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쁜 눈망울이 사슴을 닮았었다

공부는 중간상 정도였으니 그만그만하고 몸매는 약간 통통했었던 것 같다

숙제를 대신 해주고 싶었지만 글씨가 달필이라 곤충채집을 대신해줬다

얼레리 꼴레리가 덤덤하던 숫 사내는 중학교가 원망스러웠다

남녀 학교가 갈려 버렸으니.

그때부터 그는 그녀의 골목길을 배회하며 마음속으로 송창식의 노래를 불렀다

한번쯤 말을 걸겠지 언제쯤일까~~~아~~ 아

그리고 고딩으로 넘어갔고 우리는 통학 길 버스정류소에서 힐끔거리며 또 3년을 보냈다

그녀는 서울로 갔고 그는 집안 형편이 어려워 일찍 취업의 길로 나섰다

일 년의 막연한 세월 속에 열등감으로 지내다 우연히 친구로부터 그녀의 편지를 받았다

(포기하지 마. 너는 나보다 훨 공부를 잘했잖아.)

(사랑한다는 말은 눈 씻고 봐도 없고 그 말만 말뚝처럼 이마에 꽂혔다)

좀비도 아니고 드라큘라도 아닌 내 젊은 삶의 정수리에 꽂힌 말뚝이 충격이고 희망이었다.

그래 대학으로 가자. 그녀가 나를 부르고 있다.

주경야독 두 달간 열심히 공부하여 2류 아님 3류 대학에 합격했다

다니던 회사에서 인간 승리라며 축하해줬고 그녀에게 그 소식을 알렸다

엄청 축하를 받았지만 내가 바라던 사랑 때문이라는 문장은 없었다.

그는 오직 그 한마디를 기대했는데.

그 기간 동안 나에게 눈 한번 주지 않던 그녀를 닮은 여인이 나에게 관심을 보였다

회사에서 퀸인 그녀에게 관심을 받은 것이 위로가 되었다

서울의 그녀와 편지를 주고받고 다니던 회사의 그녀와 데이트를 하면서

술자리에서 친구들에게 하소연하다가 뒤통수만 두들겨 맞았다

합기도 태권도 깡다구 도합 공인 3단이 그냥 우스개로 넘길 행복이랄까.

문제는 거지같은 순정파의 자존심과 가치관이었다.

좀 더 나은 길로 나아가게 자극한 서울의 그녀와 옆에서 격려해주는 그녀

경상도 버전으로 호강에 겨워 요강에 똥 쌀 일인데.

이성이 아닌 친구로만 보는 서울의 그녀와 이성으로 보지만 뭔가 아쉬운

직업현장에서 만나 그녀.

그는 결국 모두를 떠나는 길을 택했다

휴학을 하고 배낭을 짊어지고 한 달간 여행을 하면서 두 여인에게 엇갈린 감성의 편지를 했다

그리고 소리 소문 없이 군에 입대 했고 밤마다 두 여인을 떠 올리며 눈물 흘렸다

어떤 날은 서울의 그녀에게 목숨을 걸고 구애를 하고

어떤 날은 현장에서 만난 그녀에게 따스한 마음으로 보듬어 주고.

3년의 공백은 그도 그녀들도 성숙하게 만들었다

덤덤하게 서로의 다른 사람을 찾는 기간이었고 애증의 시간은 짧았다

복학하여 꼰대 짓 하면서 미팅과 동아리를 쏘다니면서 한참을 잊었는데

지성을 빙자한 논쟁과 허영과 아집의 아우성에서 달아나고 보니 선한 달이 보였다

그 동그라미에 그녀들이 겹쳐지고.

그때도 그렇고 지금도 왜 그녀들이 떠오를까

이후의 삶이 그들과의 만남보다 못해서일까.

나의 여인들이여 부디 행복하겠죠.

우리가 지금 어디서 무엇으로 사는지 모르고 까맣게 잊었겠지만

어쩌면 나처럼 내가 그대들에게 간혹 떠올리는 사람일지도.

여인들이여.

가을이 오면 낙엽을 사랑하고 보듬어도 즈려 밟아도 바스락거리는 우리의 이야기를

무심히 내 던지지마소.

애써 그럴 필요가 없는 나이가 되었소.

궁금하고 보고 싶지만 우리는 그때의 연인으로 그냥 그렇게 삽시다.

지금 밖에 비가 오고 나는 술 한 잔하고 있소

그대들은 지금 어디서 무엇으로 살고 있는지 정말 궁금하지만

우리 그냥 가끔 그리워하면서

뜨개질하다 술 한 잔 하다 환희에 찰 때도 죽고 싶을 때도 문득 나누고 싶은 사람이 됩시다.

가을이 오면 정말 보고 싶은 여인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