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인연에 바라는 것이 너무 많다

내가 무엇을 해주는가 보다 인연으로 내가 무엇이 되는가에 기대가 크고

그 결과에 따라 인연을 오해하기를 반복한다.

인간이 인간다울 때는 미숙한 모습이 보일 때라 생각하고 그것에 안타까움을

가지는 사람이 따뜻하게 느껴진다. 때로는 사슴처럼 두려워하고 때로는 사자처럼

무서울 때도 있어야겠지만 여우라고 경시해야 할 이유 또한 없다고 본다.

모두가 인연으로 연결되어 있는 것이 자연이라 소멸과 탄생이 곧 존재를 위한 것이라

본다면 인위적인 바람은 더 많은 것을 잃게 만든다.

하지만 현세의 우리는 탄력을 잃어가고 있다

골목길도 초가집도 불편함만 덮고 허문 것이 아니라 생기를 뺏어 가버렸다

딱딱한 시멘트는 바람조차 으스러지게 만들고 그 모서리는 칼날 같다

땅을 덮고 하늘을 가려버려 이제는 내가 선 곳에서 먼 산을 볼 수 없어진지 오래다

빠르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고 배려는 곧 어리석음이요 이기심의 방석이 된다.

사람들은 갈수록 영악하고 잔인해져 가고 마음은 시멘트로 포장되어 간다.

살아남기 위한 몸부림은 처절하고 어떠한 오해도 결과에 산화하고 오도된다.

우리는 살아가는 것인가. 죽어 가는 것인가.

인연은 머무를 때 꽃이 되고 꿀이 되고 나비가 된다.

멀어지면 곧 잊혀지고 남은 인연에 더욱 집착하게 되며 마음은 새로운 인연을 기다린다.

산꼭대기에 사과나무를 하나 심어 인연들이 오가며 길을 만들게 할 수 있는 여유보다

사과나무를 뽑아다가 높은 담 자기마당에서 홀로 즐기고 인연의 길은 막아 버린다.

아무리 각박한 세상에서 살더라도 마음의 시멘트를 걷어내어 때로는 먼지가 날리고

때로는 질펀하고 혹여 넘어지더라도 부서지고 깨어지지 않는 그리고 언제나 도랑을

만들고 코스모스 씨앗도 뿌릴 수 있고 나무막대기 하나로도 그림을 그릴 수 있는 그런

마음의 골목길 마당하나 남겨두자. 인연이 오갈 수 있게.

추웠다가 더웠다가 웃기는 봄 처녀가 제풀에 눈물을 흘리는 날

문득 간사한 인간의 마음으로 인연을 농락하는 것 같은 이상한 생각에 사로잡힌다.

처연하게 내리는 봄비를 바라보며 빗물을 그대로 흘려버리는 시멘트 바닥을 보고

촉촉이 머금을 수 있는 흙 마당을 그려본다.

우리네 마음도 보는 대로 판단하고 느끼기도 전에 흘려버리는 건 아닌지.

늦지 않았다면 지금에라도 마음의 시멘트를 걷어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