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청원의 호적이름이 샘 泉인 것으로 알고 있다. 아마도 그가 새 이름, 혹은 별명을 쓰게 된 것은 청년기에 휴직을 하고나서였을 것이다. 그의 책꽂이에 있었다는 여조전서 또한 그 시절의 산물이 아닌가 추측된다..

젊어서 그런 병고가 있었고, 거기에다가 그 이후 중일관계의 악화도 아마 청년 오천을 자극했을 가능성이 있다.

한태희의 인터뷰를 보니 마음의 평화를 갖게 되었다는 표현을 하고 있는데, 마침 연령대를 보니 20대 초이다..그런데 오랜 만에 기보를 놓아보니 그의 운석방식이 이전에 놓아보던 오청원의 기보를 연상시키는 것 같았다..

오청원의 기보에서 내가 기억하는 인상은 언제나 전체를 보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대개의 프로가 그러리라고 추측하지만 실제로 반면운영을 하는 전체상황이 항상 그런 표지를 느끼게 해주는 것은 아니었다.

언제나 전체를 보면서 변화를 전혀 두려워하지 않고 도리어 변화를 통하여 상대를 당황하게 하면서 자신의 장점을 살리는 것이 오청원의 행마였던 것 같은데, 한태희의 운석을 보니 그런 느낌이 강했다..

물론 변화를 사랑한다는 면에선 이세돌의 바둑도 강하지만, 그러나 이세돌과 오청원의 방식은 내 느낌으론 조금 다른 점이 있었다.

이세돌은 왠지 변화자체에 습관화된 느낌이 있는 것 같은데, 오청원의 기보에선 그런 것은 아닌 것 같았다..어쩌면 오청원의 경우 덤이 없던 시절이니, 특히 백의 운석으로선 변화를 도모하지 않으면 역전의 변수를 창안해낼 기회가 없어도 그런 발상이 더욱 필요했을지 모르는데도 그래도 변화자체에 경도된 느낌은 아니었다.

반면 이세돌의 바둑은 변화자체를 사랑해서 경우에 따라선 져도 좋다는 식의 느낌도 이따금 받았던 것 같다..

한태희는 그런 면에서 더욱 오청원의 전성기 행마와 같은 느낌이 있었다..

이창호 바둑은 거기에 비추어본다면, 비교적 부분적 안목이 더욱 밝은 편이고, 그리고 우리가 잘 알듯이 끝내기가 더욱 강해서 바둑이 마치 뒤에서 시작하는 듯한 인상을 받곤 했었다.

나로선 그런 점이 이창호가 세상에 탄생한 하나의 이유라는 느낌도 이따금 드는데 대개 우리는 죽음이 삶의 뿌리가 된다는, 혹은 생사는 평등하다는 생각을 해보기 힘든다..

그런데 이창호 바둑을 보면서 바둑은 모름지기 끝내기이며, 전투도 끝내기이고, 포석도 끝내기라는 것을 잘 가르쳐 주었었다. 이것은 달리 말하면 끝내기도 포석이고, 중반전도 포석이라는 말이 되어서 결국에는 시기적 구분이라는 것이 편의상의 구분일 뿐이라는 것을 알려주는 것인데...

이를 보다 일반화해서 말하면 모든 구분이라는 것은 어떤 편의를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 되어버린다. 즉, 모든 구분은 어떤 목적을 위해서 임시적으로 사용되고 있는 방편이 되는 것이다. 다시 더욱 극단화해서 말하면 모든 구분은 본질적으로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말이 되는 것이다..

부부가 유별하지만 그것은 부부가 있고나서 유별한 것이다. 그 이전에 인간이라는 공통분모가 있고, 인간과 동물과 동물과 식물과, 유정과 무정이 구분되지만, 그것은 구분할 필요가 있을 경우에 유용한 구분인 것으로 볼 수도 있다. 조금 더 역소급을 해보면-

마치 노자가 말하는 것처럼 유와 무가 상생한다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고, 이것은 제 1장에서 말하는 차양자동 출이이명을 말하게 된다.. 유명과 무명은 같은 것인데, 밖에서, 즉 유명의 입장에서 보기 때문에 다르게 불리운다고 말할 수도 있게 될 것이다..

이창호와 같은 독특한 인물이 태어나서 모든 시작은 끝을 배경으로 한다는 것을 보여주지 않는다면, 인간들이 끝이 시작과 항상 같이 하고 있음을 알긴 힘들다..

그런데 한태희의 경우 항상 전체를 보면서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는 것 같고

게다가 인터뷰를 보니 그 중에서 끝내기가 조금 강한 편이라고 하니 덤 있는 바둑의 시절에 이창호의 강점을 갖추었고, 그리고 변화를 사랑한다는 점에선 이세돌의 특성도 있는 것 같으니,

서둘러서 종합해보면, 양이의 장점이 잘 어울릴 수도 있는데다가, 이미 심리적 문제에도 가견을 갖출 소지가 있어보이니, 이미 20대에 접어들었다고 하지만, 그래도 혹시 뉴멜레니엄 오청원의 탄생의 가능성이 없지도 않아보였다..

하지만 대개의 경우 두번째가 되는 것을 그다지 달가와 하지 않는 경향들이 있으므로 그냥 왠지 바둑이 매력이 있어보이더라,라는 정도의 덕담으로 들어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