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일기, 161

바둑일기를 몇 회 까지나 쓸수 있게 될까?
일주일에 한 번 년간 50회 정도만 써도 환갑 은퇴때까지 꽤 쓸것 같은데 여러가지 핑계로 한 달에 한번을 못 쓰고 지나는 경우가 많다. 앞으로라도 부지런히 써 볼 것인가?

한동안 퇴근 후엔 너무 피곤하여 숙소에 도착하면 그냥 쓰러져 잠들기 일수였다.
초저녁의 추위도 피할겸 다시 기원에 들려보기 시작한다.
12/31 송년회의 차림은 기원 한 중앙에 바둑판 6조 정도 위에 신문지를 깔고 문어를 삶아 다리를 가지런히 잘라 내놓았다. 원장의 청에 종이컵에 소주 반을 얻어 마시고 문어를 한 점 먹고는 이 켠의 편바둑들을 구경한다.

어쩌다 한 번 씩의 기원의 상차림에는 늘 빈약한 안주에 소주병 막걸리 병만 무수히 뒹굴고 그날의 기쁨을 만끽하는 모주군들이 상을 떠나지 않는채 죽치고 앉아있다. 작년의 송년회에는 정일기원에서 많은 사람들이 덕담을 나누며 새해를 기약했지만 그들 모두가 올해는 마음이 변해 이곳 태양기원으로 옮겼다. 기원운영도 고객의 마음을 사로잡지 못하고 끝없는 변신과 서비스 경쟁에서 쳐지면 가차없는 혹독한 시련에 봉착하는 것인가?

지난 해 1월6일 병원에 다시 복직신청을 하곤 긍정적인 답변을 듣고 그 후 기원에서 기다리는 것이 소일이었다.
정말 어려운 상황이어 친구라도 기원에 찾아오면 원장에게 5만원을 빌려 저녁을 같이 먹곤 하였다. 아니 저녁은 친구에게 얻어먹고 그 5만원으로 다음날 바둑을 두었으나 가난한 마음이어서 인지 여지없이 잃기 일수였다.
바둑을 두는 것도 돈을 잃을까 두렵고 돈도 없고 하루 종일 전기곤로 앞에 앉아 소설을 읽는것이 일과였다.

이제 다시 저 나이에 복직이 되겠어? 라며 주위에서 수근거리는 소리에도 못 들은 척 하며 1월이 지나고 2월도 중반이 넘어가도록 병원에서 연락이 없어 내심 불안하기 짝이 없다. 싫은 내색없이 5만원씩 빌려주던 원장도 이제는 돈이 없다며 3만원을 마지막으로 빌려준다. 복직을 신청했다는 소문에 저녁을 사주는 이도 있고 벌써 자기 자식이 대학 장례지도과를 졸업했는데 S의료원에 취직을 부탁한다며 술을 사는 이도 있었다가 이젠 다들 그럼 그렇지 하는 분위기가 싸늘하게 느껴질 때쯤 아슬아슬하게 병원에서 연락이 와 다시 다니게 됐다.

그 후 일년은 정신없이 병원일에 매달리며 9월6일의 신종풀루센터 오픈 이래 경황이 없었다. 바둑두는 것도 잊어버리고 시간이 나면 잠을 자는것이 보약이었다. 컴퓨터와 노트북이 둘 다 고장이 나 오로에 들어와 잠시 글을 읽으며 망중한을 즐기는 것 조차 안 되는 김에 일찍 추위를 피해 잠자리에 드는 습관이 배었다.

새해들어 다시 퇴근후에는 기원에 들리는 것이 일과가 되었으나 바둑을 두지는 않고 주로 구경만 하거나 관전을 하다가 의자에 앉은채로 꾸벅뿌벅 졸기 일수이다. 원장의 곱지않은 시선이 느껴지고 종이 컵의 커피 한 잔 갖다주는 것 조차 셀프라고 써 놓은채 안 갖다준다. 이교장이나 다른 있어보이는 사람들이 오면 예외없이 종이컵 커피라도 갇다 주던데..

이제는 양복을 입고 넥타이를 맨 채 서류가방을 들고 다니니 직장인의 행세가 나겠지. 작년의 정일기원이나 지금 이곳이나 다 똑 같은 기우들이고 같은 사람들인데  이제는 어느정도 거리감이 느껴진다. 어려워 보일때는 밥 한 끼 같이 먹자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여유있어 보이면 거리를 두고 멀리 경원하게 되는 것일까?

관전을 하며 속으로 내심 놀란다. 하나같이 쟁쟁한 실력들에 저리 잘 두는 사람들하고 내가 내기를 했었다는 것이 스스로 안 믿겨질 정도이다. 나도 끈끈이 라는 별명으로 같은 편이 되면 승률이 좋아 편에서 좋아하는 입장이었는데 저리 하나같이 무시무시한 실력의 꾼들과 겨루었었다는 것이 정말이었나 싶을 정도이며 편 바둑에 들어갈 용기가 나지 않는다. 실력으론 안되고 돈으로 막아야 할텐데 아직은 여유가 허락치 않는다.

기원의 저녁 풍경은 낮에 운이 좋아 돈을 딴 이가 저녁을 산다며 여러명과 같이 나가거나 친한 이들끼리 인근 식당에 찌개 등을 시키고 밥을 두 세개 더 시켜 같이들 먹는데 이제는 청하는 이들이 없다. 기원의 벗들을 기우라 칭하며 거의 지난 10여년 알고 지내온 이들일텐데 갑자기 달라진 것일까? 아니면 나 혼자 정글속에서 감상적인 어린생각으로 있을때 퍼주기만 하고 이제사 정글속에 구경 온 것을 느끼게 된 것일까?

기원 벽면에 걸린 위기십결에 눈이 간다.
세고취화 그래 이제 다시 바둑을 배우는 기분으로 시작해보지.

우선 바둑일기부터 매일 써보려는 결심을 해야할까?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