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 배운지 40년이 되었다

집안에 술 먹는 사람은 아니 즐기는 수준으로도 10% 내외다

부친은 소주 한 두 잔이면 하루가 영면이고 큰아버지 외에는 술꾼이 기억나지 않는다.

사촌 중에도 큰집 작은형만 좀 하는 정도고 동생들은 거의 안 먹는다.

체질적으로 술과는 거리가 먼 집안이다

나도 처음엔 환경에 반항하며 시작했는데 죽을 고비를 수십 번 넘겼다

그 도수 높은 소주를 바가지에 따라 벌컥거리고는 요강에 걸터앉아 요강 마스크를 하고

온 밤을 아래위로 쏟아 부었다

그리고 캠퍼스 잔디에서 자치하는 선배의 고릿한 고무신에 막걸리를 받아먹고

군에서 빈대 안주에 찬합 뚜껑에 받은 성주(?)를 혀 바닥으로 핥아 먹으며 내공을 쌓았다

짠밥이 쌓이면서 지렁이에서 개구리 뱀 그리고 상병 고참이 되니 라면 건더기가 돌아오고

병장을 다니 더덕과 두릅이 보이더니 어느 날 주문 배식 통조림과 삐야기가 나왔다.

술은 마시는 것 외 코로도 취한다.

의학적 논리는 모르겠고 몸으로 알아가는 선달식 경험으로 말하자면 특이체질을 제외하고

아무리 흡입해도 막상 냄새만으로 취하지는 않는다.

그런데 섭취와 병행한다면 흡입으로 오는 취기는 배가 된다는 사실이다

횟수도 관계가 있을는지 모르겠지만.

소주 2~3병 정도의 주량이면 아마도 이 사실을 알고 먹으면 한 병으로 족할 것이다

별 것 아니다

소주 한 병을 그릇에 붓고 수저로 떠먹어 보시라.

군에서 귀한 술을 졸병에게 찬합 뚜껑에 따라 준 이유와 고참들의 배려다

지난 40년간 술 이야기를 떠올리면 부끄러운 게 너무 많아 열거불가능이고

가장 애살스런 기억하나 꺼내 본다.

중딩 때 크리스마스이브 날만 첫사랑(?) 여친을 보기 위해 일 년에 한번 교회에 갔다

그날만큼은 목사님의 설교도 짧았고 먹을 것도 많았다

나를 유독 예뻐한 누나가 내 심정을 헤아려 늘 자기 집으로 애들과 함께 초대해줬다

양조장 집 딸이라 항상 부티 나게 준비 되어 있었다.

츄리에 반짝이 등과 루돌프 산타.......

그리고 샴페인이 있었다.

고딩 누나가 마시고 우리들에게 권했지만 선뜻 나서는 애들이 없었다.

이리저리 둘러보던 누나가 한 가지 제안을 했다

거짓말 하는 사람이 벌주 먹기로.

그리고 바로 나에게 질문했다

“선달이 성희 좋아하지.”

너무 의외의 질문에 얼굴이 화끈해졌고 가슴이 쾅쾅 뛰었다

애들은 난리가 났고 얼레리 꼴레리가 캐럴송이 되어 울려 퍼졌다

안절부절 하는 나에게 벌주가 내려졌다

잠시 망설이다가 에라 모르겠다며 벌컥벌컥 마셨다

누나는 우리들의 영어 선생님이기도 하여 부모님들의 묵시적 양해가 되는 날

어린 양의 소원을 들어주려 했던 모양이다

“한 잔의 기운을 받아 용기를 내었다.

“아뇨.”

“에이 거짓말. 선생님 선달이 거짓말이래요.”

다시 얼굴이 루돌프 코가 되어 버렸는데 그녀는 애들과 어울려 웃고 앉았다

(뭐 저런 가스나가 다 있노.)

누나가 재차 다그쳐 왔다

“정말.”

자신 있게 큰소리로 말했다

“네”

“오늘은 주님이 오신 날인데 설마 거짓말하지는 않겠지.”

나는 입을 다물었다

누나는 나를 빼꼬미 들여다보고 있었다.

“조... 좋아하는 것은 아니고..“ 그냥..... 저...... 한 잔 더 마실께요.”

“와” 하고 애들은 자지러졌다

얼레리 꼴레리.........

“선달이 정말 성희 안 좋아 해.?”

짓궂은 누나는 다시 물었고 나는 아니라 했다가 주님 앞에서 무너지고 다시 술잔을 받았다

그렇게 5잔을 마셨고 취해서 울어버렸다

울면서 말했다

“누나 성희는 착하고 공부도 잘해요. 엉엉”

찬바람이 불면.

갑자기 숙연해진 자리에서 나를 꼭 안아주며 토닥여 주던 누나의 따뜻한 가슴이 그립다.

그리고 다음 날부터 등교 길 담벼락에 분필 현수막이 걸렸다

(선달이 애인은 성희래요....)

나는 한참을 고개 숙이고 다녔는데 그 가스나는 당당했다

시골에서 고등학교부터 대구로 나오고 그리고도 한참 후 그곳을 찾았다

선달이 애인이 있던 담벼락을 거니는 귓가에 울리는 소리

“바보”

그녀의 친구로부터 전해들은 이야기가 예배당 종소리처럼 울려 퍼졌다

이제는 그 골목길마저 빌딩이 삼켜 버렸고 일 년에 단 한 번 설레게 했던 종소리도 멈췄다

그러고 보니 많은 것이 떠나갔고 동안 무심했던 나에게 모두 애살스럽다

그래서 그 쭈글망탱이 영감들이 술을 마시며 혼자 중얼거렸구나.

나는 아직은 괜찮아. 그럼.

아. 이놈들 저리 안가. 뭔 구경났어. 에이 요즘 것들하고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