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카시아 하얀 꽃 흐드러지게 핀 5월의 어느 날.

산들 바람에 실려 오는 향이 자칫 숨을 멈추게 할 듯 전율을 느끼게 한다.

평상에 드러누워 나뭇잎 사이로 힐끗힐끗 내미는 푸른 하늘을 바라보자니

내 게으름이 여유가 되고 평온이 되다가

갑자기 그리움 몰려와 동그라미 하나 둘 그려지기 시작한다.

40대에 인터넷을 접하고부터 변함없는 생활 속에서의 만남이 어느덧 50대.

미처 세월을 느끼지 못하고 지나간 시간들이 상념 따라 쓰러진다.

그렇게 여기는 시간을 잃어버린 마을이다

몇몇을 제외한 대부분의 사람들을 오직 글로만 소통하니 글이 곧 얼굴이다

그것은 내 상상으로 만들어가는 신비롭고 아름다운 그리움이 된다.

내 추한 모습을 보이기 싫어 나만큼 그리워 해 줄 그 모습으로 남겨지고 싶고

먼발치서라도 가끔은 스쳐갔으면 하는 첫사랑 같은 만남들이다

글에서 흰머리가 나겠는가. 주름이 생길까.

어쩌면 더 중후한 맛을 더해 베레모가 자연스럽게 어울리도록 멋있게 늙지 않을까

우리 이웃 동네가 불로동이라 고려 때 왕건이 이름 지어 준 동네가 있는데

그리고 보니 여기가 시간을 잃어버린 마을 곧 불로동이라는 생각이 든다.

나는 얼마나 남았을까.

들어오면 늘 그렇게 만나던 사람들이었고 지금도 다들 그렇게 만나고 있는데

애초 인연이 닿아 특별했는지. 가고 나서 그리움인지

무심히 살아 온 시간을 돌아보다 먼저 간 동그라미들이 한 없이 늘어선다.

아. 또 5월이구나.

언제부턴가 내 쓸쓸한 5월은 그리움이 바래 질 때까지 향을 피우는 달이 되었다

만석. 샤프. 그리고 배추님도 아마 이때쯤 가셨지.

최근 이청선생의 댓글로 알게 된 노을강님의 부고 소식도 가슴 아프다

모두 50대인데.

인생의 돌을 일찍 거둔 이유는 속속들이 알겠는가마는 삶의 유. 불리를 떠나

내가 버티고 사는 것으로 견주어 볼 때.

아마도 운명의 시간공격을 받았거나 뭔가 착각이 있었던 건 아닐까.

이제 병상에서 오늘 내일 하면서도 30년 넘은 웬수 아버지의 삶에도 연민이 가고

어머님의 백발과 거친 손 휘어진 허리가 안타까워도 건강하심에 늘 감사하나

무능으로 미뤄지는 보은이 덧없는 하루하루에 서럽다

생활이 팍팍해도 도리를 하고 사노라 스스로 위로해도 몸과 마음만으로 안되는 건

신세 때문에 죽고 싶어도 못 죽는 이유가 되고 변명이 된다.

책임이라고도 하더라만.

삶의 중력이 새삼스러울 땐 가족의 생활을 보장 받으면 세상 쓰레기들을 모두 껴안고

바다 속으로 뛰어 들고 싶은 생각이 문득문득 난다.

나는 왜 이렇게 세상을 이해 못하고 세상은 왜 나의 노고에 술 한 잔 사주지 않을까.

할아버지 할머니를 보내다 어느새 주변의 아래위에서도 이별이 가까이 다가왔다

나는 언제까지 배웅하고 가슴앓이를 하면서도 다행으로 생각하며 살 수 있을까

그래도 살아 있는 동안 나에게 그리움을 안겨 준 그들을 위해 향을 올리고

나를 싫어하는 사람들의 이유를 이해하고 나를 이해하는 사람들의 배려를 잊지 않으며

여기가 유일한 휴식처기에 먼저 간 이들과 남은 이 모두 나에겐 더 없이 소중하다

살았을 제 수 많은 시시비비는 추억이 되고 미안하고 그리고 감사함뿐이다

만약 내일 내가 다시 눈을 떤다면 만나는 기우님들의 평온과 안녕을 기원할 것이다.

나를 기다려주지 않아도 내 갈 곳에 있어주는 고마움으로.

그리고 5월에 가신님들이여 내 가득 술 한 잔 올리니 부디 평온하시라. (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