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은 허기부터 해결해야 했다

코펠에 밥하는 것도 노하우가 있다. 무조건 불만 지피면 되는 게 아니라

집에서 하는 것 보다 물을 여유 있게 설정해야하고 중간에 필히 한번 뒤집어야 한다.

하지만 자주 뚜껑을 열어서도 안 된다.

그리고 뜸을 들이는 시간에 불을 낮추고 천천히 기다리다보면 구수한 냄새가. ^^*

버너도 지금은 틀면 확 이지만 그때는 그것도 아니었다.

알코올을 먼저 부어 예열해야하며 이게 쉽지가 않다 운 좋은 날에 한 번에 되지만.

여차저차 말이 많은 관계로 선달에게 주방도구가 맡겨졌고 못안이 거들어 주었다

그래도 여기까지 들고 온 트럼펫을 썩힐 수 없다고 풍진은 절벽을 올랐고

상하이가 연습한다고 먼지를 일으켜 한 소리 했더니 미숙에게 조개 주우러 가자고 

꼬셔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

이것저것 분산하게 장만을 하다 보니 뭔가가 빠졌다

이런 된장 할.

음식을 조금 할 줄 안다고 하지만 그래도 선무당이 조미료 없이 맛을 내기가 어렵다

돌아보니 못안만 나를 멍하니 바라보고 있고 마음에 들지는 않고 할 수없이 걸망을 메고

탁발 길에 나섰다 여학생들은 민박을 한다고 라면 몇 개와 마실 것만 가져 왔으니.

왜 하나씩 빠지는 게 그게 꼭 필요한 거지.

그때는 일부러 탁발을 다니며 말을 걸었고 또 마음에 들면 팍팍 퍼줬다

특히 보따리 싸는 팀이 보이면 놓치면 안 된다.

그곳의 무한한 군수품이 자칫 쓰레기장으로 날아가 버리니까.

따라 따라라..

드디어 풍진의 트럼펫이 울린다. 이글스의 호텔 켈리포니아 전주곡이다.

정말 멋지다.

절벽위의 그림자 하나 석양을 끌어들이는 조용한 열정.

그는 단번에 수많은 이들의 시선을 모았고 그 옆에 다소곳한 그림자 하나는 설영이었다.

저걸 내가해야 되는데.

내가 어쩌다가 식돌이에 팀의 평화를 위한 희생양이 되어야 했는가.

풍진.

그는 클래식한 분위기에 문무를 겸했다.

애늙은이에서 도사로 그리고 그의 겸손한 성품은 친구들에게서 범할 수 없는 영역에서

매사에 그의 의사가 최종안이었다. 다른 말도 안한다. 그저 빙그레 웃을 뿐이다

이소룡이 한참 폭발적인 인기를 누리던 무렵 그는 쿵푸를 접했고 우리가 모르는 사이

무술 뿐 아니라 경전에 이르기까지 모든 부분에서 경지에 도달했던 것이다

그 골치 아픈 한문책을 껴안고 다닐 때 맛이 갔다고 놀렸던 기억은 이미 오래된 일.

그는 절대 시비를 하지 않는다.

하지만 누구에게도 지는 걸 보지 못했다. 논리로 힘으로. 하지만 늘 조용했다.

훗날 최배달처럼 도장을 다니며 무술대련을 했던 것으로 전해 들었고

뜻하지 않게 상대에게 아픈 후유증을 남긴 이후 거의 칩거에 들어갔다고 한다.

세상으로 나오지 않아도 그때에도 지금도 진정한 무도자요 수도자였다

당시 우리들 눈에는 무술실력만 아니면 꼴값 떠는 것일 뿐이었지만.

우리가 그를 포섭해야 하는 이유는 당연 안전이었고 그리고 우리들을 고품격으로 만들고

보다 나은 수확을 보장해주는 보증수표였으니.

철마로도 끌어낼 수 없는 그를 가볍게 챙길 수 있었던 것은 작은 흑돌 백돌이었다.

찌개가 끓고 있다

꽁치통조림 두 개를 까 넣고 파. 마늘. 양파에 얼큰하라고 고추장

그리고 비린내를 없애고 구수한 뒷맛을 내기위해 된장도 한 스푼 넣고

소금으로 간을 맞춘 뒤 마지막으로 후추를 살짝 뿌려준다.

행복한 시간이 다가오고 있는데 이 인간들이 오지를 않는다.

요즘처럼 연락을 취할 도리가 없었으니 마냥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구조라.

그곳은 다른 해변과는 특이하게 다른 점이 있었다.

해변에 모래고 물속으로 들어가면 자갈이 깔려있었고 그걸 지나면 다시 모래다

지금은 너무 오랜 시간이 지나 그곳 풍경을 묘사할 수 없으나 트럼펫을 불던 곳과

자갈이 많았던 것은 생생하다

한 밤에 들려오던 자갈 부대끼는 소리가 새록새록 떠오른다.

쏴~아 자르르. 철석. 우르르르.

그 소리는 파도와 자갈이 엮어내는 한 여름 밤의 교향시요 자장가였다.

대충 준비가 끝났는데 우리끼리라면 벌써 시식을 했을 선달이지만 지금은 아니다

할 수없이 시간을 때울 겸 해변으로 달려갔다

편도 5m 왕복은...

거의 맥주병인 선달의 수영실력으로 뛰어 들어 가봤자.

어린이 코스에서 애들과 놀아주는 자상함이나 보여주는 것이 까지다.

한 30분쯤 지났나.

우리 텐트 쪽에서 일행들이 보이기 시작하여  어슬렁거리며 다가가는데

뭔가 분위기가 이상하다.

야. 니 뭐했노.

뭐가 십탱아.

열나게 고생하고 밥하고 찌개 끓이고 했는데 뭐가 잘못됐냐 하는데.

아뿔사.

텐트 주변이 허전하다 정성껏 끓인 찌개는 물론 버너와 코펠이 하나도 안 보인다.

잠시 방심한 사이에 도둑을 맞은 것이다

일행은 음식 준비한 찌꺼기는 있는데 사람도 안보이고 음식도 안 보이니 직감적으로.

이 개씨발.

다 죽여 버린다.

극도로 흥분한 우리 일행들의 고함소리에 주변에서 휘둥그레 쳐다보았다

뭘봐. 십새꺄. 챙그랑.

소주병 하나를 깨며 휘둘러대니 모두 눈을 돌린다.

손에서는 피가 흐른다. 실수를 한 것이지만 은근한 오르가즘을 느꼈다

겁에 질려 모두들 어쩔 줄 몰라 하는데 미지누나가 어디서 붕대와 빨간약을 가져온다.

“그 손 이리 내봐”

침착한 그녀의 음성은 나를 어쩌지 못하게 했다

“됐어요.”

하면서도 그녀의 치료를 가만히 받았다. 다행히 찢어진 부분이 심각하지는 않았고.

붕대를 감고 일행들과 해변을 미친 듯이 뒤지기 시작했다

시간상으로 아직 다 처먹지는 않았을 것이다.

아니 꼭 그래야 했다.

모두 임대 한 것이고 분실 시 보상 문제는 보통 일이 아닌 것이니.

잡히면 그 자리에서 사고 날 분위기다

풍진에 비하지는 못하지만 선달이도 합기도 태권도 유단자에 실전 경험도 풍부하다.

그리고 옆에 몸과 얼굴이 무기인 친구들.

잡히면 젤 먼저 손목부터 분질러 버리고 바다로 끌고 가 밀물을 썰물이 되도록

퍼마시게 할 것이라 이빨을 갈았다.

씩씩거리는 나에 비해 말없이 따라오는 풍진의 여유가 얄밉고 그의 미소가 증오스럽다

“선달아 천천히 해.”

그가 웃음으로 날려 보낸 그 말의 중압감에 비참함마저 들었다

누구보다 그를 잘 알기에.

‘선달아 그릇만 찾고 싸우지는 마레이.“

아까부터 따라오지 마라는데도 끝까지 내 옆에 착 따라붙은 보모 미지누나의

엄마 같은 말에 참았던 분노가 또 폭발했다

“머라카노 씨팔.”

눈이 휘둥그레지는 미지 누나를 보고 순간 아차 싶었다.

불과 한나절의 시간에 우리가 알면 얼마나 알았다고 걱정해주는 사람에게.

아마도 또 다른 불만의 표출이었을 것이다.

“사람 열 받았는데.......”

“혹시 모르니 누나는 텐트에 가 있어.”

목소리를 가라앉히고 사과와 걱정을 섞어 다시 권했으나 막무가내다

표정은 많이 풀어졌지만.

아. 내가 어쩌다가..... 하늘을 보고 한탄 하는 순간.

‘야 이 씨팔 새끼들아.“

귀에 익은 목소리의 일갈소리에 순간적으로 안도와 극도의 흥분을 느꼈고

앞서가던 친구가 설치는 장면이 눈에 들어오자 감정은 극에 달했다

잡은 모양이다.

“그 새끼들 다 죽여뿌라.”

한걸음에 내달리며  옴 몸에 기를 모았고 눈에 들어오는 놈부터 탄력으로

옆차기 한 방을 날리리라 했건만.

“엄마야. 선달아 싸우지마레이.”

기겁을 하고 나를 붙잡는 보모누나 덕분에 스타일 다 구겨졌다

여름에 뭐 잡을 데가 있겠나.

수영복을 붙잡았으니 스텝이 엉켜 버렸고 모래판에 반나체로 쳐 박혀 버렸다.

아...여자 그 위대한 힘이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