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일기 106, 추석휴가

 주말에는 핸폰 알람이 울리지 않는데도 눈을 뜨니 새벽4시 이다.
살그머니 일어나 행장을 차린다. 오늘은 모처럼 쉬려 했는데 약제부에 한 명이 빠져 대신 나가기로 했다.
지난 12일 일요일에 쉬고 그 이후론 추석연휴 3일을 포함해 하루도 쉬지를 못했다.
명절이면 사건 사고가 더 많고 요즘 젊은이들은 일하기 보다는 맞벌이의 처와 집에서 휴일을 보내려한다.

 베란다 빨래걸이에서 내려 접어서 봉투에 넣는다. 자는데 깨워 다림질을 부탁하기가 내키지 않는다.
인기척에 민감한데도 깨지 못하는 것을 보면 얼마나 피곤하면 저럴까 싶다. 양복을 입고 나서기 전 뒷 베란다에서 담배를 한 대 핀다.

 "8시 까지 간다더니 왜 벌써 일어났어?"
 "다림질 해야지!"

 서둘러 일어나더니 커피와 피자를 준비해 준다. 전철역까지 태워 준다며 분리수거 쓰레기 봉투를 들고 같이 나선다. "내가 버릴께 차 가져와."

 어둑한 새벽 차는 터널 속을 달린다. 그제서야 윗주머니 속의 돋보기 생각이 나 보니 없다.
 "안경이 없네." "식탁에 뒀나 돌아갈게." 돋보기가 없으면 출근을 해도 아무 일도 할 수 없으니 할 수 없이 차를 돌린다. "아까 쓰레기 버릴때 빠졌나본데."
쓰레기 장 앞에서 길에 떨어진 돋보기를 발견하곤 반가워 써 본다. 껌껌해서 인지 뭔가 이상하긴 해도 찾아 다행이다 싶어 다시 차를 타고 나선다. 찻속에서 다시 써보니 알이 양쪽 다 빠져 있다. 아차 싶지만 아무 내색도 안하고 전철역으로 향한다.

 약제부는 토요일은 7명 일요일은 5명 투입을 한다. 오전 7시 부터 두 명은 병동 라운딩, 한 명은 고가 수액 검수, 한 명은 기송관 나머지 한 명은 컨베어를 담당해야 한다. 기송관(Air shooter) 앞에서 연신 발송을 하며 리스트에 기재를 한다. 돋보기를 전에 쓰던 것을 쓰니 애로가 많다. 응급실로 급한 약을 보내는 것을 부러 내가 들고 나선다.응급실 앞에서 만난 우리 젊은 직원은 대뜸 10월 근무표를 봤는데 왜 나이트 다음이 데이 냐며 그럼 못하죠 한다. 이 친구 좋게 봤었는데 아니군 싶다. 이번 달에 몇명 충원을 하려던 것을 아직 못 했으니 속으로 참아야지 다짐한다. 10월 부터 ER 직원을 5에서 6으로 증원하니 근무여건이 나아질 것이라고 좋게 예기하고 지나친다.

 이번 달엔 노동부까지 직접 방문하며 충원에 주력했는데 결과가 아직 없어 이제 나의 사고방식을 추세에 맞춰 바꿔야 되겠다고 생각했다. 90명 직원을 한사람 한사람 그 사람에 맞춰 상대의 입장에서 생각을 해야 되겠구나 라고 나로서는 그동안 생각지 못했던 파격적인 변화를 도모한다.

 시대와 추세가 변하는 것을 읽지 못하면 뒤처지는 것 이겠지.
45세 이상 나이 든 직원들이 전부였던 것이 이젠 23살 부터 다양한 연령층의 젊은이들이 동참한다.
회사의 근무 명령에 무조건 따르지 않고 주말이면 쉬려하고 년차휴가도 수시로 사용한다. 그럼 월급이 적은데도 개의치 않는다.
그래 저런 젊은이들이 병원에서 일을 해 주는것만도 감사해야겠지. 젊음의 파워와 민첩함이 있지 않은가!
내가 이미 너무 구닥다리가 되 버린게지.

 나도 변화하자.
일요일은 오후3시가 정시 퇴근이지만 12시에 병원을 나선다. 추석연휴 3일을 포함해서 지난 보름간 한 번도 쉬지 못했으니 정당한게지.

 집에 전화한다.
"아침에 안경이 알이 없는 것을 당신에게 예기하면 놀랠까봐 말을 못했어."
"내가 괜히 쓰레기를 버리자 해서 그랬지."
"아냐 내가 당연히 해야 되는 일이지."

나도 이젠 주말엔 젊은이들처럼 집에서 오손도손 시간을 보내야 되려나.

너무 피곤해 병원 앞 구름다리를 건너 지하철 역 까지 가는 것도 힘들어 대로 변에서 버스를 앉아 기다린다.
시골에서 올라오는 상경객들의 버스가 밀려 대로에서 지체한다.

아 맞아 추석연휴가 오늘 까지인 사람들이 많겠지.

나의 휴가는 버스 속에서 편안히 깜박깜박 조는 것이지.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