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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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말[68회] 14부 승부를 찾아서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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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부 연락선 페리호가 현해탄 검푸른 물결을 헤치며 앞으로 나아간다. 평사는 배 밑으로 부서져 내리는 선미(船尾)의 흰 포말을 멍하니 내려다본다. 떠나는 날 평사와 화정은 집에서 큰길까지 걸어 나왔다. 같이 걷는 동안 두 사람은 줄곧 말이 없었다. 갈림길에서 화정은 평사와 헤어져 권번으로 향했다. 옥색 한복에 푸른색 두루마기를 걸친 화정의 뒷모습을 평사는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바라보았다. 화정은 결코 뒤를 돌아보거나 발길이 흐트러지는 법이 없이 꼿꼿하게 앞만 보고 걸어갔다. 파도를 헤치며 배는 망망대해를 끝없이 미끄러진다. 배가 일본 해역에 들어섰을 때 정 역관이 평사가 몰랐던 사실을 실토했다. 「백상훈 남작과 얼마 전에 일본을 다녀온 일이 있었지. 그곳에서 게이오 4단을 만났네. 사실 자네의 일본행은 그 친구가 주선했어. 자네의 기력이면 일본 본토에서도 통할 수 있다는 게 그의 판단이었네.」 갑판 위로 바람이 불어와 평사의 옷깃을 스친다. 일본이면 어떻고 중국이면 어떻단 말인가. 어디든 가 보리라. 바람처럼 물처럼 발길 닿는 대로 가 보리라. 그리하여 홀홀히 떠도는 부운처럼 살아 보리라. 바람의 유자(遺子)되어, 방랑의 깃발되어 정처 없이 흘러가 보리라. 망망대해, 바다 한가운데 조난당한 난파선과 흡사한 자폐(自閉)의 심경으로 평사는 바다 건너 일본 땅을 바라본다. 어느새 육지가 성큼 눈앞으로 다가온다. 긴 고동소리를 울리며 배는 힘차게 나아간다. 멀리 수평선 끝에 하늘과 바다가 맞닿아 있었다. 시모노세키항에 내리자 게이오가 기다리고 있었다. 「반갑소이다, 추선생.」 그는 옛날의 감정을 모두 잊은 듯했다. 「차를 대기시켜 놓았으니 그쪽으로 갑시다.」 걸어가며 정 역관이 평사에게 슬쩍 귀띔한다. 「관동대지진 때 무고한 조선인을 수천 명 죽창으로 찔러 죽인 민족이네. 믿을 수 없는 놈들이지. 내 장조카도 그때 잃었네. 참으로 똑똑한 청년이었는데…….」 부두를 지나 밖으로 나오자 도로변에 낡은 승용차가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세 사람은 승용차에 올라 탔다. 「마사오(雅雄)라고 본토에선 손꼽히는 내기바둑꾼인데, 솔직히 나보다는 윗길입니다.」 달리는 차 안에서 게이오가 말을 꺼냈다. 「그런 인물이 왜 전문기사가 되지 않았소?」 「돈이지요. 전문기사라고 해 봐야 허울 좋은 껍데기일 뿐 오히려 실속은 그들이 챙기지요.」 「그래도 게이오상보다 고수라는 건 선뜻 납득이 되지 않는군요.」 「두 번 두어 다 졌으니 그럴 수밖에요.」 게이오가 솔직히 털어놓자 정 역관이 놀란다. 「대단한 바둑이군.」 게이오가 힐끗 평사의 눈치를 살핀다. 「바둑에 어디 만만한 상대가 있습니까. 단 한 수에 승부의 명암이 갈라지는데…….」 평사는 달리는 차창 밖을 물끄러미 내다본다. 군데군데 벌판 사이로 자리잡은 농촌 마을이 뒤로 스쳐 지나간다. 산이 많고 평야가 좁아 산하의 굴곡이 조선과는 큰 차이가 없다. 명치유신 이후로 개발된 농가는 주로 기와집이었다. 그러나 유려한 곡선을 그리는 조선 기와집과는 달리 딱딱하게 직선으로 처리한 기와집이 대부분이었다. 평사에겐 어쩐지 농촌 마을의 한적한 모습이 답답하게 느껴졌다. 「어쨌든 좋은 때 오셨습니다. 알고 계시는지 모르겠지만 지금 일본은 중국에서 발견된 천재 소년기사 오청원이 얼마 전 입국한 이래 어딜 가나 바둑 이야기뿐이니까요.」 오청원(吳淸源). 후일 수백 년 일본 바둑 사상 단 세 명에 불과한 기성(碁聖)의 반열에 오른 그는 당시 약관 열네 살의 소년이었다. 오청원이란 기재가 발견된 이래 그의 초청 문제로 일본은 한 차례 파문을 겪었고 우여곡절 끝에 그가 일본에 상륙함으로써 일본은 또 한 차례 술렁거렸다. 그 오청원이 입국한 것은 불과 열흘 전의 일이었다. 「나도 들은 적이 있소. 대단한 기재라고 합디다.」 정 역관이 게이오의 말에 맞장구를 친다. 평사는 그들의 대화엔 관심이 없는지 여전히 차창 밖으로 시선을 고정시키고 있었다. 먼 곳에서 열차가 기적을 울리며 철로 위를 지나간다. 열차는 철로를 타고 꾸불꾸불 산모퉁이를 돌아 사라진다. 마사오는 중년의 나이에 자그마한 키의 사내였다. 짙은 눈썹 아래 매섭게 빛나는 눈매는 한눈에 봐도 승부사의 모습이었다. 간밤의 과음으로 아직 숙취가 가시지 않은 평사를 보고 마사오는 눈쌀을 찌푸렸다. 평사의 헝클어진 모습은 마사오의 기분을 상하게 했다. 고수들간의 대국에서는 사소한 틈 하나가 승부로 직결된다는 사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정 역관은 내심 평사가 불안했다. 평사는 밤을 새워 술을 마셨고 수면도 거의 취하지 못한 상태였다. 돌을 가려 평사의 흑번이 나오자 정 역관은 속으로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흑을 쥐면 그나마 선착의 효를 기대할 수 있지만 백을 쥔 이상 어려운 싸움이 될 것이 자명했기 때문이었다(당시는 호선 바둑이라도 덤이 없었다). 바둑은 무리 없이 진행되었다. 그러나 바둑은 외형상으로만 그렇게 보였을 뿐, 마사오의 입장은 매우 미묘했다. 마사오가 계속 장고를 하는데도 불구하고 평사는 시종일관 빠른 속도로 바둑을 두어 나갔다. 수를 읽고 두는지 파악할 수 없을 정도로 마사오가 장고 끝에 한 수를 놓으면 평사는 곧바로 다음 수를 착수했다. 평사의 그런 행동은 마치 아무렇게나 두어도 이길 수 있다는 자신감으로 주위에 비춰졌다. 마사오는 슬며시 화가 났다. 바둑이 중반에 접어들자 마사오는 건방진 평사의 운석(運石)을 향해 칼을 뽑았다. 마사오는 허약한 흑말의 허리를 잘라 양곤마로 몰아 갔다. 행마의 형태로 보아 잡으러 가는 수는 누가 보더라도 타당했고, 마사오는 기이한 형태로 비틀어져 있는 평사의 대마를 잡아낼 자신도 있었다. 그때, 반상 위에 이상한 현상이 일어났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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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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