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리포 바다의 푸념

파도는 슬프고 구성지게 나를 불러댔다.

안면도 해수욕장에서 홀로 차박을 하던 나는 새벽 3시에 잠을 깨서 그 부름을 맞이했다. 해무가 가득 피어오른 탓에 지척도 분간이 안되는 모래사장에서 나는 한걸음 한걸음 파도를 향해 나아갔다.

한이 가득한 파도의 웅얼거림은 나직하게 계속되었다.

"내 푸념을 들어주러 와줘서 고마워!"

물결은 나의 귓가를 맴돌며 신세를 한탄했다.

물은 지구를 떠나 고향 행성에 돌아가고 싶은 욕심에, 행여 어디에서든 고향으로 향하는 길을 찾아낼까 하는 기대로,지구 구석구석 다니지 않은 곳이 없다고 한다.
바위에도 스며들어보고, 수십미터 나무의 물관을 따라 올라갔다 수증기로 증발도 되어보고, 비로 내렸다가 곤충의 몸속과 바다의 해저 바닥까지, 그리고 지구의 땅속 수십킬로미터를 미친 듯이 쏘다녔단다.

수억년 전 고향 행성이 지구를 스쳐갈 때 지구가 당겨대는 인력에 끌려 고향을 떠나올때만 해도 이렇게 수억년을 지구에 갖혀있게 될 줄은 상상도 못했단다.

파도의 푸념은 계속됐다.

지구의 구석구석은 몹시도 더러웠다.

불과 오천년 전까지만 해도 그럭저럭 견딜만 했다.
사람이라는 종족의 번성은 우리를 엄청난 속도로 더럽혔다.
그나마 애초부터 지구에 있던 물들은 자신들이 잉태시켰던 생명체들이었던 까닭에 팔자소관으로 체념을 하고 지내는걸 봤지만, 나처럼 지구에 끌려들어와서 지내는 처지의 물들은 하루를 더 견딘다는 자체만으로도 끔찍한 일이었다.

사람은 우리들을 가지고 노는 것이 재미있나보다.
우리가 돌아다니지 못하게 한곳에 가두어두고는 마구 헤집고 다니기도 하고, 눈으로 만들어 쌓아두고는 우리들 위를 휙휙 타고 다녔다.

얼음으로 만들어 두고 칼로 여기저기 잘라내고 여럿이 모여 구경도 하고, 아이들은 거품을 만들어 이리저리 뿌려대며 장난을 쳐댄다.

그런 사람들에게 우리도 가끔 장난을 친다.
어느 한곳에 엄청나게 몰려가서 돌아다니면 사람들은 홍수가 났다며, 우리로부터 도망치려 야단법석을 떤다.
우리에게서 빠져나가려 발버둥을 치기도 하고,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건물이나 집이나 도로를 우리가 덮치면 이리뛰고 저리뛰며 허둥대는게 재미있어서 가끔은 따분함을 달래거나 그동안 우리를 더럽힌 것에 대해 화풀이를 하기도 한다.

하지만 원래 우리들이 악하지는 않다.
낮은 곳을 향하고 세상 만물을 거스르지 않고 좀 멀더라도 빙 돌아가는 아량을 가졌다.
우리는 생명을 품을 줄도 알고 거칠고 딱딱한 것들을 부드럽고 온순하게 만든다.
우리를 거스르든 갈라놓든 우리는 쉽게 화를 내지 않는다.
 
하지만 이렇게 무엇때문인지 서러움이 북받쳐 오르는 날이 있다.
고향 행성이 떠오르고 괜한 속상했던 것들이 생각나고, 자꾸만 뒤척여지는 날들이 있다.

오늘처럼,,,,

이런 날이면 누군가를 하염없이 부르고 싶다.
오늘은 사람인 네가 내 하소연을 들으려고 와준 것이다.

바람이 물을 거칠게 만드는 것이 아니었다.
물이 일어서 바람이 소용돌이를 치는 것이었다.
 
어느덧 파도의 웅얼거림이 잦아들었다.
바다의 물이 진정되자 바람도 잦아들고 그제서야 햇살도 한올 한올 대기를 뚫기 시작했다.

나도 엉거주춤 일어나서 엉덩이를 툭툭 털고 바다를 향해 기지개를 폈다.

만리포의 그 바다는 잠잠한 채로 햇살을 반사하며 일렁이고 있다.

내가 바닷가에서 잠시 선잠에 빠졌었나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