뼛속까지 내려가서 써라,라는 책이 있다.. Writing down the bones,라는 말인데
이 책을 보니 글이 글을 쓴다는 표현이 나온다.. 좌선을 할 때에 좌선하는 사람이 사라지듯이 말이다..
이 구절을 보니 이전에 느꼈던 경험이 살아났다..
글쓰기와 친근해진 것은 타이핑에 익숙해지고나서인데
새로운 millenium에 접어든 얼마 후에 타이핑을 해서 어느 정도의 속도가 붙으니
자려고 누웠다가 어떤 영감이 떠오르면 파일을 만들기도 하고, 또 쓰기도 하게 되었는데
그렇게 영감이 주어지는 일을 손가락의 속도가 감당할 수 있게 되자
글을 쓰는 것이 내가 아니라 글이 글을 쓴다는 느낌을 갖곤 하였다..
이 책을 구매한 것도 그 무렵인데, 지금에사 읽으면서 보니 이런 말이 나오고 있는 것이다..

마라톤을 하는 사람들이 리듬에 젖어들면 마음이 고양되는 경험을 한다는데
그것을 두고 흔히들 runner's high라고 표현하곤 한다. 마라톤 삼매와 비슷한 뜻이 될 것이다..
그리고 어디선가 들으니 자각몽을 경험하는 사람들은 그 경험이 일상에 이전되어서 여운이 상당히 오래 간다고 들었다.. 누군가는 그것을 두고 dreamer's high라고 표현하는 것을 보았다..
얼마 전에 유행하던 꿈에 관한 영화가 좀 관련될 것이다..
이런 발상이 좀 보편적으로 응용되는 경향이 실용성이 강한 사회나 국가에는 있는 것 같은데
그런 맥락에서 보면 글을 쓰면서 주어지는 high의 경험은 writer's high라고 부를 수도 있을 것이고
오로의 화면에도 유사한 발상이 있기도 하다...

나의 경험에 비추면 이런 식의 writer's high가 성립하려면, 타이핑이 숙달되는 것이 요긴하다..
만약 내가 타이핑에 숙달되지 않았다면, 그리고 그래서 자다가도 일어나서 글을 쓰게 되지 않았다면
그래서 생각의 속도로 자판을 두들길 수 없었다면 나의 경우에는 그런 기회가 왔을 지 좀 의심스럽다..
이렇게 본다면 소위 high라는 것이 주어지려면 기술적으로 숙달되는 것이 요긴한 것인지도 모른다..
대개 마라톤 하는 사람들이 경험한다는 그것도 상당한 거리가 경과한 후라고 들었다..
그러고보면 다도를 하는 사람들은 어떤 과정을 공작적으로 권유하는 것을 보았는데
그것이 바로 일종의 흐름을 나투는 기술적 과정인 지도 모르겠다..
이런 면에서 본다면 바둑이 과도하게 속기로만 흐르는 것은 좀 문제가 있다.. 어떤 적정선이 필요하다..
바둑도 따지고보면 내가 둔다기 보다는 바둑판의 상황이 전해주는 소리를 귀기울여서 듣는 과정인데
너무나 바쁘면 듣기가 힘들지 않겠는가? 숙달이 되면 어느 정도는 적응이 되긴 하겠지만 말이다..
실전을 안 한지는 오래 되었지만, 전체의 윤곽을 읽고 다시 부분의 효율을, 주어진 시간 안에 읽는 적당한 긴장감은 매력적인 것이었다.. 그리고 그 적절함이 경계를 벗어나면
머리에 침을 스무 개 쯤 꽂고서 바둑을 두어야 하는 상황이 벌어지는 것이다..

어디에나 high가 있고, 삼매가 바라보고 있다는 말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