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할말은.”

“시간은 얼마나.”

“아주 잠깐........”

“그럼 담배나 한 대 주셔. “

집행관은 상단 유리창을 바라본다.

뭔가 지시를 받았는지 담배를 물려주고 라이터를 들이미는 손이 가늘게 떨렸다

사내는 흰 미소를 머금더니 작은 소리로 중얼거렸다

“당신이 떨고 있구랴.”

조금 어두운 조명아래 전기의자에 앉은 사내 입에서 하얀 담배연기 초연하게 피여 오르고

집행관 외 참석자들은 두 손을 앞으로 포개 모은 채 사뭇 경건한 자세다

보통은 뒷짐 지고 권위적인 자세가 일반적인데 비해

세기의 연쇄 살인범의 사형집행이라기엔 조금 납득하기 어려운 분위기다

“내 가족에게 한마디 전해주겠소. “

“네”

“동영상 말고.”

“말씀하세요.”

사내는 담배 한 모금을 길게 천정으로 뿜어 올린다.

“내일부터 내가 없는 것에 섭섭해 하지 말고 먼 어제부터 없었던 나를 생각하라고”

“내가 이 길을 선택하지 않았으면 더 일찍 이 자리에 앉았을 것이라고 전해 주시오.”

“그리고......”

사내는 말을 잇다 말고 담배를 한참 쳐다보다가 바닥에 던지고 발로 부비 끈다.

그리고 상단 유리창을 바라보다 조용히 눈을 감는다.

“자. 그만 갑시다.”

잠시 무거운 침묵이 흐른다.

“아.”

외마디가 정적을 깨웠다

“한마디만 더.”

“.......................”

“죽을 짓을 하였더라도 꼭 죽어야 되는 경우는 흔치 않으니

되도록 죽이지 않고 바로 잡을 수 있기를 바래봅니다.”

다시 침묵이 흐르다 상단 유리의 그림자들이 사라지자 잠시 후 주변 전등이 모두 꺼졌다.

“어떻게 됐어.”

사내의 질문에 검은 양복의 사내가 고개를 잠시 숙이고 모니터를 들고 책상 앞으로 걸어갔다

그리고 질문한 사내에게 내려놓고 버튼을 눌렀다

“녹화분입니다.”

조금 전 상황을 지켜 본 사내는 검은 정장의 사내에게 조용히 말했다

“음. 수고 많았어.”

“가족들은 잘 챙겨 주도록.”

“네. 그럼.”

사무실을 나온 사내는 곧장 길 건너 술집으로 향했다

“오늘은 어째 혼자 오셨어요.”

“이른 시간 예약하시기에 두 분이서 오시는 줄 알았는데.”

“혹시.”

“뭐.”

“우리 삼각관계 아니죠.”

“지랄 염병은.”

마담의 교태에 사내는 피식 웃으며 안도의 술을 가득 따라 들이킨다.

(이 사람아 나 그 친구 지금 멀리 보내고 오는 길이야.)

“양주 줘봐. “

“웬 양주. “

“성과급 받아 수. 이런 내 정신 일단 들이밀어야지.”

마담은 아예 잔을 두 개를 가져왔고 사내 버그 잔에 반잔 쯤 채울 때까지 눈치를 봤다

그리고 사내의 침묵에 결국 가득 채웠다

“무슨 일 있구나.”

“일.”

“없어.”

“아니 매일 있기도 하고.”

그리고 사내는 거리낌 없이 잔을 벌컥벌컥 들이켰다

오늘따라 더 덥수룩해 보이는 턱수염이 흐르는 술에 흠뻑 젖는다.

마담은 이 사내의 야성미가 좋았고 같이 오는 파트너의 순수함과 넉살도 좋았다

하지만 오늘은 뭔가 다르다

혼자 온 것도 예사롭지 않고 맥주밖에 그것도 두 세병에 끝내던 사람이 양주를…….

평소 같으면 매상이 떠올랐을 마담이지만 뭔가 등줄기로 싸한 느낌을 받았다

(뭔가 있다)

산전수전 겪은 대다 두 사람의 캐릭터도 알고 있는 터라 침묵으로 일관하다 슬며시 일어섰다

그리고 현관 쪽으로 또각또각 하이힐 소릴 내며 걸어가더니 문을 잠그고 세트를 내렸다

사내는 고개 숙인 채 빈 잔을 돌리며 한 숨 짓는다.

(이 사람아 자네 간다고 귀띔이라도 했어.)

“콩콩콩…….”

다시 잔이 채워지는 소리가 들리고 사내는 고개를 들지 않은 채 잔을 들이켰다.

침묵이 어색했는지 마담은 음악을 털려고 오디오 쪽으로 발걸음을 옮기는데

사내의 조용한 저지가 있다

“됐어.”

마담이 어정쩡하게 바라보는데 전화벨이 울리고 사내는 조용히 듣고 있다가

“그 정도는 자네가 알아서 해”

“그리고 나 그만 둘 거야.”

“그래 짜샤. 훈장 같은 소리하고 있네.”

“그 훈장 딱지치기도 못해 임마 니들이 아는 세상은 탯줄에 매달린 세상이야.”

그리고 사내는 전화기를 던져 버린다.

마담은 아직도 상대방에서 뭐라고 하는 소릴 들으며 조용히 전원을 끈다.

“지금부터 내 대사는 뭐야.”

사내는 피식 웃으며 빈 잔을 내밀었다

마담은 아무 말 없이 잔을 채웠고 사내는 이내 비웠다

친구의 그러니까 얼마 전 불의의 사고로 순직한 옛 파트너 아내의 가게다

셋 다 동창이다.

“자기 그만 둘 사람 아니잖아.”

마담의 얼굴에 수심이 가득했고 잠깐 실망스런 눈길이 고개 숙인 사내를 훑어갔다.

남편을 잃고 절망의 시간 두 사람이 다가왔었다

그 땐 세 사람의 웬수들이었지만.

식당도 카페도 적응하지 못하고 애들과의 생활도 막막한 시점에 느닷없는 제의였다

“마 내가 댈꼬 살지도 못하겠고 명 짧은 노티 만날 수도 있고 다 접고라도 말이야

일마하고 내하고 매상만 해도 밥은 묵고 살끼다 여기서 술장사해라. “

“여기 내 후배 가게다 3년 해보고 적응되면 집세내고 안되면 접고 조건 좋잖아.”

처음엔 살림밖에 모르던 여자에게 혼자되었다고 기껏 권하는 게 술장사라고 인간들이

다 그런가 했었다

애들 때문에 마지못해 시작했지만 우락부락한 사내들을 상대하기가 여간 벅차지 않았다

그런데 얼마지 않아 그들의 외모와 달리 순수함을 느꼈고 그동안 몰랐던 것도 알게 되었다

남자들이 하는 일이 여자의 시선으로 판단하기 어렵고 드라마틱한 것도 아니라는 걸.

그런데 지금 이사람 그리고 자신까지 네 명의 시간이 그렇더라도 한 번도 본적 없는 모습이다

자신이 겪었던 그 상실감이 은연중 깊숙이 다가왔다

그리고 여자의 민감한 직감으로 또 가까운 한 사람을 보냈구나 하고 생각하다가.

(아냐)

그녀는 스스로 머리를 심하게 흔들며 부정했다

그리고 자신의 잔을 가득 채워 벌컥벌컥 술을 마셨다

"뭐해. “

사내의 물음에 그녀는 잠시 난감했다가 바로 대답했다

“그냥 나도 자기처럼 마실 일이 생겼다고 생각이 들었어. 아닌가.”

미소를 지으며 또 사내가 잔을 내밀었고 그녀는 가득 채워 주었다

그리고 두 손을 가만히 모으고 앉았으니 사내가 힐끗 쳐다보더니 씨익 웃었다

“많이 늘었네.”

“괜찮겠어.”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며

“응. 오늘은 왠지 그럴 것 같아.”

“사실 말이야 오늘 많이 먹고 싶은데 돈도 사람도 딸리는 거 있제.”

“그래서 마수부터 외상이라고. 그것도 예약 외상. “

마담이 생뚱맞게 받아쳤다

“외상. 하하하 그래 인생이 외상이지.”

조금 분위기가 풀어지는 듯하자 마담은 약간 안도가 되었다가 다시 경직된다.

쌍꺼풀에 가뜩이나 속눈썹이 길어 우수에 찬 눈매가 촉촉함을 보았던 것이다

남편의 죽음을 알리려 왔을 때 문 앞에 선 그의 얼굴에서

그리고 우리의 결혼식 때 신혼여행을 떠나던 창가에서 나를 바라보던 얼굴에서

그렇게 단 두 번 밖에 보지 못했던 그 모습이었다.

마담은 누군가 그의 가슴을 후벼 파고 떠났다는 걸 직감으로 알 수 있었다.

“저기......”

마담이 말을 붙여보려 입을 떼다가 조용히 일어나 주방으로 사라진다.

사내의 어깨가 가늘게 들먹이는 걸 보았던 것이다.

주방에서 담배를 피워 문 그녀.

창가엔 잔뜩 찌푸린 날씨가 드디어 한줄기 하고 있다

그렇게 단 두 번 보았다

딸내미를 보낼 때도 충격으로 아내마저 보낼 때도 그는 무표정 했었다

차라리 소름 끼칠 정도로.

그런 그가 지금 한없이 무너지고 있다

나의 모성애를 자극하는 연기라면 그저 속아주고 싶을 정도다

마담은 자신의 경망스런 생각에 고개를 저으며 저 남자를 어떻게든 보듬어야겠는데

오늘 생애 처음으로 자신이 뭔가 해야 한다는 것을 느꼈지만 난감했다.

그런데 창가에 자꾸만 어른거리는 얼굴이 있다

(혹시.)

아무리 부정 해봐도 저 사람을 무너뜨릴 만한 사람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에게 무슨 일이 생겼구나. 아주 좋지 않은.........)

마담은 재떨이에 담배를 비벼 껐다

그런데 필터에 묻은 자신의 붉은 루즈 자욱이 유난히 선명하게 들어 왔다

“음”

가는 신음소리를 뱉고 천천히 홀 쪽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처음 세 사람이 만나 의기투합할 때 분명한 선을 그었다

가정 파괴범에 한해 응징하되 한 치의 사심 없이 살생은 금물이라고 굳게 맹세했다

누구든 어기면 죽음으로 응징하기로 했었다

엘리트 코스를 밟는 정보과 마담의 남편과 강력계 반장인 자신과 그리고 택시기사.

인물들로나 인원이나 세상을 바꿀 위인들이 아니었다.

그러나 최단기간에 반장이 되는 계기는 세 사람의 호흡으로 이루어졌고

차반장도 더 이상을 추구하지 않았다 그 이유는 현장에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많은 사건을 해결했지만 공로를 동료들에게 돌린 이유다

세상이 갈수록 거칠어지고 교묘해지는데 상황과 심증은 확실하나 증거 잡기가 힘들고

천신만고 끝에 잡아 놓으면 변호사의 뱀 같은 혀 놀림과 검사의 안일한 권위주의

그리고 판사의 구역질나는 인간존중 판결에 몇 번이고 사표를 썼었다

민주주의 인간존중. 왜 마다 하겠는가.

그것을 유지하고 보호 받을 자격이 문제가 아니겠는가.

“당신 왜 그 사람에게 그랬습니까. 그래도 그러면 안 되시죠.”

“개 같은 소리하고 있네.”

그는 술병을 집어 던졌고 다행히 다친 사람은 없어도 난장판이 되었다

경찰이 출동하고 현장에서 연행되면서 일단락되었는데 동료들의 배려로 택시로 귀가했다

거기서 그를 만난 것이다

“기사양반.”

“네”

“사장님은 세상을 어떻게 보슈.”

취객을 태우면 상태와 이미지 그리고 논제에 따라 대응이 다르고

몇 마디 주고받으면 답이 나온단다.

“저는 가끔 가족들만 책임져주면 택시 그 영화의 주인공이 되고 싶다는 생각입니다.”

“하하하”

조용하다

잠이 들었는가 생각하고 내심 걱정되는 마음으로 목적지로 향하는데.

“오늘 얼마 벌었어요.”

대답하기 싫어하는 그를 붙들고 10만원을 쥐어주고 포차로 끌고 갔었다.

한번 써보고 싶은 글인데 마무리를 할 수 있을지는....(__)

  
기우님들의 호응에 관계 없이 그리고 게시판 자리를 어지럽히지 않으며
마무리 될 때까지(사실 두려워서)^^ 조용히 연속으로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2)



 

아양교 아래 10여개의 포장마차에서 자욱한 연기 속에 여러 가지 냄새로 진동한다.

돼지갈비 고등어 꽁치.

연탄불에 올려 진 석쇠에 지글거리는 안주들이 허기를 자극시키기에 족하다

이곳에서 포장마차를 하려면 그래도 동네 어깨들의 연줄이 있어야 하겠지

아니면 경찰이나 구청에 뭔가 쑤셔 넣었거나.

난전에도 세금 거두는 놈들이 있으니 제 부모 형제가 그렇게 벌어 온다면 과연 그럴까.

하긴 부모형제도 두들겨 패서 지하고 싶은 짓은 해야 하는 놈들은 구재불능이니까

소주 한 잔에 후루룩 들이키는 피조개의 알싸한 맛이 옴 몸에 전율을 느끼게 한다.

벌건 피조개에 마늘과 깨소금 참기름 몇 방울이면 바다내음과 어울려 멋진 앙상블을 이룬다.

살다보면 실천에 옮기지 못하지만 사람들은 숫하게 살인을 한다.

짐승보다 못한 인간을 사랑하자는 짐승들은 달관. 사랑. 아님 위선.....에이 그냥 같은 짐승이지.

그러니까 종족을 보호하자는 것이지 뭐겠어.

그들을 보호하는 척 그들을 부추기고 그들로 자신을 감추고 대리만족하는 짐승들.

그 짐승들이 자신이 피해자가 되면 강시보다 더 할걸.

죽어도 싸고 죽었으면 하고 나에게 능력이 있다면 쥐도 새도 모르게 죽이고 싶고

죽음의 공포를 평생 느끼게 하면서 스스로 죽여 달라고 애원하게 하고 싶은 인간들

그 인간들이 나를 서서히 죽이고 있는 세상에서 지금 살고 있다

반전이 필요하지만 일회성으론 너무 억울하다

세상 구석진 곳 그 응달에서 떨고 있는 사람들에게 빛이 되어 잠시 길을 밝혀주고

언 몸을 데워줘 그들이 스스로 갈 길을 가게끔 하려면 이어져야 한다.

어떻게 하면 인간이길 거부하는 짐승들을 이들과 격리시킬 수 있을까.

개선의 여지가 없으면 윤회의 수레에 태워 보내는 길이 가장 현명한 방법이다

다음에 짐승으로 돌아오면 그때는 기꺼이 칼을 꺼내 들어 목을 따고 사지를 자를 것이나

수레를 태우는 것이 문제다.

그런데 신의 계약서엔 우리가 원하는 것보다 훨씬 긴 장기계약을 해 놨고

수 없이 탄원을 해도 소용없었다.

신이 맛이 간 건지 작판인지 개미들은 영원한 호구로 살아야 되나.

하긴 집에서 신으로 군림하다가 스스로 개미가 되었지

그 개미가 여왕벌을 지키기 위해서 천적들을 막고 아예 제거하려면 침 한방으로

살신성인해야만 된다.

가족들을 위해서라면 뭐 어떠랴

저 깊은 바다 속에는 가시고기가 지느러미가 닿도록 알을 부화시키고도 제 몸을 맡기고 있고

뭍에서는 까마귀가 늙은 어미에게 먹이를 물어다 나르는데.

이 자연의 섭리를 가로 막고 목숨을 유지하기 위한 천적이 아닌 일시적 유흥거리나

제 감정의 위로거리로 희생 되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법은 멀리 있고 주먹은 가까이 있으니 피차 마찬가지다

그래서 수레를 만들기로 작정을 하고 한 사람 한 사람씩 모아갔다

직업도 다양했고 성별과 성격도 다양했다

택시기사. 사진관. 카센타. 컴퓨터수리공. 가스 전기검침원. 동사무소 직원과 법무사 기자

그리고 퇴역군인과 말기 암 환자까지......

그들은 분기별로 일 년에 네 번씩 주변에 어려운 이웃을 돕는다는 취지로 활동을 시작했다

독거노인과 소년소녀 가장들의 생활은 수시로 보살피고 민원까지 대행하며

일부 의협심 강한 이들은 따로 의기투합하여 자율방범대원으로도 활동을 했다

그러다보니 자연 시시비비에 직면하게 되었고 법의 무기력함과 돈과 권력의 오만함에

몸 보시 하는 자신들의 힘이 너무 보잘 것 없다는 것에 자괴감을 느꼈다

하지만 그들의 의지에 다시 힘을 불어 넣어 주는 건 다름 아닌 그 작은 힘으로 일어서는

소년소녀 가장들과 밝은 모습의 노인들 밤길을 생기 있게 활보하는 이웃들이었다.

물론 거기에는 자신들의 가족들도 포함되어 있다

시간이 흐르면서 서로에 대한 신뢰가 더욱 다져지고 의지하게 되었다

내가 아니면 하고 막연하게 엄습하는 불안함에서 누군가가 있어 언제나 든든했고

자신도 가족 외에 누군가를 지킨다는 자부심으로 평소와 달리 의욕과 자심감에 차 있었다.

그리고 누군가 어느 곳에선가 불쑥 내민 자경단 이란 말이 그대로 자리 잡았다

누군가의 입에서 나온 조선당(조직선행당)이란 말은 내부적 애칭으로 쓰기로 했다

“자 한 잔 하슈.”

“아. 나는 차 때문에 이따 태워 드려야죠.“

“아 내가 차야.”

불쑥 손을 내밀며 하는 말에 무슨 말인지 감을 잡을 수 없었다.

“.............”

다시 재촉하는 바람에 얼떨결에 손을 잡았더니.

“내가 차라니까 뭔 눈을 크게 뜨고 어리한 척 하노.”

“당신은 성이 뭐든 앞으로 포 해.”

“..................”

경찰청 차형사와는 그렇게 인연을 맺었다

세상에는 선을 사칭한 악행이 있는 반면에 악을 자칭한 선행도 있다

아이러니 하게도 선을 사칭하면 그 생명이 길고 악을 자칭하면 단발성에 그친다는 것이다

죄만 미워하라는 논리에 일벌백계를 당하니 양보와 희생이 줄어드는 것은 아닐까.

지금은 그만한 대의명분이 있는 시대도 아니고.

학생들이 들고 일어 날만한 이슈가 없고 야당이 제 역할을 못하니 거대여당도 분열되고

분단의 상황에서 도저히 상상도 못할 대북 찬양을 공개적으로 해도 갑도 을도 침묵이다

때리지도 감싸지도 못한 채 눈치만 보는 것이다

정서가 성숙되지 않은 상태의 민주화 후유증이고 무사안일주의의 산물이라고 생각한다.

자주를 외쳐봐야 지중학적(?) 외세로 불가항력론과 왜곡 된 자주론에 어이없고

당장 군사적 열세에 전쟁이 발발하면 몇몇만 빼고는 종말이다

북한이 행동하면 우리가 먼저 당하고 필요에 의해 응징차원에서 북한도 온전할 수 없다

우리의 의사와는 관계없이 외세에 의해서.

그래서 설마 같이 죽자고 하겠는가. 그 설마가 과연 평화를 유지 시킬까.

그들은 과연 죽을까. 우리 쪽의 그들도 과연 죽을까.

자신이 안 죽는다면. 노후가 보장 된다면. 소모품 같은 것들에 애착이 있을까.

그들이 과연 지금의 기득권을 잃는다고 생각하면 못할 짓이 있을까.

같은 환경에서 50년을 부비며 살아도 이질감을 느끼는데 폐쇄된 60여 년은 뭐로 잇는가.

저 독일의 국민성과 환경을 우리에게 비교하고 결과만 만들려고 하는 어리석음은.

현 체제를 비판하고 집권당의 오류를 규탄하는 이들은

모든 걸 접고 접어도 3대가 세습하는 정권을 어떤 논리로 시대를 이해시킬 것인가.

정치이야기야 늘 그렇듯 안주거릴 뿐 소출 없는 소모성 대화다

무엇이 진실인지 어디까지가 허군지 갑론을박해도 결국 코 잡고 땅 짚고 뺑뺑이 돌기다

시대는 현실이 역사고 진실일 뿐이다

그건 그들에게 맡기더라도 갈수록 싸가지 없는 세상이나 바로 잡았으면 좋겠다는데 이른다.

“아. 내말이 그 말이야. “

“그리고 죄를 지었으면 동기와 결과를 감안하여 죄 값을 치르게 하는 게 당연하잖아.”

“그렇죠. 사안을 따져 대가를 치르게 해야죠.”

“다만 재범일 경우는 다음을 보장 해줘서는 안 된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퍽.

포는 마시던 술잔을 뒤집어썼다

소 뚜껑 같은 차 형사의 손이 그의 어깨를 내리쳤었던 것이다

“그래 그거야.”

“푸푸 풋. 콜록콜록.”

“우하하하하. 쏘리. 쏘리.”

차 형사는 그 거친 손으로 아무렇게나 포의 얼굴을 훔치고는 가슴에 묻은 술을 털어 주었다.

그리고 다시 술잔을 콸콸 채웠다

“자자 마셔.”

“주모 여기 술 한 병 더.”

“네네.”

“그래서 지금 회원들이 얼마나 되지.”

“동네에서 몇몇과 시작했는데 요즘은 인터넷으로 지원하는 회원들도 생기고...”

“우리가 뭐 힘이 있나요. 몸 보시나 하는 거죠.”

“그래서 몇 명이나 되는데. “

차 형사의 언성이 조금 높아졌다

포는 침묵했다

“아니 몇........ ”

다시 언성을 높이며 다그치려 하는데 포의 나지막한 하지만 단호한 말이 떨어진다.

“나 혼자요.”

  

                                                           (3)

포는 손이 떨려 전화기 버튼을 누를 수가 없었다.

지금이 꿈이라고 생각했고 손발이 움직이지 않으니 꿈이라고 믿고 싶었다.

아랫배를 움켜진 차 형사는 벽에 기대어 있다 저 멀리서 웅성거리는 험악한 사내들

도망가야 된다고 되뇌면서도 발이 떨어지지 않는다.

결국 그들이 우리를 보았다

“얀마. 전화하고 나면 나는 죽었어. 니라도 도망가.”

고함을 지르며 달려오는 사내들.차 형사는 의식을 잃어가고 있었다.

내가 왜 이런 곳에 있으며 왜 이런 상황에 끼어들었는지.

지금 내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도저히 종잡을 수가 없었다.

“나 말이야 항상 이걸 가지고 다녀.”

“나를 죽이고 싶은 놈들이 좀 많아야지.”

포차에서 처음 만난 날 나에게 권총을 보여주며 말했었지

“그래도 한 번도 써 본적은 없어.”

“우리나라 법이 말이야 권총을 쓸 만한 경우를 좀체 인정하지 않거든.”

“내가 죽을 입장이 되어도 쓰고 나면 골 때려.”

포는 더 이상 지체할 수가 없었다. 무기 없이 일대일이라면 못할 것도 없지만

수적으로 덩치로도 그리고 목숨 걸 일도 아니다

그냥 어쩌다 휘말린 것이다

그렇다고 흥분해 달려오는 저들에게서 양해가 있을 수 없다

제기랄.

그는 차형사의 가슴팍을 열어 젖혔다

다행히 권총이 있었고 그것을 확인하고는 갑자기 평온함을 느꼈다

그리고 의미심장한 차 형사의 미소를 뒤로하고 서서히 일어났다

“여기 .......인데요 사람이 다쳤어요.”

“구급차 불러 주시고 경찰에도 연락해 주세요.”

10여명이 넘는 떼거리들이 달려오는 것을 지켜보며 전화를 걸었다

의외의 상황에 멈칫 하는 것을 보고 그냥 총을 든 손을 늘어뜨리고 서 있었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야 저 새끼 가스총이야 조져.”

한 놈이 고함을 지르니 일제히 달려들었다.

다 달려든다면. 총알이 모자란다.

(이렇게 죽을 수도 있구나.)

내심 되뇌이며 총을 들어 허공을 향해 한 발을 당겼다.

“탕”

모두 제자리에 굳어 섰다

포 자신도 놀랐다

순간 머리에서 발끝까지 짜리한 기운이 흘러가며 몸과 마음이 가벼워졌다

그리고 이번에 포가 그들에게 서서히 다가갔다

어차피 승부다

일단 뱀은 머리부터 잘라야 된다.

“개새끼”

“가스총에 좃 대가리 데어볼래.”

“네 바람보다는 다를 걸.”

삐죽 그리는 틈사이로 다가가 얼굴을 가리고 황당해 하는 그놈의 사타구니를 향해 한발을 쐈다

비명을 지르고 뒹구는 놈을 보고는 나머지 놈들이 우왕좌왕 하는 것을 보며 내심 안도하면서

“시팔 가스총에 엄살은.”

그리고 주변을 들러보며 소리쳤다

“다음 타자 입장하시고.”

혼비백산하고 달아나는 놈들을 지켜보고 나서 자신이 땀으로 온몸을 적신 걸 알았다

그리고 사이렌 소리를 들었고 포는 차 형사 가슴에 권총을 꽂아주고

그의 손을 가만히 잡아 주었다

“이다음은 당신 알아서 하소. 정말 피곤한 하루네.”

불과 5분여 사이에 포는 영화에서만 보아 왔던 액션의 한자리에 있었다.

서부영화에서는 크린트이스트우드가 시가를 물고 석양을 향해 여유 있게 말을 몰았는데

포는 앞으로 다가 올 일들에 초조했다.

곧장 달려 간 곳은 단골 포장마차였고 그는 아무소리도 듣지 못한 채 술만 퍼마셨다

그저 귓가에는 윙윙하는 소리만 들렸을 뿐이다.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에 자신이 휘말렸고 오늘 자신의 행동도 감당하기 어렵다.

그래도 그놈의 사타구니를 쏜 것은 잘했다고 생각했다

그놈들의 주먹에 당할 것을 생각하면 손을 잘라야했겠지만 어느 정도 한계가 있고

아랫도리에 숨겨진 흉기는 더 무서운 짓을 할 것이기 때문이다.

                                                                    

                                                            (4)

세상이 상식을 뭉개고 있지만 중생은 속수무책이다

그래서 조선당 회원들은 선행이 최선이라 생각했고 조직적으로 해 나가기로 했던 것이다

물론 그 행사에 빠짐없이 참가했고 보람과 자부심으로 충만했다

그러나 어느 날 운명처럼 다가 온 사건이 있었다.

소년소녀 가장과 장애인 독거노인을 돌봐왔는데 그날 찾은 할머니 댁에서 일이 생겼다

외동아들이 망나니였는데 그날 공교롭게도 난장판에 우리가 찾아 간 것이다

가산 다 탕진하고 술로 살아가던 놈이 취중에 제 어미에게 돈을 요구하며 난동을 부리고 있다

모든 걸 탕진하는 사이 영감님은 화병으로 세상을 뜨고 죽지 못해 사는 독거노인이

무슨 돈이 있으랴.

할머니는 무릎 굻고 울며불며 애원하고 있었고 이놈은 안하무인이다

우리는 안중에도 없었고 여자 회원들은 피하라 했지만 사실 어떻게 해 볼 도리도 없었다.

“자자 형씨 할머니에게 이 무슨 짓이요. 그만하시지요.”

“퍽”

순간 눈이 별이 보이고 나는 나가 떨어졌다

“십 새끼 뭐고.”

동료들이 말리고 나는 뿔뿔 기어 나왔다

잠시 정신을 잃었나.

너무 돌발적이 선방에 대처 할 방법을 놓쳤다.

할머니가 매달리고 동료들이 경찰을 부르고 난리를 치고서야 어느 정도 수습이 되었다

그날 분함을 참지 못하고 혼자서 얼마나 술을 퍼마셨는지 모른다.

“이 새끼 죽여 버려야겠어.”

그런데 그게 마음대로 될 일인가.

그렇게 죽인 인간들이 수도 없지만 내 앞에 쓰러져 쌓인 건 술병들의 사체였다.

운명.

그것은 묘한 시간에 묘한 장소에서 찾아오는가.

으슥한 아파트 돌담길 아래는 4~5미터 냇가다 일을 하다가 만취 된 그를 보았다

(그래 너 잘 만났다)

차를 한쪽에 세우고 한참을 갈등하다가 모자를 둘러쓰고 마음을 다잡고 나섰다

마침 냇가를 향해 오줌을 누고 있는 그를 보고 서서히 다가갔다

꼴에 노래를 흥얼거리고 있는데

“십 새끼.”

옆차기로 목덜미를 힘껏 걷어 차버렸다

“억”

발을 그대로 든 채 외마디 소리와 함께 아래로 나뒹구는 놈을 내려다 봤다

(죽지는 않겠지만 고생 좀 할 것이다.)

태권도 합기도로 단련했지만 젊은 날 방황 할 때 엉뚱한 곳에만 써 먹었다

이제 제대로 다리가 올라 간 셈이다.

“아재. 내가. 내가 이렇게 빌 테니. 제발 저놈 감옥에만 안 가게 해주소.”

할머니의 눈은 내 어머니의 눈과 다를 바 없었고 여는 어머니의 눈과도 다르지 않았다

어머니의 눈

근심으로 밤새 내린 냉정하면서 단호하고 솜처럼 따뜻한 하얀 눈이다

우리는 아기의 영롱한 눈빛만으로 천사로 비유하곤 하지만 세파의 주름에 눌린

백태 낀 어머님의 흐릿한 눈에서도 끝까지 발하는 모성애는 모르고 스쳐간다

신도 감히 어쩔 수 없는 그 숭고함을.

할머니의 간곡한 부탁으로 고소는 안했지만 네 놈은 세상에 존재 가치가 없었어.

반성은커녕 개 버릇만 더했으니.

(나에게 뿐만 아니라 할머니의 여생을 빨아 먹는 좀비 같은 놈이야.

할머니에겐 귀한 자식이겠지만. 평생을 가슴에 품고 살겠지만.

안기는 네놈은 고슴도치였어.

예전엔 용기도 사그라졌고 가족들도 눈에 걸렸고 후한도 두려웠지만 이젠 아니야.)

칡 같은 어둠속을 돌아서 오는 그림자.

포는 혼자서 중얼거렸다.

죽기로 하니 두려움도 없고 싸울 때도 상대의 움직임이 또렷하게 보였다

다음수가 준비되고 기다리니 자연 몸놀림이 유연하고 신속했다.

공포는 눈에서 시작되고 상상으로 마무리 된다

눈의 착각을 벗어나면 결과는 이미 보는 순간에 결정되니 공포로 연결 될 일이 없다

책임만이 남을 뿐.

택시벌이로는 세상이 벅찬데 얼마나 살는지 모를 인생에 나만 쳐다보는 짹짹이는 많다.

도리와 경우를 지키겠지만 나는 이미 없지만 그들에게 나같이 살라할 수도 없다

부모는 부모대로 자식과 마누라는 그들대로.

나름으로 살아가는 이유가 다르고 그래서 갈등도 생기고 자신도 그 사이에서 멍든다.

우선은 돈이 있으면 다수는 해결되지만 돈이 없어 일어 난 일 돈 있어도 일어난다.

가장의 슬픔은 거기에 있다

알아주지 않으면 스스로 느끼지 못하면 영원히 풀리지 않는 명분과 세대의 이간질.

죽고 싶었다.

(살려니 가랑이 찢어지는데 보험이나 들어주고 콱 죽어 버릴까.)

그들은 땅 파먹고 사나. 어떻게 죽어야 된다는 옵션이 있다.

그래서 자살은 안 되니 타살 같은 자살을 택하기로 했다

참 마음이 편안해진다.

그렇게 두렵던 조직들이 한낱 쓰레기로 여겨지고 싸가지 없는 인간들이

눈에 선하게 떠오르면서 무한한 오르가즘을 느꼈다

(기다려라)

그동안 차마 하지 못했던 일을 하고 언젠가 그 일속에서 죽으면 되겠다.

그러니 공포의 상상이 해결 되었고 가족들의 안위도 챙기면서 세상 상식도 지키고.

언젠가 공개적으로 죽으면 더 좋겠다는 생각도 했지만

그것은 세상을 너무 모를 때 하는 말이다

세상은 돈과 여자 같아서 잠시 감성에 젖었다가도 이내 잊혀 진다.

사랑도 감동도. 그리고 진실마저도.

지구를 구하지 못해도 상식 그 중력을 지키다 가는 길이 묻혀 버려도 그렇고

대가를 치르되 나의 미미한 일이 전체에 경각심을 일으키는 계기가 되기를 바람은 있다

그러나 여자들에겐 직접 무력을 사용하지 않기로 했지만 다시는 그런 짓을 못하게

자기가 한 행동으로 받은 사람들의 스트레스를 같은 방법으로 몇 배를 안겨주기로 했고

남자들에겐 그들보다 악랄하게 처단하되 단 한 번의 기회는 주기로 했다

결코 개가천선하지 않으면 할 수 없는 조건으로.

일단 혼자서 주변을 돌아보며 대상을 찾기로 했고 조폭이고 조직이고 남녀를 가리지 않았다

그 경종만 따지되 가정파괴범을 우선으로 잡았다.

일단 필요한 장비를 하나씩 구입했고 인터넷을 뒤져가며 직접 만들기도 했다

내공이 끌어 올려 지자 눈빛이 달라졌고 선한 언행에서도 살기가 맴 돌았다.

애써 감추고 있었지만 우선 주변정리가 자연스레 되었다

개인적으로 껄끄러웠던 사람들과의 인간관계가 이상 할 정도로 원만해진 것이다

(눈치 챘나.)

개인적인 감정으로 처단 대상을 잡지는 않기로 했지만 그렇다고 모두 제외 되는 것은 아니다

법이 해결하지 못하는. 아니면 법의 회초리로는 안 되는 인간들이 주 대상이다

사회적 공감이 대상이요 철칙으로 삼은 이유가 자신의 행동에 대한 정당성 때문이다

도덕적 당위성만 있으면 사회적 대가는 각오하기로 한 것이다.

다시 몸을 만들기 위해 체육관을 다니고 장비도 만들고 연습하고 수정하고....

그 와중에 망나니를 손 본 것인데 너무 처연한 자신에 내심 놀라움도 스쳐갔다

(할머니 죄송합니다. 제가 할머니를 도운건지는 의문이지만 세상에는....)

차에 돌아와 모자와 안면 마스크를 벗고 룸 밀러에 건성으로 얼굴을 비춰 보고

포는 의자를 뒤로 젖히며 중얼 거렸다

이제 시작에 불과한데 어쩌면 이게 마지막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언뜻 스쳐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