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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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말[70회] 14부 승부를 찾아서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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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우노 마사히로(河野雅弘)는 귀족 출신의 골동품 수집가로서 바둑에 조예가 깊었다. 교토 지역의 유지로서 집안 대대로 부를 축척한 거부였다. 올해로 환갑을 맞는 마사히로의 기력은 아마추어 1급 정도였으나 그의 골동품 수집만큼이나 편집광적으로 바둑에 심취하여 바둑에 대한 식견은 그 누구 못잖게 뛰어나고 해박했다. 마사히로는 연중행사처럼 1년에 한 번 자신이 돈을 걸어 놓고 현상 바둑대회를 개최했다. 단 바둑에 참가하는 선수는 모두 열 명으로 전문기사든 직업 내기바둑꾼이든 마사히로가 직접 선별했다. 일본 전국에 내로라하는 바둑꾼들은 대부분 마사히로가 주관하는 대회에 관심이 많았다. 이유는 상금이었다. 최고의 승자가 되면 큰돈을 손에 쥐기 때문에 승부사라면 누구나 구미가 당기는 대회였다. 설혹 패한다 하더라도 자기 쪽의 돈이 나가는 내기바둑에 비해 부담도 적었다. 마쓰모토와 평소 친분이 있는 마사히로가 평사의 소문을 듣고 특별히 평사가 와 주기를 권했고 마쓰모토는 기다렸다는 듯이 평사를 데리고 나타났다. 다섯 명씩 두 조로 나누어 이틀 동안 리그전을 벌인 결과 최종전에 올라온 사람은 관서 지방의 강자들을 모조리 꺾은 조선의 추평사와 하남성(河南省) 출신의 재일 중국인 괴걸 왕기련(王騎連)을 이긴 센다이 지방의 일류 승부사 미즈타니(水谷)였다. 특별히 관서 지방의 원로 기사 요시모토(好本) 7단이 입회인의 자격으로 자리를 같이했고 그 지방 유지들이 관전하는 가운데 도요카 온천 여관에서 열린 대국은 이미 흑을 쥔 평사가 초반부터 일방적으로 밀어붙이고 있었다. 중반전에 진입할 즈음 100여 수 못 미쳐 원로 기사 요시모토는 침통한 표정으로 대국장 밖으로 나가 버린다. 내실에 모여 있던 참가자들이 방금 대국장에서 나온 요시모토 7단 주위로 몰려들었다. 그들을 향해 요시모토 7단은 간단히 대국에 대한 강평을 했다. 「50수 만에 승부는 끝났어.」 그의 말대로 그날 바둑은 평사가 쉽게 완승을 했다. 초반 대형 정석에서 미즈타니가 암수를 들고 나왔으나 그 형태는 평사가 과거 여목도장에 있을 때 설숙, 동설 등과 더불어 수없이 많이 연구가 된 정석이었다. 거꾸로 걸려든 미즈타니는 초반부터 비세에 몰려 허덕거리며 형세를 만회하고자 안간힘을 썼으나 승부는 뻔한 이치였다. 게이오가 152수 완이라고 기록한다. 대국이 끝나고 마사히로가 주연을 베풀었다. 도요카 여관은 원래 요정이고 보니 술자리는 대국이 끝나는 시간에 맞추어 미리 준비되어 있었다. 게이샤들이 분위기에 맞추어 흥을 돋군다. 술이 여러 잔 돌아가자 입회인으로 참석했던 요시모토 7단이 평사의 전주 마쓰모토에게 핀잔을 준다. 「조선엔 순장 바둑밖에 없다더니, 어디서 저런 인물을 데려왔나?」 마쓰모토가 멋쩍어하며 어색하게 웃는다. 「쇼후시(승부사야)！」 「조선 바둑을 깔보다간 큰코다치겠어.」 사람들이 제각기 한마디씩 한다. 평사는 그들의 말을 외면한 채 술을 마신다. 「그렇지 않습니다. 요시모토 선생께서 조선 바둑을 모르고 하는 소리요.」 시합을 주최한 마사히로가 특유의 부드럽고 고풍스런 말투로 요시모토의 말을 반박한다. 「그런가요. 난 또 마사히로 선생께서 조선 바둑에 그렇게 관심이 많은 줄 몰랐습니다.」 요시모토 7단이 넌지시 마사히로를 비꼰다. 「십수 년 전인가 골동품 구입차 중국 산동성엘 갔지요. 그곳에 가서 우연히 바둑의 대가로 손꼽히는 하림이란 산동성 국수와 상면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하림 선생이 제일 존경하는 바둑인이 조선인이었소.」 「조선인이었다…….」 요시모토 7단이 입맛을 다신다. 「그렇습니다. 그분이 제일 존경하는 사람은 조선의 대국수 여목 선생이란 분이었소.」 「여목이라…… 여목이란 사람이 누구요?」 「저도 뵌 적은 없는데 하림 선생의 말로는 그분의 탁월한 기예와 인품은 두고두고 잊을 수 없다 하셨소. 나 또한 조만간에 조선으로 가서 그분을 찾아 뵈려던 참이었소.」 「여기 계신 분들 중에 누가 여목이란 이름을 들어 본 적이 있소?」 요시모토 7단이 좌중을 둘러본다. 사람들의 눈길이 평사를 의식한다. 평사는 아무런 말이 없다. 「그분은 2년 전에 타계하셨습니다.」 말석에 앉아 있던 게이오가 여목의 죽음을 알린다. 게이오는 평사가 여목의 제자였다는 사실을 굳이 밝히지 않는다. 「아뿔사！ 그럴 수가. 내 한 번도 뵙진 못했지만 마음속으로 여목 선생을 깊이 흠모했거늘…….」 마사히로는 여목의 죽음을 진실로 애통해한다. 마사히로는 일어나서 조선 쪽을 향하여 정중하게 두 번 절을 한다. 요시모토 7단의 얼굴이 약간 일그러진다. 「사람이 태어나서 죽는 것은 산샤 명인께서도 말씀하셨지만 하늘의 뜻이오.」 요시모토 7단이 언급한 산샤(算砂) 명인은 초대 명인기소이자 홍임보가의 개조로서 닛가이(日海)라는 법명을 쓴 중이었다. 그는 일본 바둑의 실질적인 원조로 추앙받는 사람이다. 일찍이 바둑을 좋아하던 오다 노부나가(織田信長)와 인연을 맺어 자신이 몸담고 있는 적광사(寂光寺)를 크게 중흥시켰고 스스로 적광사 일곱 탑 파의 하나인 홍임보의 주지가 되었다. 이것이 차후 홍임보란 가문의 연원이 되었다. 그는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를 거쳐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의 바둑 스승을 지내기도 했는데, 1585년 도요토미가 관백(關白)이 되어 열린 바둑회에서 낙승하여 초대 ‘기소’의 자리에 올랐다. 바둑 기사가 공식적으로 관으로부터 봉록을 받은 시초였다. 이후 일본 바둑의 역사는 기소의 자리를 차지하기 위한 피비린내 나는 전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기소의 권위는 불가침의 위력을 지니게 된다. 그 이유는 기사들이 기소의 승인을 받지 않으면 승단이 불가능했기 때문이었다. 그는 일본 바둑을 반석 위에 올려 놓은 걸출한 인재였으며, 그의 노력과 막부의 비호 아래 일본 바둑은 비약적인 발전을 거듭해 왔다. 초대 홍임보 산샤 명인은 65세 되던 해에 세상을 떠나며 다음과 같이 한탄했다. 「바둑이라면 패를 내서라도 살아 보겠지만 목숨이 꺼지는 것은 어찌할 수가 없구나.」 마사히로가 여목의 죽음에 대해 워낙 애통해하자 요시모토 7단이 그것을 빗대어 산샤를 들먹인 것이다. 여목 스승의 이야기가 계속 화제에 올랐으나 평사는 끝내 입을 다물었다. 창 밖 정원에 벚꽃이 활짝 폈다. 샤미셍 소리에 맞춰 게이샤들이 춤을 춘다. 평사는 화정 생각을 한다. 조선에 두고 온 화정의 얼굴이 아른아른거린다. 헤어질 때 말 한마디 없던 여자의 얼굴이, 선홍빛 짙은 여자의 슬픈 얼굴이. 평사는 급히 술을 마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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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수장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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