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 살아가면서 그리고 19로에 나름 정화 된 상념들을 늘어놓으면서

우리는 후회 없었다 말하기가 쉽지 않다

자신의 운명과 상대와 환경의 변화무쌍함에 한계를 인정하기가 어렵고

무지와 경솔함에서 빚어진 과오도 지나고 나면 실수로 여겨진다.

아쉬움도 있겠고 부끄러움도 있겠고 빚나간 자존심도 있겠다.

그러다 요행으로 그것들이 전화위복을 만들 경우도 간혹 있어 위로가 되나

그 매듭을 잡지 못하면 늘 손이 앞서게 된다.

나서기 전에 고민하지 않고 차에 올라타고 고통스런 고뇌에 빠지는 것이

갈수록 팍팍해지는 삶이 요행을 일상이기를 바라고 위로하기 때문은 아닐까.

순박한 사람을 보면 편안하고 믿음이 간다.

그리고 우리는 흔히 그것을 흙에다 비유하고 물을 순리에 비유한다.

농사도 예전엔 최선을 다하고 처분을 기다리는 천수답이었으니

결국엔 요행이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는지 모르겠다.

자연이 그것을 관장하고 우리는 기다릴 뿐이다

지금이야 편리 우선주의에 자연을 다루는 인간의 오만함이 대세가 되었으나

결국 그 대가로 몇 백 년 만에 이상 징후가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어렵지만 잘못을 일상일 수 있다고 생각하면 악몽에 시달리진 않을 것이며

나도 모르게 내공이 쌓여가는 것은 뜻대로 이루어진 작은 것들의 자신감보다

더 많은 과오를 반성하며 그만큼 신중해졌기 때문이라 생각할 수 있고

자연은 다루는 것이 아니라 결을 찾아가는 순례자 같은 인내의 여행일 것이다.

벌써 팔순 노인이 되어버린 모친이 소일 삼아 갈아오던 텃밭에 앉았다

그럭저럭 10여년이 지나다보니 제법 밭 데기가 커졌다

요즘은 아버지 간병으로 일주일에 두 번 정도 다녀가시는데 애착이 보통 아니다

근 40년을 헤어져 살았고 정이라곤 없지만 내가 간병하고 일하고 하는 것이 안쓰럽다고

당신께서 아들을 위해 자존심과 바꿔버린 고행의 길이다

난들 뭐 바랄 게 있어 나선 길은 또 아니다 그저 천륜이라는 강에 띄운 종이배일 뿐이다

백수하신 할머니의 10여년 치매간병과 30년이 넘은 아버지 중풍간병에서 얻은 것은

당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도록 해야만 스트레스를 받지 않고 건강하실 수 있다는

나름대로의 진리를 깨달게 되었다

우리 땅도 아닌데 땅주인에게 욕도 얻어먹고 뭔가 사들고 다니시고 하시더니

꾸역꾸역 개간하신 게 200평(?)남짓 된다.

그것이 못내 울분이 나 만류도 해보고 애써 심은 채소를 죄다 뽑아버리기도 했다

내가 도와 줄 시간은 없고 너무 혹사하시는 것 같았기에 건강을 생각해 그랬는데

그날 해질녘 플래시를 들고 몰래 나가시는 어머니를 따라 가봤더니

텃밭으로 올라가서 낮에 뽑아 던져버린 채소를 다시 주섬주섬 주어다 심고 계셨다

가슴이 콱 막히고 눈앞이 흐려지며 주체할 수 없는 서러움이 복받쳤다

인기척에 놀란 어머님이 나를 알아보고 당황해 하시며.

“얘야. 내가 잘못했다. 인자 니 말대로 조금만 할테니 이번만 봐주라.”

“이것들이 불쌍해서 잠이 올 것 같지가 않아서.....”

어머님의 눈언저리가 빨갰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고 눈물이 보일까봐 하늘만 바라보다 내려왔었다.

“짹짹짹짹.”

“나요. 나요.”

요즘 같이 불볕더위엔 거의 매일 물을 줘야 할 판이니 예사 일이 아니다

그러나 일상이 너무 팍팍하고 체력도 딸린다.

하지만 그날 이후 시작 된 텃밭일이 이제는 나의 일상에 추가 되어 버렸다

(내가 매를 벌어요)

늘 중얼거리면서도 집안일도 버거운데 텃밭까지 떠맡았으니 쉬는 날이 없어졌다

호스를 집에서 연결하는데 거의 100미터나 되니 깔고 걷는 일도 보통이 아니지만

내가 올라가면 난리가 난다

마치 제비새끼가 어미를 본 듯 입을 벌리고 재잘 되는 소리가 나에게는 들린다.

“그래. 그래 기다려라 이놈들아.”

전화를 걸어 딸내미에게 수돗물 틀라고 지시한다.

“공주야 액션.”

그리고 나는 담배를 한대 피워 물고 호수 건을 힘차게 뽑아 치켜들면

한모금의 담배연기가 창공을 날아갈 때쯤에 몇 번의 에어빠지는 소리가 들리다가

곧이어 “쏴”하는 상쾌한 물소리가 온 밭을 적신다.

“야호. 물이다.”

불볕에 비틀렸던 잎사귀들의 환호하는 박수소리가 난리다

자르르르.............

 

아래 집 윤석이 할배와 옆집 예빈이 할매 그리고 3층 경옥이 할매가 경합을 벌린다.

넷 집에서 밭을 일구고 있는데 은근히 서로 경쟁이 치열하다

그 와중에 내가 난리를 쳤더니 쑥덕쑥덕 말들이 많았고 가뜩이나 아들자랑에 밀려온

어머님은 얼마나 가슴이 아팠을까.

올망졸망 매달린 오이와 가지 그리고 호박에 탐스런 빨간 고추들.

새파란 상추와 파 부추.

어느 덧 내 자식이 되어 버린 녀석들을 돌아보며 대견한 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다

“농사짓지 말래며.”

3층 경옥이 할매의 질투어린 비아양이 일소하게 만든다.

(잘난 아들은 돈 많이 벌어 주잖아요.)

올해도 우리 집이 소출이 젤 많단다. 해봐야 열 근 정돈가 머 그렇지만.

“요새는 고추 따는 재미가 넘 좋다. 니가 수고 많았데이.”

^^.

따로 말이 필요 없다. 그냥 서로에게 웃음 한줄기 건네면 된다.

요즘은 산짐승들이 많아 울타리도 자주 보수해야하고 물도 자주 줘야 한다.

하지만 애기들은 내가 거둔 만큼 자라주고 반겨주고 그리고 이쁜 짓 한다

나의 진심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요령이 필요 없는 곳.

흙냄새와 풀 냄새 새소리와 바람 시원한 텃밭에서 작은 순리를 배우게 된다.

세상에 돌아보면 전시도 아닌데 니네 없이 나라를 구하겠다고 아우성들인데

그들의 텃밭은 어떤 모습들일까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