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서부영화를 좋아하면서도 개인적으로는 인디언을 사랑한다.

그들의 사랑과 슬픔과 순수함을.

대개의 서부영화는 희멀건 인간들이 정의가 되고 악행도 미화시키지만

인디언은 무지막지한 미개인으로 묘사되고 그들의 내면은 묻혀 진다.

권총을 차고 시가를 문 석양의 종결자들에게.

그래도 더 악한 놈들을 처단하는 멋스러움도 있어 대릴 만족에 빠져들게 되고

그도 그 중 한사람으로 동화 되곤 한다.

자신이 크린트이스트우드처럼 악당을 미화(?)시킨 용서 받지 못할 유형도 아니고

율 부리너와 함께 힘없는 백성을 구하는 황야의 7인의 멤버도 아니고

게리 구퍼처럼 무적의 의리파 유형은 더더욱 아니지만

언젠가부터 그는 자신이 그들과 다른 종결자가 되어 있음을 알고 씁쓸해 한다.

음력2월

양력으로는 꽃망울 터트리는 춘3월인데 그에게는 고난의 달이다

미역국을 끓이며 일견 대견해하면서도 한편으론 뭔가 잘못 된 느낌을 떨칠 수 없다.

기실 미역국 끓이는 게 뭐 대단한 일은 아니지만 그게 꼭 그렇지만도 않은 이유인 즉

그 일이 고정적인 일상이 되었다는 게 문제다

언제인가는 정확하지 않지만 대충 10여 년은 된 것 같다

지나 온 시간 나름으로 사회 활동을 평가하니 더 이상 투자 할 가치를 잃어 버렸고

그래서 세상의 깊이를 깨달아 출가한 것은 아니지만 개똥철학으로 작심 하게 되는데

쥐뿔도 모르면서 각종 단체에서 모자 쓰기를 좋아 했었던 과거를 청산하기로 했다

일상에서의 출가.

그렇게 잠수한지가 어느 덧 세월이 이렇게 흘렀다

직업으로 봤을 때 자영업이면서 창의성을 요구하는 것도 아닌 단순노동이다 보니

자신이 성실하면 되지 구태여 대인 관계로 수입에 도움이 되지 않았다

그렇다고 뭔 야망이나 있어 그 냄시(냄새)나는 구케구디(국회. 개천)에서 몸 불렸다

재수로 용 될 일 없으니 소통이 목적이 아닌 인맥관리 차원의 보시는 모두 부질없고

일부는 자신의 욕구충족의 변명이었던 것을 인정하게 되었다

순리대로 경우 바르게 살아가자는 게 그의 가치관이나 그렇게 아름다운 삶은 아닌 게

정의의 깃발을 들고 달려도 세상은 타협하지 못하면 결국은 홧술만 늘어 갈 뿐이었다

시대의 융통성이란 게 그랬다

그래도 봉사활동만은 20여 년 동안 몸에 배여 명분으로 가타부타 할 일이 아니기에

그냥 몸이 가는대로 여력이 닿는 대로 따르기로 했다.

가족 생일을 깜박깜박 하는 바람에 늘 뒷북치다가 인사 받지도 못하는 게 다반사고

여느 때는 자신의 생일도 지나쳐 버린다.

일상이란 게 뭐 내세울 게 있어야 생일도 챙기고 말고 하지 결과 없이 바쁘기만 하니

돈 들어가는 행사는 기피하다가 이제는 아예 무시하려는 습관이 생겼다

그러다 인생을 바라보는 각도가 달라지면서 무료함도 달래고 무능함도 조금 희석하고

그렇게 집안일을 거들기 시작하면서 음식도 자연스레 하게 되었다

그전엔 뭐 좀 들어가야 한다. 어떻게 해야 제 맛을 살린다. 뭐가 빠졌네.

그런 식으로 잔소리만 늘어놓았는데 직접 달려들어 보니 그게 그렇게 되어 버렸다

어느 해 어머님 생신인데 병간으로 서로 바쁘다보니 깜박하고 자칫 지나갈 뻔 했었다

집사람이 귀띔을 해주고 출근하는 바람에 부랴부랴 미역사고 고기 한 근 사들고 왔다

조기도 3마리 사고.

(그려. 한번 해보고 맛없으면 내가 다 먹지 뭐.)

동안 간잽이만 하다가 직접 달려들기는 처음인지라 여간 신경 쓰이지 않았다.

주둥이로 만들어 왔던 것을 손맛의 X-파일에 도전한 것이 발단이 되었는데.

그런데.

지금 가만히 생각해보니 이 여자가 그날 진짜 귀띔만 해주고 말았네. -.-:

일체의 대인관계를 접고 나니 쉬는 날 딱히 할 일이 없다

처음엔 혼자서 산행을 하고 바둑 두고 글쓰기 좀 하곤 했지만 그래도 시간이 남았다

물론 간병 교대하는 것은 일상이라 그날은 제외지만 혼자 쉬는 날엔 무료감을 느꼈다

30여 년의 병간. 그것만으로도 팍팍한데 와중에 뭔 무료감인가.

문제는 그동안의 습관에서 오는 허전함이라 게 옳을 듯하다

저녁나절에 허기를 느낄 때. 처연하게 비 오는 날. 그리고 삶의 중력이 새삼스러울 때

불현 듯 멀리 떠나 간 벗이 생각나고 맞아 죽을 소리지만 첫 사랑도 떠오르곤 하는데

술 한 잔 할 친구가 아쉬워지나 집사람은 술을 못하고 분위기도 안 맞을 때가 많다

술을 배운지 40여 년 동안에 집에서는 거의 술을 마시지 않았기에 혼자는 더욱 아니고

뭐 술 맛도 나지 않았지만 환자가 있으니 더더욱 술을 마시기가 불편했던 것이다.

그 적적함이란 게 이루 말 할 수 없었다.

금단증세처럼 정서적으로 불안했고 좌불안석. 머 그런 상태로 괜히 왔다 갔다 했다.

그러다 뭔가에 집중 할 필요를 느끼게 되면서 일거리를 찾다보니 집안 청소에 나섰는데

물론 중간 중간 바둑도 둬가면서 했지만.

그게 방공호가 아니라 내 무덤을 판 결과를 초래하게 되었던 것이다.

우선 작금의 일상을 한번 나열 해 보자.

새벽3~4시에 기상하게 되면 대창에 나가 낯익은 기우님들과 문안인사로 잠을 깨우고

7시까지 일하다 들어오면 마눌님 깨워드리고 원두커피를 내려 대령한다.

거기에 마눌님 컨디션에 따라(돈이 딸려 스트레스를 받았거나 연속극 오래 봤거나…….)

설거지는 물론 아침밥까지 해놔야 한다. 국거리 없으면 계란탕이라도 눈치껏 해야 하고

그리고 출근준비 끝날 때까지 기다리면 밥을 얻어먹을 수 있다.

일주일에 두 번 정도 쓰레기통을 비워야 하는데 큰방 작은방 문간방 거실 주방 화장실에

내 컴퓨터자리까지 합하면……. 음. 여태 세어보지 않았지만 7개나 된다.

음식물 쓰레기는 거의 매일 비우고 모았다가 일주일 한번정도 내다 버린다.

집안도 평소엔 청소기만 돌리지만 일주일 두 번 정도는 걸레질을 한다.

TV 선전에 보면 똑똑한 놈이 돌아다니며 알아서 걸레질 해 주더만 아직 인연이 닿지 않아

손수 걸레질을 해야 하는데 이때만큼은 집이 너무 넓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욕실과 베란다는 일주일에 한번정도 창문은 한 달에 한번 그리고 동네도 일주일에 한번.

행주와 걸레는 일주일에 두 번 삶아 빨고.

세탁물은 여시들이(모친 딸내미) 많은 관계로 마눌님께서 분담하시는데 유일한 분업이다.

조끔씩 넘어오더니 이젠 거의 전업주부 수준이다

하지만 이것으로 종결자가 되는 것이 아니다.

식탁에서 딸내미가 두 젓가락을 밥그릇에 내리꽂고 잠시 침묵에 들어간다.

그리고는 배시시 웃으며 쳐다보지만 눈을 내려 깔고 외면한다.

“아 하~잉. 나 1키로 불었단 말예요.”

밥숟갈을 물고 쳐다보는 그에게 한 번 더 간지러진다.

“이번 만요. 다음엔 다 먹을게요. 그리고 깨끗하게 먹었어요.”

할 수 없이 턱으로 밥그릇을 가르치면 먹다 남은 밥에 덤으로 국까지 쏟아 붓는다.

“잘 먹었습니다.”

우헤헤…….

인사와 함께 뭔가 의미 있는 웃음을 날리고 제방으로 바람처럼 사라지니

마눌님께서 한마디 한다

“있잖아요.”

“뭐.”

“식은 밥이 어중간하네요. 아침에 국밥 끓이려다가 내가 늦잠 자는 바람에.”

“알았어.”

“그리고 찌개는 버려야 되는지…….”

“놔 둬 내가 처리할게.”

예전엔 어지간한 찌꺼기는 버렸지만 살림에 음식 만들기를 시작하면서 달라졌다

그리고 그의 위는 어느 날부터 집안음식물 종말처리장이 되어 버렸다.

군에서 눈으로 전방에 식량이 조달되지 않아 미역국 미역무침으로 일주일을 때웠는데

다시는 미역을 쳐다보기도 싫었다.

그리고 지금은 숙명처럼 3월 한 달간은 미역국을 그것도 매년 먹어야 하는 신세다

어머님을 필두로 제수씨 집사람 장모님 이렇게 4명의 생일 자가 몰려 있으니

음력 2월은 미역국이 아닌 여시 국 먹는 달이다.

마지막 여시 국을 어저께 정리하고 남은 미역을 냉장고 깊숙한 곳에 쳐 박아 버렸다.

그리고 봄이 왔다

앙꼬(팥) 없는 찐빵 이랬나.

카리스마 빼앗긴 가장의 들에도 봄은 온 것 같지만 마음은 왠지 착잡하다.

그는 속으로 중얼거린다.

이래서 남자는 돈을 많이 벌어야 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