덜커덕. 탁.

드르르륵. 댕그랑.

나무판자에 얼기설기 못을 박고 나무 막대기와 고무줄 그리고 구슬하나.

어린 시절의 오락기가 생각난다.

지금의 아이들은 온갖 가능성을 프로그램화 된 게임기에 혼을 빼앗기지만

창의력을 들먹이는 명분으로는 아무래도 마땅찮다

타닥타닥 다다닥.

“본인의 잘못은?

“없습니다.”

잠시 조서를 준비하느라 기본 문서를 작성하는 소리가 상념에 젖은 나에게

어린 시절 큰 풍선 따 볼 거라고 기를 쓰고 잡아 당겼던 오락기소리 같았고

튕겨져 나간 구슬이 못들 사이로 이리저리 부딪치며 내려오는 모습이 떠올랐다

전신주에 손에 손을 잡고 포로가 된 친구들을 날쌘 몸동작으로 방어막을 뚫고

터치하여 모두 해방시켜주었던 나

심리전에도 능하여 말 타기에서도 가위바위 보하면 승률이 최고였었지

비 오는 날에는 종이배를 접어 냇가에 띄우고 가라앉을 때까지 따라 갔었고

그때도 내 배는 최장거리를 달렸다

자치기 구슬치기 딱지치기 못 치기........ 어느 것을 해도 승률은 80이었다

못 말리는 외모 때문에 여자 애들은 왜 또 그렇게 성가셨든지.

씩. ^^

멋쩍게 웃지만 행복이 가득한 그리움 녹아있는 그 웃음.

아마도 내 주름살은 그것으로 엷어졌을 것이다

아무리 열심히 살아도 세파를 이겨내기 힘들 때 그 시절을 떠올려 본다

그리고 아무에게도 간섭 받지 않는 나만의 진공상태로 들어간다.

갑자기 들이닥치는 연속적인 사고에 여름휴가와 맞물린 최악의 불경기.

답답한 가슴은 열대야로 잠 못 이루는 밤보다 더 숨이 막히고 해소방법은 묘연하다

창밖을 바라보며 멍 때리고 있는데. 

“다친 곳은 있습니까?”

“아. 당시는 통증이 있었지만 지금은......”

저녁 9시.

여름밤이지만 꽤 늦은 시간에 사람들이 분주히 들락거렸는데

예전과 달리 경찰서 분위기는 차분하고 많이 부드러워졌다

서슬이 유격훈련 갓 다녀 온 병사나 특수부대원 못잖든 눈빛이 한층 부드러웠으며

자신 위주로만 보던 모니터가 양방향으로 되어 당사자도 바로 열람할 수가 있었고

고성이 오가며 강압적이던 시절이 무색하다

간간이 보이는 꽃병에 소파 옆엔 생수기와 쟁반에 누룽지 알사탕도 담겨 있었고

조명도 환한 게 내 경험으로 조금은 어색한 친절이지만 생색만은 아닌 것 같았다.

애써 견학할 필요도 없는 곳으로 법원과 경찰서 병원을 곧잘 꼽는다.

하지만 우리네 삶이란 게 아이러니하게도 그것으로 유지되고 있으니 실소하게 된다

“변소와 처가는 멀수록 좋아.”

옛사람들의 이야기가 문득 떠오르니 절실하지만 가까이 할 수없는 뭔가가 있다

어둔 창밖이 훤해지는 게 달이 뜬 모양이다
쇠창살 사이로 내가 갇혔는지 달이 갇혔는지 분간이 안된다
보는대로 달라지는 삶의 수상전처럼 오리무중 긴가민가 하는 게 현실인가.

그러고보니 내달엔 추석도 끼여 있구나. 삶이 팍팍하니 명절마저 부담스럽다

뭔가를 바랄 수 있었던 시절에는 밤잠을 설쳤건만 도리를 해야 하는 나이가 되니

특별한 날들이 왜 그리 자주 닥치는지 모르겠다.

“상황을 설명해 보시겠습니까.”

“네”

호출을 받고 파계사와 동화사로 가는 갈림길 파군 재 삼거리에서 나는 2차로를 따라

좌회전을 하고 있었다.

일 차로에도 좌회전하는 차량이 있었고 동시 신호기에 우측에는 직진차량이 있었다.

편도 4차로에 1,2차로는 좌회전 전용. 3,4차로는 직진전용이다

그런데 교차로에 진입하는 순간 뭔가 위기감이 음습했고 순간 우측차량이 급좌회전했다

무의식중이었지만 반사적으로 경적을 울리면서 방어에 들어갔지만 막무가내였다

결국은 급브레이크를 밟으며 좌측으로 섰지만 그 차는 나의 우측 앞 범퍼를

자신은 좌측 뒤 범퍼로 치고 지나갔다

달아날까봐 순간적으로 추격모드로 급전환 했는데 다행히 우측으로 세우는 것이다

그래도 방심은 금물이다

나는 그 차량의 앞쪽으로 도주로를 막고 방어적인 자세로 차를 세웠다

간혹 그런 일이 있는데 사고 후 우측으로 차를 빼는 척 서행하다가 뒤 따르는 차가

긴장을 늦추고 주의력이 산만한 틈을 타 다시 도주하는 경우도 있다

이 경우 상대 차의 넘버나 신원을 확인 할 겨를이 없으니 황당하게 당할 수 있다

그리고 블랙박스도 맹신하면 안 된다.

영화에 나오는 CCTV로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불과 2~3미터만 떨어져도 상대방 번호판 식별이 어렵고 더 가까워도 여의치 않다

그저 정황만 체크되는 것으로 참고하시기 바란다.

그리고 그 용량이 하루분량 정도니 사고 시 처리가 끝나면 이동디스크를 보관했다가

컴퓨터에 저장 후 재사용하시기를 참고로 권한다.

“당신 지금 뭐하는 짓이야”

“.............”

“경찰을 부를까 보험처리 할거야.”

“나한텐 블랙박스도 있어”

“......................”

“경찰 부르겠습니다.”

차에서 내리자마자 어이없는 소리로 시작되어 경찰을 부르게 되었고

뒤이어 보험회사 직원인 듯 이상한 인간이 나타났다

이 인간이라 한 것에 대해 추후 그 사유를 자세히 밝히도록 한다

교통사고 지침이 바뀌면서 경찰이 하는 것은 시비를 가려주는 것 외에는 없다

중대사고 형사 건이 그것이고 나머지는 애매한 부분에 대해 관여하게 되지만

실질적으로 보험에는 그다지 영향이 없는 것으로 안다

그러니 어지간한 사고는 보험회사끼리 처리하는 것이 원만하기에 경험자로서

과실여부를 가려 그 자리에서 처리하려 했던 것인데 적반하장도 유분수라.

10년도 넘은 소나타가 몇 달 되지 않은 나의 애마 달빛이랑 어디 비교가 되며

가해자가 보는 관점에서 피해자에게 손실부분을 측정 평가를 내린다면

이 세상은 가해자의 세상이 된다는 말이고 그건 밀림의 법칙이 아니던가.

소심 한 건지는 몰라도 상대가 워낙 굴지의 기업이라 그대로 표기하는 게 그렇다.

하지만 사실 그대로를 말하는 것임을 밝혀두고 영문으로 표기하겠다.

앞전에 말한 그 인간이란 사실 직원이 아닌 긴급출동 도우미인데 이게 가관이다

도우미면 상황만 체크해 보고하면 될 것을 오버래핑을 한 것이다.

“사장님 어떻게 해드리면 좋겠습니까. 그런데 경찰은 왜 불렀습니까.”

“아니 가해자가 경찰을 부를까 보험처리 할래. 하는데 나보고 어쩌라구.”

“네네. 다 지나간 걸 자꾸 말하지 말고 요구상황을 말해보세요”

“아니. 당신들은 일단 우겨보고 안 되면 말고 그렇게 사고를 처리하나.”

“사과했지 않습니까.”

“공갈 협박했다가 결과가 나오니 사과하고 고객관리 한다고 고객편만 들고”

“그렇게 처리하면 피해자가 흥분하게 되고 일이 커진다는 건 알기나 하심까.

‘왜 자꾸 지나간 일을 시비하십니까. 사고하고는 관계없잖아요.”

화가 가라 않지 않은 상태에서 사고내용도 평가절하하고 자세도 도도하다

도저히 분이 가라앉지 않았지만 침을 삼키고 답배를 한대 피워 물었다.

“그쪽에서 말해보시오”

“저희야 피해자 요구부터 들어봐야지요. 수리는 해드리겠습니다.”

‘저 정도면 얼마 되겠습니까. 몇 만원.......“

새 차를 파손 했으면 새 차 수준으로 보상해야지 어이가 없었다.

새 옷을 수리해서 입으라는 말이다.

“무슨 소리야 차는 새 차 수준으로 수리하고 영업 손실과 기타휴식비용까지 줘야지”

너무 흥분해서 다 집어치우고 싶었다.

아니나 다를까.

그 인간이 나보고 너무 심하다고 정색을 하면서 법대로 하세요. 한다

가해자와 의논도 안 해보고.

H.h보험 도우미가 하는 상황대치 방법이다

보험도우미와는 달리 가해자가 나에게 사정을 한다

“제가 잘못했습니다.”

“아까 당신이 한 짓은 상식적으로 있을 수 있는 일입니까.”

“네. 제가 잘못했습니다.”

“네. 당신 사과는 받아들이겠지만 이제는 저 사람이 열 받게 하네요.”

“나머지는 저 사람 탓입니다. 법대로 하자니 할 수밖에요”

“H.h 보험은 사고처리를 저렇게 하나봅니다. 차도 그렇게 만드니 하자가 많지.”

“노조는 썩었고.”

화가 나서 혼자말로 중얼거리고.

“나도 더 이상은 어쩔 수 없습니다. 당신도 어떻게 해준다는 말도 없이 잘못했다고만 하니.”

“내일 봅시다.”

그렇게 휭 하니 현장을 빠져 나왔다

사고는 일단락되었지만 괜히 경찰을 돌려보냈다 싶고 농간 당한 기분을 떨칠 수 없었다.

일하러 나간 사람이 소주병을 들고 들어오니 우렁각시 눈이 휘둥그레진다.

자초지종을 설명하면서 세상물정 모르는 우렁각시가 되레 흥분하니 술 빨만 고조되었다

“뭐 그런 게 있노.”

‘마째“

그렇게 다소 위로를 받으며 한 푼이 아쉬운 우리는 금쪽같은 하루도 같이 마셔버렸다.

다음 날 일을 하면서 이래저래 잡생각에 집중이 되지 않아 마음을 다져 먹었다

빨리 처리해버려야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을 거란 생각에 자존심을 버리기로 했었다

“어제 사고 피해잔데 통화 가능합니까.”

“아 네.”

“어제는 화가 나서 나도 감정이 앞섰는데 날씨도 더운데 간단하게 처리합시다.”

“아. 네 사실 사장님 상식적으로 무리한 요구였습니다.”

“..........”

다시 불끈해지는데 아니나 다를까.

“그만한 일로 병원 들먹이며 쉰다고 하면 쪽팔린다고 생각 안 드십니까.”

어이가 없었다.

“아니 쪽팔린다니 그게 무슨 말투야.“

“사실 그렇잖습니까. “

“당신들은 피해자에게 항상 그렇게 막말하나. 쪽팔린다니.”

빵빵.

뒤에서 경적 소리가 요란했다

신호대기 중에 잠시 통화하려다 또 열 받아 버렸다

비상깜박이를 켜 양해를 구하고 다시 창을 열고 손을 흔들어 사과했다

그리고 한쪽으로 정차를 하고 단오하게 말했다

“내 당신하고 말 오래하고 싶지 않고 범퍼 손상 분 새것으로 교체해주고 끝내.”

“네. 알겠습니다.”

그리고 일주일이 지나도 소식 없어 나는 모든 것을 포기하고 경찰서로 온 것이다.

여러분.

H.h 보험은 고객을 위해선 막가파를 불사하는 도우미들이 여러분을 기다립니다.

그러니 운전을 거칠게 하거나 주의력이 부족한 분들에게 적합한 보험회사로

적극 추천해 드리고요.

단. 각오할 것은 우선은 위로가 되겠지만 추후 경찰서에 자주 들락거려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상대가 위 보험이라면 항상 경계를 늦추지 마실 것도 상기 시켜 드립니다.

저녁10시.

휑한 주차장 한쪽 애마가 달빛을 머금고 나를 기다리고 있다
애칭을 달빛이라 지어 주었는데 왠지....

조서를 마치고 계단을 내려오면서 내 발 자욱 소리가 유난히 무겁게 들렸다

한 달 전에도 이곳을 왔었지

갑자기 뛰어 든 자전거를 미처 피하지 못해 살짝 뒤 바퀴가 걸려 넘어 졌다

피 한 방울 안 나고 멀쩡한 상태로 일주일 입원하고 150만원의 보험을 챙겨갔다

너무 억울했지만 민사 소송비가 더 많이 들고 확률마저 낮아 포기했는데

이 사람들은 아무 이유 없이 경찰에 신고까지 해 처벌을 받게 했다.
야간에 안전장치도 구비하지 않았고 블랙박스 판독결과 고의성이 다분했지만 결과는.....

그리고 무사고 20여년이 날아갔다

언젠가 열배 백배 당할 것이라 위로하면서 채 잊혀지기도 전에 또 이런 일을 당했으니.

오후4시부터 파출소를 경유해 이제 모든 것이 끝났는데 전화 연락도 안 되던 사람이

경찰 문자에 조서 꾸미는 중에 통화가 되었다

경찰서 마당에서 담배 한 대 피워 물고 하늘을 바라보니 달이 밝다
저달은 여기서만 밝지 않으리

저렇게 선한 달처럼 살기는 어려운가.

어린 시절엔 마음 그대로 살면 되었고 이제는 돈과 환경이 맞아 떨어져야만 가능하다

후.~

선하게 살면 무능한 가장이 되고 독하게 사는 법은 알아도 알레르기 때문에 안 되고

안타까운 듯 바라보는 달을 뒤로하고 어두운 경찰서 마당을 빠져나오는 허한 마음은

영문 모르게 만기 출소하는 재소자 같은 허접한 기분을 떨쳐버릴 수 없었다.

룸 밀러 뒤로 환한 달빛만 오래오래 손 흔들어 줄 뿐 나는 또 아무것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