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에는 글쓰기를 쉬려고 했는데

어쩐 일인지 도리어 쓸 일이 더 생기고 있다..

일종의 공약이니 쓰지 않는 것이 도리인 듯도 한데

내가 쓰든 안쓰든 별로 신경쓰는 분도 없어보이니 굳이 안쓰기도 좀 그렇다.. ^^

오늘 글을 쓰게 된 계기는 구미호 드라마가 끝났다는 기사를 보고서이다..

이 드라마의 골간은 대략 알고 있었다..

아마도 구미호가 어느 집의 첩실로 들어갔다가 딸을 낳는데, 본처의 딸이 아프자

구미호의 딸을 죽여서 인간의 딸을 살린다는 그런 내용인 것 같았다..

가만 상황을 보고 있자면, 인간들이 도리어 흔히 여우가 상징하는 것 보다도 더 간교하고

요즘 드라마의 구미호는 상당히 인간적으로 품격과 순수함이 있다.. 어찌 보면 참 말세다...

어제 끝났다는 한은정 구미호의 끝에서도 구미호가 끝까지 모정을 보이면서 끝난 모양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구미호는 인의를 저버리지 않았는데, 인간들이 구미호에게 한 일이라곤

자기 딸 살리려고 눈앞의 남의 딸을 잡아먹는 일이었다.. 인간의 행실은 개차반이고, 여우의 덕성은 인간적인 셈이다..

다른 구미호 이야기에서도 좀 그렇다.. 이승기가 나오는 구미호를 보았더니

거기에서도 구미호는 순진하기 짝이 없는데, 여자인간은 온갖 여시같은 수작을 거듭하고 있었다..

인터넷 기사들을 보고 있어도 좀 그렇다..

아마도 예날 같으면 단 한건의 이야기에서도 화들짝 놀랐을 것 같은

온갖 별 해괴망칙수상무쌍한 일들이 너무나 많이 일어나서 인간이 더 말썽이라는 것을 참으로 많이 보게 된다..

불교적 세계관을 놓고 보면, 인간은 중간 쯤에 있다..

아래로는 삼악도가 있고, 위로는 3층의 천계가 있다.. 소위 욕계천과 색계, 무색계 등이다... 일테면 자유의지를 가지고 그런 흐름 속에서 자기책임을 갖는 중간적 존재라는 의미가 아닌가 싶다...

그러니까 인간이 좀 제정신을 차리면, 일단은 인간계나 하늘나라에 태어나게 사는 것이고

아래 쪽의 삼계, 그러니까 지옥과 아귀, 축생 등을 role model로 살면 그 동네로 가기 쉽다는 뜻으로 읽힌다..

그런데 지옥중생은 화를 내는 것이 주된 습관으로 보이고, 아귀는 식탐이 주된 악습이고

축생이 상징하는 것은 사유능력의 부재인 것 같다.. 모아보면 저 유명한 탐진치의 3독이 된다...

이 양반들은 이렇게 삼독이 너무 강해서

차분한 선택을 통해서 인생을 창조할 수 있는 겨를 없는 셈이다...

자유의지에 의한 선택이라는 것은 마음을 가지고 하는 것인데, 정신머리가 없으니까 마음은 안보이고, 바깥일만 가득한 것이다..

반면 그래도 인간은 이들처럼 그렇게 정신머리가 없지는 않기 때문에, 조금만 정신을 차리면

매 순간의 마음씀을, 욕계천의 천인들처럼 할 수도 있고, 색계천의 존재들처럼 살 수도 있고, 더 나아가서 무색계천의 천인들처럼 살 수도 있다는 뜻으로 보인다.. 아예 더 나아가서

그러한 모든 개별적 존재의 틀을 벗어날 수도 있다는 것이 아마도 해탈의 메시지일 것으로 추정한다..

그렇다면 이런 구도 하에서 그런 껍질을 결정하는 것은 무엇인가 하면

매 순간의 행위, 즉 신구의의 3업이 아닌가 한다... 즉 몸과 입과 마음으로 하는 모든 행위에 따라서

요즘 식으로 말하면 인사고과를 해서 다음의 드라마가 결정된다는 것이 아마도 불교적 세계관의 기본틀인 것 같다.. 물론 이런 모든 구도를 벗어나는 것이 불교의 기본 메시지인 것 같으니, 벗어나길 원하는 입장에선 자질구레한 말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 내가 왜 이런 말을 하고 있는 것일까?

구미호 이야기를 듣다가 보니, 어째 인간들이 애써서 인간이 되어놓고선

하는 짓이 도리어 더 한심한 구석이 많이 보여서 참 묘한 시대로구나,라는 생각이 들어서인 것 같다..

구미호는 고생끝에 인간이 되었으니 인간이 귀하고

인간은 어느 새 인간세상의 생존에 길들어서, 온갖 못된 짓만 배우는 것일까?

하지만 대개들 다 비슷하게 사는 것 같아도, 반드시 그런 것도 아니다...

꼬리가 아홉 생겨나도록 고생하여 얻은 인간의 지위를 맹구우목처럼 귀하게 여겨서

전체적 조망하에서 살아가는 인구가 그래도 있다... 하긴 나도 글을 쓰면서 보니까

어느새 인간세상의 짜릿함에 길들어서인지, 그래서 어쩌겠다는 거야,라는 흔한 인간들의 반론이 들리는 것 같기도 하다.. 왠지 자극이 없으면 좀 심심한 느낌이 드는 것 같기도 하다..

특별히 제도로서의 불교를 내가 찬양할 이윤 없지만, 사유의 소재로서 좋으니 좀 더 써보고 싶다..

삼악도가 탐진치를 대변하는 것이라면, 천상의 삼계는 아직 남은 개체적 습관으로 통한다.. 즉

욕계는 음양구분이 해탈의 걸림으로 남아서 분열을 상징하는 것이고, 색계는 개체의 껍질이 걸림으로 남은 것으로 통한다..

그리고 무색계라는 것은 개체적 틀도 대개 벗은 후라고 하는데, 아직도 개별존재로서 살던 습관이 남은 영역으로 통한다... 그러니까 인간의 지위는 이렇게 보면

정신머리 없는 수준에서의 탐진치도 좀 벗어서, 독자적 판단력과 사유력, 혹은 침착성을 갖춘 상태인데

일단 인간이라면 3종의 하늘의 한계는 대개 다 있다고 보면 될 것이다..

이렇게 보면, 인간이란 예전에 니이체가 말한 것처럼 하나의 과정적 존재인 셈이다..

신라면을 한 젓갈 더 탐내는 순간에 아귀에 근접했다가, 이쁜 이성에의 인력을 한 번 이겨내는 순간에는 욕계천의 인력에서 조금 탈출하기도 하고, 일체중생에 대한 자비심을 갖는 순간에는 색계천으로의 추진력을 얻기도 하고... 또 불쾌감이나 모욕감에 크게 성내는 순간에 지옥불에 근접하기도 하는 셈이다..

물론 이 모든 번잡함의 틀을 벗어나려는 노력들이 있어왔지만, 아마도 그 이면의 심리적, 혹은 존재적 배경이 되는 것은 바로 이러한 구조적 틀일 수도 있을 것이다...

간교한 인간들과 순수한 구미호의 역전현상이 눈에 들어서 쓰다가보니, 어느 새 익숙한 불교의 디자인이 흘러나오고 있다...

노자님도 무욕으로 오묘함에 계합할 수 있다고 한 적이 있고

중용에서도 하늘이 품수한 것이 우리들의 본성이라고, 성실함으로써 그 본성에 계합할 수 있다고 전해준 적이 있지만, 오늘 이렇게 우주론적으로 인간의 지위를 음미하고보니, 나로선 다소의 유용함에 고마운 느낌이 든다...

아무래도 오늘은 이 그림을 좀 더 음미해보아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