본질적인 개념인 듯도 하다..

모든 것은 성품의 발현이라는 말이다..

일체법이 열반의 모습이라는 말이 있는데, 아마도 그게 맞는 말인 듯도 하다..

방거사 어록을 보면 조사의 뜻이 온갖 풀끝에 있다는 말이 유명하다.. 역시같은 말인 듯한데

천태종에선 법화경이 궁극의 가르침이라는 견해가 있는데, 일리가 있어보인다.. 일체법이 열반의 모습이라는 말은 법화경에서 유명한 구절이다..

선종에선 그것을 말로 하지 않고, 바로 드러내거나 학인의 경계를 찔러주는 것 같은데

그렇게 보면 선은 법화경의 실천적 모습인 것도 같다..

어제는 머리가 좀 아팠다가 오늘은 몸이 좀 풀려서인지 손가락도 가벼워서 한번 써보았다..

아름다운 석양의 때...

분 별은 쉽게 거론되지만

별 도로 깊이 아껴주지 않는다면, 분별을 말하는 사람보다도 더욱 깊으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