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조 부위원장

노조 부위원장 이라는 이가 임상병리과에서 근무중인 우리직원에게 와서 이것저것 묻고 갔단다.

며칠 전부터 점심시간 식당 앞에서는 기표소를 마련해 놓고 노조위원들이 투표를 진행하고 있다. 무슨 산별 노조인지 참여여부를 찬반 투표를 한단다. 보조금의 지급으로 싸게 맛있는 식사를 마찬 후 투표를 하는 직원들의 모습에 부러움을 느낀다. 국회의원 선거나 대통령선거엔 내가 싫어 참가를 안 한 적은 있지만 원하면 참가 할 수는 있었는데 병원의 기표소는 나는 참가 할 자격이 없는 것이다.

싸움만 일삼는 국회의 모습이 보기 싫어 티브이의 뉴스는 아예 보지도 않으며 신문지상과 언론의 비정규직 관련 보도는 남의 일로만 여겼는데 기표소에 들어갈 자격이 없는 내 처지에 내 문제였다는 것을 이제야 실감한다.

Air Shooter(기송관) 6개 라인 과 Conveyor Line 1개 등 총 7개 자동화 라인에서 쏟아지는 검체물들을 정리 분류하는 임상병리과의 일에 최근 새로운 업무가 부여됐다. 자동화 검사라인에서 검사 후 폐기되는 수천 개의 시험관은 수작업으로 일일이 빼내 버리고 세척을 해야 한다. 또 다른 자동라인의 작은 시험관을 삽입하는 과정도 약 2천 개를 빼내어 버리고 새로 같은 수를 삽입해야 한다. 5~6천 번을 빼고 넣고 하는 작업량과 과정도 문제지만 폐기물의 내용이 각종 병균과 혈뇨등이 섞인 유리닌(오줌) 인 것이 더 문제다. 작업 중 내용물이 튀어 바지나 양말이 젖는 것은 물론 얼굴에 까지 튀어 오르기 일수다.

현장을 둘러보다 우리 직원이 일하는 모습이 안쓰러워 곁에 서서 도와주다 보면 어느새 시험관의오줌이 튀어 바지 밑부분이 흠뻑 젖어있다. 젖은 유니폼은 집에 가져와 세탁하기가 두려워 세탁소에 맡겼다.

오래 전 무슨 일이었는지 아산 병원에 들렸다가 1층 로비에서 노조가 머리띠를 두르고 바닥에 앉아 시위를 하는데 무슨 내용인지는 몰라도 노조가 있어서 좋겠구나 하고 부러운 마음이 들었었다.

당시에는 노조가 없기로 유명한 S의료원에 근무했었다. 지금 C병원은 노조는 있지만 우리회사는 아웃소싱 업체여서 자격이 없다. 흔히 말하는 비정규직이 바로 내 문제인 것을 나만 모르고 있었나보다.

80년대 부천 대형 전자공장의 관리이사로 근무하던 시절 당시 노조쟁의에 신경을 많이 썼었다. 직원들의 동향 파악에 신경 쓰며 노조 대의원출신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해 사전에 방지하고 후일 중수부 과장이 된 검사친구에게 도움도 받았었지. 근로자들의 단체행동으로 괴로움을 당해본 경험은 평생을 통해 노조에 부정적 이었는데 이제 마지막 직장이 될 이곳 C병원에선 자격이 해당이 안 된다.

작업내용이 보기에도 안쓰러울 정도로 수천 개의 폐기 시험관을 다루는 작업이고 병원에 일하는 이면 누구나 한눈에 알아 볼 수 있는 감염의 위험이 높은 작업이니 “적정 자격증을 갖춘 사람이 해야 하는 일 아니냐?” “적정 안전 장구 등을 갖추고 작업해야 하는 것이 아니냐?” 라는 노조 부위원장 이라는 이의 질문은 그 뜻을 여러 갈래로 해석 할 수가 있겠다.

침대 시트를 갈아주는 단순한 작업도 30년 근속한 여사원은 연봉이 5천이 넘는다. 20년 된 분은 4700인지 자신의 급여표를 모니터 화면으로 보여준다. 노조가 있는 덕분이겠지만 연봉 2천정도의 아웃소싱 업체 보조원들로 운영하는 민간병원들과 경쟁이 안 되겠지.

조용한 대화를 위해 일부러 사무실을 나와 흡연구역으로 가서 소장과 대화를 나눈다.

임상병리과 우리직원의 보고를 어떻게 해석하고 어떻게 대응을 해야 할 지 의견을 나눈다.

정직원들이 해야 하는 일이라고 임상병리과 에서 일하는 우리직원들을 행여 철수하라고 하면 어떻게 하나? 임상병리사 자격증을 얻기 위해 대학을 나오고 큰 병원에 취업한 이들에게 시키기엔 시간이 아까워 아웃소싱 업체에 단순반복적인 위험한 일을 맡기려는 진단검사의학과 관리자들의 판단을 병원노조에서는 어떻게 해석을 할까?

토요일 아침 모처럼의 하루 쉬는 휴일에 병원에서 전화가 온다.

이건 이렇게 하고 저건 저렇게 하고.

처의 손을 주물러 줄 수 있는 것이 내게는 가장 큰 행복이다.

오늘은 병원 일은 잊어야지.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