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히 홍진호라는 게임프로에 관한 글을 보았다.

만년 2인자라는데, 지니어스라는 프로에서 1기우승자라고 한다.

이 프로는 나도 조금 본 일은 있는데, 2기에는 술책이 난무하고 있다고 한다. 그런데

홍진호는 그런 상황에서도 잔기교를 전혀 부리지 않고, 타인들을 비난하지도 않는다고 한다.

다만 자신의 장점으로 승부할 뿐이라는 것이다. 정말 오랜 만에 흥미로운 글을 읽었다.

우리는 인생을 세상에서 산다고만 여기기 쉬우나

그러나 실은 언제나 우리는 대상을 살 뿐 아니라, 나 자신을 경영하고 책임지고 있기도 한 것이다.

바둑을 두는 사람들도 자신들이 바둑을 둘 때엔 인생을 사는 것이 아니라 다만 바둑을 두고 있을 뿐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생각해보면

우리들에게 인생이 있다고 하면 언제나 인생이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내가 모태를 빠져나올 때에도 그것은 인생이었고, 육신이 사라질 때에도 그것은 인생일 것이다. 혹은 나의 생명활동, 혹은 그냥 생명활동, 혹은 그냥 그것,일 것이다.

인생은 구분되지 않는다.

중앙전투가 승부처였다고 하는 것은 다만 해석일 뿐이다. 언제고 승부처가 아닌 순간이 있는가?

승부처이든 아니든 잘못두면 망한다. 그리고 승부처라는 것이 왜 생기는가?

그것은 소위 승부처가 아닌 곳에서 조금, 또 조금 잘못두었으니 승부처도 활용해야 하고, 묘수도 두어야 한다. 그리고 묘수가 세번 필요하면 진다는 것은 바둑의 격언의 하나이다..

어쩌면 죽음도 곧 생명활동이라고 보아야 할 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그곳이 승부처라는 것이 하나의 해석이듯이, 죽음을 지금 우리가 죽음이라고 부르는 것도 하나의 해석일 수 있기 때문이다.

홍진호에 관한 기사를 보면서 다소간, 혹은 그 이상의 감동이 왜 온 것일까?

그는 테레비 출연을 하고 있으면서도 그 시간과 그 장소가 바로 그 자신의 진행 중인 인생임을 아는 안목있는 영혼의 기량을 보여주었기 때문일 것이다.

대상 중심으로 살아가는 습관을 두고 심리학에서 대상조회라고 한다고 한다. object-referral인데, 반대말은 self-referral이라고 한다고 한다. 자기조회인 것이다.

대상과 자신이 둘이 아니라고 하지만, 대상을 중심으로만 사는 입장에서 보면, 일단 회광반조를 해서 다른 방식을 알아야 한다. 그러면

만물은 즉비만물이요, 시명만물이라는 식의 금강경 논리,도 조금 더 가까울 수 있다.

모든 것은 다만 우리자신의 해석일 수도 있다. 설혹 그것이 세상의 보편적 혹은 평균적 인식이라고 하더라도, 우리가 그것을 승인해주지 않으면 그것은 내 인생에는 포함되지 않을 수 있다. 그렇게 하면 불편함이 올 수도 있다. 마치 우승가능한 홍진호가 그런 습속을 따르지 않아서 탈락을 하듯이 말이다. 그러나 인생이 과연 무엇인가?

더 지니어스,라는 게임에서 우승을 하고 상금을 받는 것도 인생일 수 있으나

반드시 그렇게 살아야 하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자신의 방식으로 꾸준히 살아가는 것, 그것이 그 자신의, 우리들 자신의 인생이기 때문이다.

고집을 찬양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세간의 습속을 마냥 따르는 것과 자신의 고집을 버리는 것이 반드시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세간이라고 하는 것 자체가

평균적 고집의 필드이기 때문이다. 그럴 때엔 외적으로 고집불통처럼 보이더라도 자신의 길을 따르는 것이 그 자신의 바둑이고 승부이다. 이럴 경우 어느 것이 고집이고, 어느 것이 순수함인지 구분하기 힘들어질 수도 있으나, 그러나 말하지들 않는가? Practice makes perfect.라고 말이다..

바둑프로로 입단하는 것이 좋은 것이라고 누가 말하는가? 그것은 다만 평균적 가치일 뿐이다.

인생은 알 수 없는 것이다. 보이지 않는 전체의 그림을 누가 아는가? 아무도 모른다. 이세돌과 이창호의 성공은 다만 부분적 전투에서의 소득에 불과하다. 조훈현, 오청원의 승리도 다만 부분적 전투에서의 작은 이득일 수 있다. 그래서 세상에는 오직 모를 뿐,이라는 말도 전해지고 있다.

산기슭에 살던 어느 노인에게 말이 한필 있었다.. 한자로 표현하면 새옹지마,이다. 뒷말은 인터넷에 다 나온다..

새옹지마를 보다 보편적으로 적용하면, 아무 것도 알 수가 없다는 말이 된다..

아무 것도 모르고 오직 바둑판의 소리만을 들으면서 제한시간 안에 꾸준히 두어가는 것

바둑판의 소리를 듣는 것을 두고 임성소요,라고 하고

주어진 제약들을 잘 갈무리해나가면서 과정을 사랑하는 것을 두고 수연방광이라고 한다..

서산, 즉 묘향산에 살던 청허휴정스님의 노래대로

만국도성이 개미집과 같다는 말이 더 현실에 가까운 것 같다..

인내심이 필요하다. 누가 인생을 제대로 알겠는가?

알고보면 부모도 세간의 화신이고, 선생이라고 불리던 사람들도 대개 다 그렇다. 오래도록 인내하지 않으면 중요한 것을 알 수 없다. 길을 걸어가는 것이 기적이라는 임제의 말을 어떻게 알겠는가?

오래오래 몰라서 모르는 나가 사라지도록 오직 모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