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지(破紙)

전단지처럼 어지럽게 쌓여가는 파지를 보며 생각했네 버려야 할 것이 많아진 나이, 길(道)로 치면 모퉁이라네 그래서 더 쓸쓸한지도, 빈 옆구리가 자꾸 꺾이면 속도를 놓쳐버리고 말지 안개가 걷혀도 역시 모퉁이, 아찔한 취기가 도네 현기증이라네 언제 이 많은 문장들을 마구잡이로 써갈긴 것일까 기웃기웃 들여다 보니 누더기 같은 종이 한 장 한 장 마다 술냄새가 났다네 아흐, 이것 보다 차라리 개밥그릇이 나아

단물 빠진 껌을 씹으며 파지를 태우는 일이 점점 많아졌다네 파지는 재로 바람에 흩어지고 허공을 떠도는 연기는 내 가슴에 안개로 자욱했지 마음을 확 끄는 그런 시 한 편 신기루처럼 내 앞에 나타날 수 있다면 투명테이프로 꼭꼭 붙여두겠는데 요놈의 감정이 메말라 바닥을 드러내니 버려진 파지들에게 미안해서 고개를 들 수가 없네 불발이 된 파지가 폐허처럼 이내 잠들어도 아차, 뒤돌아보면 나는 다시 파지를 만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