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이 얼마만인지 모르지만 젤 가까이 왔다는 슈퍼(?) 한가위.

그러나 나는 달을 보지 않았다

일상이 찌그러져 둥근 달을 보는 호사가 가당치 않다고 컴터 앞에 술상을 차렸다

설에 두 달 동안 병원에서 보냈는데 추석에 집에서 죽겠다는 아버지를 또 입원 시키고 오니

심신이 거의 탈진 상태에 빠진 것이다.

기쁜 날 슬픔은 배가 되지만 슬픔이 일상이면 무감각해진다

그냥 그런가 보다 하게 되고 어떤 땐 잠깐 스쳐가는 기쁨마저도 의심하게 된다.

늘 지는 사람은 일상을 비관하게 되고 늘 이기는 사람은 이기는 방법을 안다

하지만 승부에 임하는 마음은 다를 바 없다고 본다.

불리한 조건과 유리한 조건에서 임하고 결과가 짐작에 의해 일어나지만

삶은 승부를 즐기는 사람이나 마지못해 하는 사람이나 결과에 관계없이 최선을 다한다.

아니면 승부에 무관한 사람일 것이다

아버지 삼형제 중에 큰아버지는 돌아가셨고 삼촌만 남았는데 내외분과 조카까지 온단다.

고마운 일이다

그러나 나는 고맙지 않은 게 진심이었다.

일을 못했으니 이달 결제가 암담하고 조카들까지 오면 또 지출이 생긴다.

그러고 보면 우리 영감 참 밉상이다

30년 넘게 애먹이면서 명절 날 마다 입원한지도 여럿차례지만 그냥 넘어가면 좋으련만

친척모임에 참가하지 못하는 마음을 전했을 뿐인데

멀리서 그냥 안부로 끝낼 일을 이렇게 불러 모으면 당신이 부담 주는 것에 덤까지 안겨준다

대단한 삶도 아니고 그렇다고 그렇게 베푼 것도 없으니 맞이하기 민망함도 여의찮다

그들은 인간도리를 하는 것이니 나무라지 못하겠고.

그래도 모이니 하수선하다.

의식이 오락가락하면서도 마지막인양 애써 사람들을 봐두려는 눈동자가 애처롭다

하지만 그렇게 그 많은 세월을 보낸 나에겐 마지막 같이 느껴지지 않았다

오늘 내일 가신다 해도 그렇지 않을까.

손을 잡아주고 알아듣지 못하는 말에 웃음으로 화답하며 끄덕여주는 조카들이 대견했다

나이가 들어 안주려다 불러 몇 푼 건넸더니 용돈주기 시합(?)이 벌어졌다

조카들은 삼촌을 봐서 미리 줬지만 사촌들끼리 서로 챙기기를 하는 바람에 병실이 난리다

아이들의 재롱과 분위기에 휩쓸려 결국 주머니를 탁탁 털었다

당직 간호사들이 달려왔고 우리는 미안하다 사과하면서 삼촌이 주머니를 열었는데

한사코 마다하여 누군가 들고 온 배 한 상자를 건넸다

그리고 결코 내키지 않았지만 누군가의 제의로 의식 희미한 환자와 가족사진도 찍었다

20여명이 넘는 소란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와 갈등하다가 결국 술상을 차렸다

근래 가장 큰 달을 보기엔 내가 너무 가난했다

조만간 닥칠 일과 내가 해야 할 일 그 모두를 업이라 했던가.

아직 여독이 풀리지 않는다는 핑계로 술 한 잔 하고 있다.

그렇게 이번 한가위 큰달을 보지 못했다

하늘을 본지는 얼마나 되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