높지는 않지만 가파른 산등성 어깨쯤에 제비집처럼 자리한 벽암사가

이끼 낀 돌 축대 위에 아슬아슬하게 앉아있다

갓바위 뒷길을 수십 번을 오가며 저곳엔 누가 어떤 모습으로 있을까

아담한 암자일까 허름한 움막일까 혹여 무속인 이 있는 건 아닐까

산사기행으로 적합할까 전통성은 찾아 볼 수 있을까 알릴 것은 있을까.

다음을 기약하기를 몇 년이 지나고 오늘 문득 마음이 끌려 한걸음에 올랐다

아직도 할머니 49재가 며칠 남았지만 할머니 같은 암자를 기대하고 오르며

문득 아래를 내려다보니 탁 터인 골 아래 신작로를 따라 돛단배 흘러가듯이

버스한대 유유히 지나가고 골짜기에 냇물소리 요란하다

편안한 풍경에 잠시 자유를 느낀다.

1세기를 사시는 동안 세속에 물들지 않고 편안한 마음으로 남에 말에

동요되지 않으며 당신으로 말하는 것은 오직 정직과 성실한 품행이었다.

그 믿음은 나를 위해 시작되고 나에게서 멈추었고 그렇게 다시 시작 되었다

평생을 나 하나만 믿으시고 나의 품에서 편안하게 마지막까지 하이파이브로

나를 격려 하시고 가셨다.

이제 산사기행을 하는 목적이 달라졌음이 극락왕생을 염원하던 길이 살아계시는

것과 보내 드리고 하는 것에서 달라진 것이다 염원을 쌓아가던 길이 이제 와서는

잠시 허탈감도 느끼지만 필히 안주 하시기를 기원하며 마무리하려고 하는 것이다.

스님이 출타중이라 뵙지를 못한 것이 평범 소박하다 못해 초라하게 보이는 모습이

울 할매가 사셨던 인생 같고 뭔가 어설픈 듯한 품새가 혹여 속세에 절은 눈깔이로

어리석게 판단할까 두려운 마음을 주머니 속에 쑤셔 넣고 내려옴에 감사하려한다

그리고 다시는 오르지 않을 것이며 훌륭하신 스님을 그냥 마음에 그려두려 한다.

평상에 앉아 준비해간 삶은 계란 두 개와 비스킷 하나 그리고 커피 한잔을 마시며

산 아래를 굽어보는 편안함은 울 할미의 품속에서 느꼈던 그 느낌이었다.

다음 산사는 송광사를 다녀올까 합니다.

예전에 저격병님과 나무나루님하고 동행 일정을 잡아 보았는데 잠정적으로 3월쯤으로

예상했다가 갑작스럽게 할머니를 보낸지라 4월이나 5월로 연기 했는데...

여튼 일정이 잡히는 대로 운주사도 같이 다녀오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