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밤 술집에서 또다시 송강과 마공이 대판으로 싸웠다. 삼보 사건으로 독립군들이 모여 앉아 밤늦도록 술에 취해 횡설수설 말들이 많았는데 갑자기 마공이 송강을 향해 욕설을 퍼부었다.

「야! 송강. 너그들이 삼보를 어찌 아노! 가들이 어떻게 사는 줄 알기나 아나! 가들을 이해한다꼬? 하기 쉬운 말이라고 함부로 씨부리지 마라! 너그들이 우째 가들을 이해하노. 세상에 듣다 듣다 별 희한한 소리 다 들어 보겠다. 송강, 모르면 개폼 잡지 말고 아가리 닫고 술이나 처묵는 기라. 알겠나!」

마공은 송강, 편 교수 이하 독립군들이 삼보 사건을 이러쿵저러쿵 언급하자 속이 뒤틀렸다.

마공을 바라보는 송강의 시선이 심상찮다.

「마공, 자네가 화낼 일이 아니야. 우리가 삼보에 대해 어떤 말을 하든지 그게 자네와 무슨 상관이 있나. 자넨 바둑으로 남의 등이나 치고 살아. 그게 자네한텐 어울려. 이런 일은 자네완 무관한 일일세. 자네 혹시 사회를 좀먹는 기생충이란 말 들어 봤나. 인간 쓰레기들 말이야. 언제 시간이 나면 가슴에 손을 얹고 잘 한번 생각해 봐.」

송강의 말이 끝나자 술잔이 날아가고 서로 멱살을 잡고 엎치락뒤치락, 독립군들은 뜯어말리고 술집이 난장판이 됐다.

송강과 마공은 끊임없는 평행선이었다.

얼마 전 기원 서양 사건 때도 송강은 마공의 행동을 비난했다. 기원 건물 주인인 신 사장이 돈을 앞세워 서양을 건드린 사건이었다. 오래 전부터 서양을 집적거리던 신 사장이 마침내 술을 먹여 서양을 여관으로 끌고 가 강제로 덮친 사건이었다.

사건 며칠 후, 술에 취해 가던 신 사장을 누군가가 흠씬 두들겨 패 주었는데 독립군들은 누구나 심증적으로 마공의 짓일 거라 생각했다. 송강은 사석에서 마공의 방법이 극단적인 사고라고 못을 박았다.

한번은 차씨 성을 쓰는 떠돌이 독립군 한 명이 치수를 속이고 돈을 기만 원 챙겨 기원을 뜰 참이었는데 막판에 실력이 탄로가 났다. 독립군들이 격렬하게 그를 성토했다. 그때 마공이 나서서 그가 딴 돈을 그대로 돌려 주고 선선히 그를 놓아 주었다. 그때도 송강은 마공의 방식을 못마땅해 했다. 없는 자에게 무조건 관대한 마공의 방식을 송강은 이해 할 수 없었다.

민수의 판단으로는 송강과 마공의 대립은 그 진원지가 신분과 출신의 벽이었고 그로 인한 사고방식의 차이였다.

일류 대학 법대 출신으로 고시 1차까지 합격했으나 어떤 이유에서인지 중도 포기하고 기원으로 흘러 들어온 송강 김송백.

발길 닿는 대로 이곳 저곳 반평생을 홀로 떠돌아다녔던, 배운 것 하나 없는 일자무식의 떠돌이 독립군 마공 김월출.

송강이 재사(才士)라면 마공은 술사(術士)였고, 송강이 장수(將帥)라면 마공은 자객(刺客)이었다. 동질의 이념을 표방하고서도 그 맥은 결코 일치하지 못했고 그 방법론 또한 방식을 달리했다. 마공은 송강의 철저한 논리주의적 경향을 못 미더워했으며 송강은 마공의 급진적 냉소주의를 지극히 꺼려했다. 두 사람이 필연적으로 평행선을 가는 이유는 결국 근본적인 삶의 방식에 문제가 있었다.

아무튼 삼보 사건 이후 그들의 사이는 급속히 냉각되어 갔다.

한 달이 넘게 민혜에게선 소식이 없었다. 내려와서 간간이 열흘이나 보름 단위로 민혜에게서 편지가 오곤 했으나 한 달 전부터는 감감 무소식이었다. 그사이 가을이 갔고 겨울이 시작되었다.

정월의 혹독한 추위가 계속 기승을 부리더니 어느 틈에 그 추위도 서서히 흐름을 달리했다. 민혜의 일상이 궁금했으나 진공상태로 방치한 채 민수는 꾸준히 기원에만 드나들었다. 사랑은 멀어져 가고 있었고 삶은 방향감각을 상실한 채 깊이를 알 수 없는 세상과 이념의 무게에 눌려 어디론가 난파하고 있었다.

「아이고! 이 씹할 놈아!」

충호가 생욕을 하며 들고 있던 돌을 통 속에 집어 던진다.

충호는 악수를 놓으면 자기 스스로에게 욕을 하는 버릇이 있다. 스스로를 자책하는 묘한 습성인데 듣기에 따라 상대편에게 욕을 하는 것 같아 이따금씩 오해의 소지가 발생하기도 한다. 다행히 지금 상대는 충호의 호적수인 편 교수다. 편 교수는 충호가 또 시작했구나 하는 정도로만 생각하며 씨부리든지 말든지 관심이 없다.

듣기조차 민망한 별의별 욕을 한 시간 가까이 해대던 충호가 판을 거두고 난롯가에 앉아 꾸벅꾸벅 졸고 있는 이 영감 곁으로 다가온다.

이 영감은 요사이 와서 시들시들하다. 근력이 떨어지는지 그 좋아하던 바둑도 판수가 많이 줄었고 근간엔 남의 바둑을 구경하거나 난롯가에 앉아 있는 시간이 더 많았다.

「졌나?」

「졌구마.」

「편 바둑이 보기보다 실하더마.」

「실하긴요. 쑤시마 들어가는 바둑인데 내가 착각을 했다꼬요.」

「옛날엔 한 두 수 보는 것 같더니 니 바둑도 다 됐다.」

「아이라요. 내가 마음만 먹으마 편은 내한테 안 되는구마.」

「충호야.」

「말하소.」

「몸이 오슬오슬한 기 어디 가서 개나 한 마리 했으마 딱 좋겠다.」

「개 좋은 거야 누가 모르요. 쩐이 문제지.」

이 영감이 눈을 지그시 감는다. 개 이야기만 나오면 이 영감은 감회에 젖는다.

개와 이 영감은 불가분의 관계였다.

피난 시절.

이 영감은 주린 배를 움켜쥐고 미친 듯이 거리를 헤매다가 우연히 길거리에 나돌아다니는 개를 몇 마리 잡아먹은 일이 있는데 그것이 인연이었다. 그때 맛을 들인 이 영감은 그 후 줄기차게 개를 가까이했다. 자다가도 개 이야기만 나오면 벌떡 일어날 정도로 이 영감은 개를 좋아했다.

그러나 세월이 흘러 살림은 궁색해지고 설상가상으로 개값마저 폭등하고부터는 마음은 항상 그곳을 향하고 있었지만 현실은 어찌해 볼 방도가 없었다.

이 영감의 개에 대한 경륜은 상상을 초월했다.

며칠 전 시장에서 어린아이가 사나운 맹견에게 다리를 물려 아이는 까무라치고 시장 안에 난리가 났다. 사람들이 몽둥이로 개를 때리고 뜨거운 물을 퍼부었건만 개는 끈질기게 아이를 물고 늘어졌다.

때마침 이 영감이 충호와 그 앞을 지나치다가 그 광경을 목격했다. 이 영감이 어슬렁어슬렁 개 앞으로 다가갔다. 개와 이 영감의 눈이 마주쳤다. 이 영감은 이미 개의 마음을 훤히 꿰뚫어 보고 있었다. 이 영감은 빙그레 웃으며 개를 회유했다.

(이보시게.

개는 개의 본분이 있고

사람은 사람의 본분이 있다.

개가 사람을 물면 하늘이 노한다.)

이 영감의 손이 물고 있는 개의 두상으로 가는 순간 희한하게도 사나운 개가 양처럼 온순해지더니 물고 있는 아이를 놓고 곧바로 튀어 버렸다. 시장터를 벗어날 즈음 이 영감이 입맛을 쩍 다셨다.

「웬 입맛이오?」

충호가 물었다.

「사람을 무는 개가 진짠기라.」

「뭐가 진짜란 말인교?」

「몰라서 묻나.」

충호가 씩 웃었다.

「개가 영감님을 알아보더마요.」

「사람으로 태어났으마 영락없이 방내기꾼인기라.」

그 일이 있은 후 며칠 동안 이 영감은 식욕이 떨어지는지 바둑을 두다가도 어떤 생각에 한눈을 파는 일이 잦아졌다.

「충호야.」

「와요.」

「어떻게 안 되겠나.」

「뭐 말인교?」

「개.」

「자꾸 그카지 마소. 내 사정 뻔히 알믄서.」

충호가 신경질적으로 반응한다. 이 영감이 개고기를 먹을 수 있는 길은 이 시인을 훑치는 게 유일한 방법이었으나 불행하게도 이 시인은 개고기라면 딱 질색이다.

「죽은 마누라 생각 난다.」

「새삼스런 소리요.」

「그래도 마누라밖에 없었다.」

「자식들은 대관절 뭐하는 놈들이오. 아직도 연락이 없소?」

「연락은 무신, 저거들 살기도 어려울 낀데.」

「치우소.」

창밖에 눈이 내린다. 오후부터 내리기 시작한 눈발이 저녁이 되자 제법 굵어졌다.

문이 열리고 눈을 털며 낯익은 손님이 들어선다. 난로 옆 자리에서 박 총알과 서 중사의 바둑을 구경하던 사람이 이미 약속이 된 듯 방금 들어서는 손님을 맞이한다. 손님이 바둑판 앞으로 앉으며 말했다.

「자네하고 약속 지키려고 140, 150 막 밟았어.」

「세게 밟았구만.」

「160까지 올라가니까 등골이 오싹해지더라고.」

말투로 보아 겁도 난 모양이었지만 은근히 자신의 운전 솜씨를 자랑하는 눈치다. 옆에서 바둑을 두던 박 총알의 입가에 희미한 웃음이 지나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