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휴게소에 들르려다 괜찮다는 아버지 말에 무심결에 그러면 언양휴게소에서 쉽시다했다.

나도 자주 다니지 않았기에 톨게이트가 바뀌고 휴게소가 없어 진 것을 깜박 한 것이다

와중에 아버지는 좌천에 들렀다가 고향으로 가자고 고집을 피웠다

길이 멀고 부산 좌천과 고향은 중간이니 좌천 작은아버지를 고향으로 오시라 하자는데

굳이 가봐야겠다고 우긴다.

지 버릇 개 못준다는 말이 있지만 죽을 때까지 내가 내다.

“내가 가보고 싶다 어떻게 사는지.”

그 몸으로 돈이나 던져 줄 용맹도 없고 오히려 받아 올 몰골로 면목 없으니 그만 두자고해도

무슨 개 같은 논리가 어른을 내세우고 성의란 게 있단 말인가.

시대거니 접고 가다가도 여기에 이르면 자제력의 한계를 느끼고 어디 내다 던져 버리고 싶다

잘 키운 자식에게도 버림받는 세상에 무슨 개똥보험 들었나.

“평소에 잘하지요.”

결국 내 울화통이 폭발했고 갓길로 차를 세우고 말았다

평소 같으면 난리가 났을 일이고 예나 지금이나 어머니는 좌불안석이다

나는 담배를 들고 나와 버렸고 조금 있다가 어머니가 따라 나와 나를 달래기 시작했다

“야야. 잘하다가 와카노. 니가 참아레이.”

나는 그래도 욱하면 고함이라도 지를 수 있지만 정말 불쌍한 여인.

젊을 때 설움 받고 팔순나이에 이제 자식 도우려 나섰다가 눈치까지 봐야하다니

어머니를 쳐다볼 수가 없었다.

“어무이. 내가 어지간하면…….

이놈의 눈물은 시도 때도 없이 말문을 막는다.

지난 세월을 꺼내려고만 하면 어머니 앞에선 가슴이 콱 막히고 눈물이 먼저 나와 버리니.

담배만 피우다 어머니의 속앓이 울음소리를 들었다

“담배 한 대 피우고 갈게요.”

“그래……. 고맙데이.”

“어무이가 뭐가……. 알았소. 내 바로 가리다”

서로의 마음을 모르겠는가. 그래서 나는 말을 끊어 버렸다.

지난 세월에 얻은 화병이다.

추운 겨울 똥 걸레 이불 옷가지 빨 때도 소주 한 병 담배 한 갑 옆에 놓여 있었다.

몸을 씻길 때도 가여워서가 아니라 서럽고 억울해서 울었다

처음 맞은 그 겨울은 여느 겨울 이였을까. 하지만 나에겐 그렇게 혹독했다

화가 치밀면 담배를 피워야 하고 술을 마셔야 가라앉았다

술로 사고도 친다지만 나는 독백하며 마음을 내려놓는 시간이다

사람들은 가끔 효자라 오해도 한다.

신세 있다면 애비 외엔 기억 없고 다만 인간답게 살려고 도리에 충실하지만

까치도 까마귀도 아닌 중생은 그 애비에 그 새끼 소리 안 들음 되고

팔순 울 엄니 나를 보고 의지하고 위로되면 그것으로 족 할뿐이다.

나이 20부터 쌓아 온 탑을 돌며 스스로를 다독일 뿐 누가 무엇이 위로가 되겠는가.

내 죽기 전 변명거리 만든 게 위안이겠지.

결국 작은 아버지 댁으로 가게 됐다

그러나 쉴 타이밍이고 아버지도 피곤해 할 무렵 언양 인근에 왔는데 아차 싶었다.

기존 언양휴게소가 폐쇄 되고 부산 쪽으로 이동했다

우리는 울산 쪽으로 가다 울산 부산 간 신 고속도로를 타야 되니 방향이 안 맞는 것이다

언양에서 고향까지는 20리 길 좌천까지는 고속도로로 한 시간 남짓 남았다

다시 침을 삼키고 물어봤다

“아버지 여기가 언양이요.”

“그래 그럼 고향 다 왔네.”

“그러니 우리 고향으로 바로가고 작은 아버지를 오시라 합시다.”

“휴게소도 없어졌고 다음 휴게소는 한참가야 되요 몸도 부실한데…….”

잠시 침묵하더니.

“내 참을 수 있다 좌천으로 가자. 내가가서 봐야겠다.”

빈소쿠리 들고 꼭 가야하나……. 그러면 어떻고 어른이 가는 것만으로 지들이 감사해야지.

상대에게 부담 주는 게 민폐지……. 성의를 그렇게 생각하는 놈이 싸가지 없지.

나와는 도저히 맞지 않는 경우와 논리로 지난 30여년을 아버지와 쌓은 애증의 탑이다

“아직 멀었냐.”

언양에서 다음 휴게소까지가 예상외로 거리가 멀었다

“여기는 어데고.”

“웅촌 지나고 있어요.”

“삼촌에게 전화해라.”

“와요.”

“어디까지 왔다고 해야 지들이 알고 준비하지.”

“쫌.”

경상도 버전으로 모든 동작그만을 알리는 함축 어다.

“아예 중계방송 하소.”

피로도 쌓이고 담배 갈증도 나고 은근히 스트레스 오를 무렵에 또 부아를 지른다.

무리한다고 했건만 이제 와서 치근 되니.

하지만 화살이 또 어머니에게로 넘어가 할 수없이 내가 연락을 했다 출발하고 세 번째로.

작은아버지 댁에 도착하니 작은 소재지라 분산한 우리들의 모습에 눈들이 모아진다.

호스를 가린다고 마스크를 하고 춥다고 빵모자 눌러 쓰고 몸도 가누지 못하는 사람을

머리 희끗한 내가 들쳐 업고 들어가니 병원도 아니고 흔한 일이 아니다.

“우리 형님이요.”

작은아버지께서 이웃들에게 웃으며 설명했지만 잠시 웃어 줄 뿐 이내 정색하며 수군거린다.

평소의 품세면 그들이 뭔 상관일까.

젊을 때 한량 짓은 혼자 다하다 이 몰골로 사람행세 한다는 게 가관인 것이다

당신 스스로 하는 것도 아니고 나는 말이요 어머니는 하녀로 내세우고.

반신불구에 코에 호스 꼽고 대소변 못 가려 기저귀차서도

예나 지금이나 당신은 입만 살았네.

옜소. 낼 모레 환갑인 아들 무동 타고 금의환향 나팔 부소

저승사잔 뭐하누 우리 구신 안 잡아가고.

3형제 옛이야기에 돌아가신 큰아버지만 역적이 되고 전말은 짐작만 할 뿐이다

그렇게 1시간 남짓의 시간으로 밥 먹고 일어나야 했다 그러려고 이 먼 길을 왔던 것이다.

작은아버지가 봉투에 돈을 넣어주는데 마다하지 않고 받는 아버지의 모습이 민망하다

숙모도 몸이 성치 않은데 동생이 지켜보고 있는데.

이럴 때 나의 무능이 뼈저리게 와 닿고 불편함이 자학이 되고 슬픔이 되어 짓누른다.

멀리 바닷가 쪽을 바라보았다

지척 용궁사에 할머니를 모셨는데 시간이 여의치 않아 무거운 발걸음을 고향으로 돌려야 했다.

50여 가구가 상 중 하 마을로 구분 된 호젓한 고향마을.

어릴 때 뛰놀던 냇가는 수풀에 뒤 덮였고 달 따러 가던 언덕은 왜소해져 있었다.

나무하고 소 먹이러 가던 오솔길은 넓혀져 농로가 되어 있었고

예쁜 여자아이 살던 집은 거무칙칙한 감나무에 울어대는 까마귀 이유 있듯 폐가로 변했다

오전 11시에 대구에서 출발하여 고향에 닿으니 벌써 4시다

고모와 당숙이 기다리고 있었지만 우리는 해지기전에 산소부터 찾았다

산소는 길에서 50m 정도의 약간 가파른 언덕위에 자리했는데

일상에 쫓겨 운동을 못한지도 몇 년이던가.

부실한 몸으로 아버지를 들쳐 없고 오르려니 다리가 후들거리고 숨이 턱까지 찼다

(이제 다 됐다)

여기만 다녀가면 오늘의 거사가 끝났다는 생각으로 이를 깨물었다

산소 앞에는 때 아닌 효자 났다

아버지가 곡을 하며 할아버지께 인사 올리고 사죄하는 모습에도 나는 덤덤하기만 하다

사실 아버지가 가신다 해도 나는 눈물이 나지 않을 것 같다

할머니와 어머니는 짐작만으로도 앞이 안 보이는데.

“야야.”

모퉁이에서 담배를 피우며 숨 좀 돌리고 있는데 아버지가 부른다.

뭔지는 모르지만 열 받을 소리할 것이라는 예감에 잠시 숨고르기로 못 들은 척 했다

내가 안보이니 어머니를 재촉하는 소리에 담배를 끄고 일어섰다

(그래. 또 뭔가요.)

“와요. “

“내 온 김에 아지매하고 할매한테도 인사하고 싶다.”

숨이 콱 막혀왔다

“아버지. 내 말이요. 내도 낼모레면 환갑이요.”

“할배 할매 산소에 인사했으면 되지 생전에 들르지도 않던 일가친척은 왜 찾소.”

“그래 맞다 오빠요. 야가 오늘 고생 많이 했잖소.”

어느새 고모가 오셔서 거든다.

“그래서 인사하고 싶다는 거다.”

이게 우리부자간에 높이 쌓인 담이다

성할 때 무심하다 그 몸으로 자식 등에 업혀 인간 행세하려는 게 나는 가당찮은 것이고

아버지는 당신이 그렇게 하는 것이 중요하지 환경의 경우는 논외다

무엇보다도 내가 지쳐 있었다.

결국 성화에 두어 군데 더 들렀다가 고모 집으로 돌아오니 초죽음 상태다

오리백숙을 보신용으로 가져왔으나 아버지는 그림의 떡이고 나는 차에서 쓰러졌다.
잠시 휴식을 취하고 헐레벌떡 백숙을 한 그릇 해치우고 나서다가 서비스 시간을 가졌다

미운자식 떡 하나 더 준다고 했나.

어릴 적 다니시던 초등학교와 고갯길 지금은 사라진 징검다리와 아직 남은 고목나무

간 큰놈 가리기 하던 공동묘지와 상여 집까지 아버지가 기억하는 모든 곳을 돌아보았다.

차창 밖으로 어둠이 짙게 내려앉은 고속도로 하늘엔 무수한 별들이 반짝이고

도로에도 수많은 자동차 불빛이 유성처럼 흐른다.

어머니는 뒷좌석에서 쓰러졌고 아버지는 앞좌석에서 쓰러졌다

촤촤촤…….

요란한 타이어와 바람소리 밀폐된 작은 공간의 고독.

이 좁은 공간에서도 인생이 있다

나의 안식처요 지친 마음을 언제나 기댈 수 있는 고향 같은 어머니의 안쓰러움에

언제나 타향살이 같은 아버지의 밉상스런 모습이.

무심히 스쳐가는 불빛 따라 지나간 날들이 주마등처럼 아련히 다가왔다 멀어진다.

엄마 보고 싶어 부둥켜안고 울었던 동생들 얼굴.

돼지우리에 던져졌을 때 그 공포와 괘씸함과 죽여 버리려 다짐했던 시간들.

강해지려고 그년을 쏘아보며 눈물은 흘렸어도 소리는 내지 않았다

하지만 이듬해 여동생을 이름 모를 병으로 잃었을 때 너무너무 슬퍼서 엉엉 울었었다

(아버지 당신은 우리의 마음 모르실거요.)

쓰러져 누운 아버지를 바라보며 혼잣말로 중얼거리다 목이 메여 버렸다

조금 있으면 설이고 고향엔 일가친척들이 모여 즐거운 시간들을 보낼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렇게 고향을 찾았다

사람이 살아간다는 것이 업이다

나도 파김치가 되었는데 불구의 아버지와 팔순 노구의 어머니는 얼마나 피곤하실까

무려 11시간의 강행군 끝에 집에 다다랐어야 두 분을 깨웠다

죽기 전에 다녀오겠다니 안 들어줄 수도 없었던 일 그래도 나름으로 명분은 세웠다

침대에 아버지를 눕히고 너무 피곤해서 한걸음에 돌아서는데.

“수고했다.”

등 뒤에서 아버지의 공치사 소리가 들려왔다

돌아보니 눈을 감고 있었다.

“얘. 아버지도 고생했수다.”

거의 들어보지 못했던 공치사에 웃음이 나왔다

신이 나서.

아니다. 의외의 소리에 어이없었다는 게 맞을 것이다

어머니가 어깨를 다독여 격려해주는 손을 잡고 나직이 말하고 돌아섰다

“쉬세요.”

집에 돌아 와 우렁각시가 노고의 술상을 차려왔는데 먹다가 얼마지 않아 쓰러졌고

잠을 깨우지 않으려 그대로 이불을 덮어 주었단다.

거실에서 쓰러져 자면서 밤새 아버지를 업고 산소를 돌아다니는 악몽에서 벗어나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