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형호제

 자기는 아무에게나 형이라 부르지 않고 그래본 적도 없다며 내게는 형 이라 부르겠다는 사람이 둘이 있었다.
누나 한 분과 나 세상에 둘 이었는데 누이는 71년인지 미국으로 떠나고 74년 한국에 와 한번 보곤 그 후 83년에 시카고에서 한 번 뵈었다. 그게 마지막 일 줄은 몰랐었는데 그 후 91년인지 내 아이들에게 시카고에서 보내 준 선물을 L.A에서  받아 본 것이 마지막 이었었지.

 호형호제 하자던 두번째 분은 무게가 있는 분이었는데 청하지도 않았던 호형을 제안터니 그 후론 볼 수도 없다. 연분이 피차 부족했던게지.

 형제나 동기간이 없었으니 나 또한 아무에게도 호형호제 해 본 적이 없었고 그 뜻의 귀중함은 여실히 알고있다. 첫번째 분은 포항인지 경주 인지가 고향인 그는 내게 형이라 호칭하겠단다. 나 역시 사회생활을 해 보았으니 그의 마음이 진실이든 아니든 그 순간 그러겠다는 그 취지만을 가상히 받아 들인다.

 기원에서 바둑두며 만난 뿐인 이가 어찌 호형호제를 할 수 있을까? 자신의 생일 이라며 온 전화에 처까지 같이 나가 그의 생일을 축하한다. 그가 이미 마신 술값을 계산하라고 처에게 이야기 했다. 그녀는 그런 계산은 안 한다. 그 후 몇 번 그와 만나 술을 샀지만 양주를 시키면 처는 맥주로 마무리 한다.

 해외의료봉사단 단장이라는 멋진 직함에서 급전직하하여 기료도 못 내는 처지로 급락한 내 모습에 그는 막걸리 한 잔도 살 여유가 없었을까? 쌀 독에 인심 난다듯이 돈이 있어야 사람도 가까이 오는 것일까?
그의 코는 주사비 다. 응급실 젊은 직원이 진단을 받아 온 명칭이다. 그 친구는 술도 안 먹는데 코끝이 빨개 피부과 진료를 받아 얻은 진단명이다. 주사비가 무엇일까? 한 참을 생각하니 답이 나온다. 술먹은 놈 빨간 코 라는 한문 이지. 빨간 코에 매일 초저녁이면 술을 한잔 하면서 호형호제 한다던 형에게 술 한 잔 하자던 예기는 없었다. 물론 그런 술을 먹고 싶지도 않지만.

 나는 그를 연구생이라 부른다.
항상 바둑을 두지는 않고 남들 두는 곁에 앉아 구경만 하고 있다.
구경만 하면 될 터인데 그는 잠시도 가만히 있지를 못한다.
남 바둑 두는 알 통 속에 손을 넣어 한 주먹 꺼내어 손에 들곤 덜그럭 거린다.
주먹 속에 쥐곤 쌈 싸먹기 하듯 덜그럭 덜그럭의 연상이다.
배울점이 없어. 라며 연신 옆에서 헛소리 김빼기에 바쁘다.
바둑을 배우려면 무언(無言) 부터 배워야 하는 것 아닐까?

 젊은 시절 친구들은 육군대장 아들만 셋 이었던 기억이다.
압록강 초산진에 제일 먼저 도착 했다던 김종0 대장, 합참의장 이셨다던 문형0 대장, 광주사태의 한 사람 이었던 소준0 대장, 12.12사태의 한 사람이었던 김용0 장군(이 분은 3성 장군으로 그쳤다). 1974년 논산 훈련소에 입소하여 8.15행사를 할 때 작고하신 육여사, 그 날 그 훈련소장은 친구의 아버지 였었던 기억이다. 한 무스개 장군 이었던가. 큰 나무 그늘에선 작은 나무도 자라지 못 하듯이 장성의 자제 분 이었던 친구들은 하나같이 고만고만하게 그치고 말았다. 그들 중 지금 만나는 이는 하나도 없다.  선친과 비교하며 권세가 부러웠지만 올곧게 학업에 정진하지 못한 나의 불찰이 지금의 내모습이겠지.

 셈 없이 가식없이 만날 수 있는 사람들은 누구일까?
기원에서 구경을 하다 나서는 데 기원 문 곁 창가에서 밖을 내다보고 있던 강 이 말을 건다.
설렁탕이라도 할 까요?
모처럼의 제의에 흔쾌히 응하며 그깟 설롱탕 값과 반주 소주 값정도는 당연히 내야 하는 것인데 나도 마음이 각박한 현실이어 저녁은 들어가서 먹어야 하는데. 라고 답한다. 그의 집은 저 멀리 신내동 이라던데 갈까 말까 망설이며 그나마 나는 이야기 할 수 있는 사람이라 여겨 청한 것일텐데 알면서도 응하지 못하는 나 자신도 답답하다.

 직원들 중 선임들은 조심스레 내게 얘기한다.
보직을 받은 후엔 계속 있을 수 있을 것이라는 보장을 해 주는 것이 좋지 않겠냐고. 당연한 말이지. 다만 아직 초창기여 예상 못했던 변수와 복병이 하도 많아 쉽지가 않았었다.

 밥 한끼, 술 한잔 같이 하자 청하는 이 없어도 내 길을 걸으면 되겠지.
그 깐 허망한 형 소리에 반길 이유도 없겠지.
그저 저녁 반주 한 잔이 내게는 족한 것이지.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