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이라고 흔히 말해버리는 운명이라는 것이 우리를 웃고 울린다.

승부의 세계에서 일상에서 간발의 차이로 서로의 명암은 사뭇 다르다

하지만 늘 그렇게 편안한 사람이 있고 늘 그렇게 힘들어하는 사람이 있다

편안하고 힘든 것의 차이는 이제 굶주림을 벗어나 안락함의 비교로 변하고

내면적인 아픔을 감추고 외적인 평온을 따르려 사람들은 스스로를 잃어간다

선과 악의 구분 없이 하루살이 같이 눈앞만보고 살아가는 것 같다

물론 모두가 아니고 성실한 일상을 만족하고 살아가는 토양과 버팀목 같은

다수의 선한 사람들이 세상을 지탱해 나간다보지만 소수의 아닌 사람들의

행태가 비옥한 토양을 쓸어가고 버팀목을 갉아 먹는다.

세상을 볼 것 없이 나의 일상사도 평온을 유지하기가 못내 힘들다.

마음이 가라앉고 산만해지면 빈차를 끌고 새벽시장을 지나본다

아무런 목적 없이 바쁜 걸음들 사이를 천천히 지나노라면 신호도 규정도 없는

무질서 속에서 기다려주는 여유와 시끌벅적한 삶의 맥박소리를 느끼게 된다.

여기는 그들의 땅이고 그들의 시간이며 우리는 나는 이방인. 기다려야 한다.

무언의 믿음이 있다.

기다릴 것이라고 믿기에 세속의 규정보다 그들의 발걸음이 우선인 것이다

짐을 들고 리어카를 끌고 상자를 밀고 바구니를 들고 이고지고 들쳐 메고.

시장이 아니라면 나는 버럭 화를 내었을지 모른다.

나의 권리가 무시당하고 침묵함은 비굴하다고 아니면 나로 인해 바로잡아져야 한다고.

하지만 여기는 바쁜 사람들의 땅이다

이들은 태양에 훨씬 앞서 일어나 하루의 시작을 알리고 촌각을 다투어 준비하여

우리가 하루를 지탱할 것들을 모든 삶의 생명수를 배달하는 태양인지 모른다.

그들을 바라보고 있으면 성실하지 않은 게 얼마나 죄악인지 심신이 추슬러진다.

저녁엔 벌써 나약해진 심신을 시련에 핑계하고 밤늦도록 술병을 쓰러뜨렸다.

몽롱하고 불쾌한 아침을 맞아서 지난 행동을 돌이켜 실망으로 머리를 쥐어뜯는다.

멍하니 컴을 바라보다 창밖을 내다보니 꼬부랑 할머니가 유모차에 의지한 채로

길을 건너고 있음을 무심히 바라보다가 가슴 저 한곳을 무언가가 찌르고 달아나고

나는 온몸에 한기가 드는 걸 느낀다.

할머니는 슈퍼 앞에 쪼그리고 앉아 빈병 몇 개를 힘들게 꺼내고 있었다.

슈퍼 아줌마의 난감해 하는 모습이 더 서글퍼다

내가 게으르면 저리 될 것이라는 위기감에 앞서 할머니와 어머님의 얼굴이 떠올라

한줄기 전율이 온몸을 거슬러 올라와 결국 눈시울을 적시고 만다.

나보다 나은 이의 한 시간을 하루 열배를 하고도 몇 날을 더 붙들고 애원 할지라도

나의 힘든 하루가 저들의 몇 년을 보장 할 수 있는데...

이미 나의 자식이 되어버린 부모님들은 내 앞에서 눈치를 보고 기분을 살핀다.

나태한 나의하루가 그들을 유모차를 끌게 하고 빈병과 파지의 앵벌이로 내몰 것이고

가족들의 믿음의 토양을 빗물에 쓸어버리고 버팀목을 싸리나무로 야위게 만들 것이다

그리고도 운명을 한탄하고 세월이 안타까워 술을 마셨노라고.

쥐길넘.

아서라.

세상은. 

운명은.

벌써 너의 존재를 의식하지 않으니 너의 존재가 영원히 기억되고 존중되는

작은 움막에서 불이 꺼지지 않게 지피거라.

운명의 비탈진 산기슭을 쓰러지고 미끄러지며 힘들게 짊어온 땔감으로

가족을 데우려 지피는 아궁이 앞에서 비로소 따뜻함을 느낄 수 있음이다

솥에서 따뜻한 김이서려 나오고 허기를 채워줄 구수한 행복이 익어 갈 때

운명 앞에서 수 없이 쓰러지면서 포기하고 싶었던 그 비참한 순간순간에도

다시 일어나야했던 이유를 알게 될 것이다

그리고 운명이 결코 나를 쓰러뜨리지 못하게 가족의 믿음으로 일어나서

라운드가 끝나기 전에는 끝까지 불씨를 살려야 한다.

운명이 질려버리게 일어나고 또 일어나자 승부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왜.

우리는 분명 한평생을 녹다운경기를 뛰고 있고

가족이 믿음으로 응원하고 있으니

내가 쓰러지는 모습과 그 횟수는 마음에 두지말자

운명이 쓰러지는 순간 그 위로 꽃잎 되어 날릴 것이다.

어느 중년의 하루는

가족을 위해 웃어주고

생존을 위해 웃어야하고

돌아서서 너털웃음을 웃는다.

하지만 홀로 있을 때 그는 누구보다 슬피 울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