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저씨예 울 아부지가예 거북선 한 갑 가져 오라카던데예.”

응. 그래 돈은?

...................!

ㅉㅉㅉ. 어제 또 한잔 했구먼.

옜다. 춥다 얼른 가.

골목길 구멍가게 아저씨와 나누었던 40여 년 전의 대화가 떠오른다.

자질구레한 것까지 외상으로 사다먹고 장부와 칠판엔 우리들 명의로 크게 적어 놓았다.

선달이 엄마. ㅇㅇㅇㅇㅇ 원. 만석이 아부지 ㅇㅇㅇㅇ 원. 미숙이 할매 ㅇㅇㅇ 원.

골목길 나서면 탱자나무 담 따라 재잘거리는 참새 떼들의 수다만큼이나 시끄러웠던 친구들

요즘 애들은 전혀 모르고 안다 해도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재미에 해지는 줄 몰랐던 놀이들이

이제는 제목조차 잊어 버렸다.

자치기 못 치기 구슬치기 딱지치기 숨바꼭질 짤짤이 등은 모두가 비슷할 것 같고 둥근 원을

그려놓고 통로를 만들어 밀치기 하며 자리 따먹기 하던 놀이는 가물가물하고 술래에게 닿으면

포로가 되어 기둥을 잡고 뀐지처럼 서로의 손을 잡고 늘어섰다가 누군가 술래를 피하여 손을

터치하면 모두가 해방되는 놀이도 있었고 돌을 세워두고 던져 맞히는 놀이도 기억나고

너른 마당에 쪼그리고 앉아 땅 따먹기도 했고 그 한편에선 여자 애들이 공기놀이와

팬티 고무줄 사이로 치마를 쑤셔 넣고 멀건 다리를 번쩍번쩍 들면서 고무줄놀이를 하고 있었다.

반가운 손님이 오는 소리가 들렸고 아쉬운 사람들을 보내는 소리도 왁자지껄했다.

멀리 유학 간 형과 누나들이 자취 생활에서 한번 씩 오가는 소리가 정겨웠고 똥지게를 지고

나가는 할아버지 땜에 인상 찡그리며 한손으로 코를 막고 낄낄대면서도 놀이를 멈추지 않았다.

골목의 벽마다 낙서가 휘황찬란했다. 주로 누구누구 애인은 누구다. 얼레리 꼴레리...

각종 그림도 찬란했고 화살표 그림을 따라가다 속아 분하고 부끄러웠던 기억이 아련하다.

밤새 들려오던 애절한 목소리. 찹 사~알 떠~억. 새벽의 예배당 소리. 두부장수 종소리....

이젠 사라진 나의 골목길. 그리운 소리들.

질펀하던 곳에 아스팔트 포장이 깔리고 하수도가 시궁창 냄새와 잡 벌레들을 안 보게 하지만

수많은 차들이 길을 막고 주차해 있고 탱자나무 담들이 없어지니 새들도 없다. 동네 모든 일들을

알고 계시던 구멍가게 아저씨도 다시 볼 수 없는 전기 줄의 제비처럼 떠나갔다.

골목대장도 은퇴했나보다 병사들이 없으니 전쟁놀이도 할 수 없어서 그런가 보다.

철없던 사랑을 하던 골목길. 돌에 맨 쪽지 편지를 송창식의 노래를 불러 신호를 보내고

내사랑미숙이 담 너머로 던져주던 골목길. “한번쯤 말을 걸겠지 언제쯤일까 아~아~아~~~ ♪

우리의 따스하던 골목길은 사라졌다.

풍요속의 빈곤이라 했던가. 구멍가게에서 제때 사먹으면 되는 것을 미리 준비하려니 냉장고가

필요하고 한방에서 온 식구가 자던 곳이 비좁아지니 집을 널려야 하고 그리고 나니 구색을 갖추려

차도 필요하고 그리고 빚에 시달린다. 더 큰 외상 장부가 필요해졌다 편리함을 당겨 누리고

짧은 풍요 속에 가난의 고통은 길다. 내가 살고 나서 주위를 돌아본다. 이웃을 모른다.

더불어 살던 사람들이 모두가 경쟁자가 되었고 골목길은 썰렁하고 창백하다.

가난 속에 풍요로웠던 과거가 풍요 속에 가난한 오늘의 골목길을 만들고 나는 혼자 걷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