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는 박성대(朴盛大) 하면 '박 총알' 혹은 '왕총알'(총알기사 중 제일 빠른 총알기사를 지칭함)로 서울역 일대에서 최고의 기량을 인정받던 그 방면의 대가였다. 경남 사천(泗川)이 고향인 박 총알은 십수 년 전 젊음과 타고난 운전 솜씨 하나만 믿고 단신 상경했다.

그때는 일반 대중교통 수단이 턱없이 부족했고 통행금지까지 있던 시절이라 밤이 늦어지면 시민들이 이동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은 총알택시밖에 없었다. 그런 관계로 운전기사들 사이에 총알택시를 선호하는 사람들이 많았고 총알 자리를 얻기 위해 전국 각지에서 올라온 총알 후보들이 주야로 조합에 진을 치고 있었다. 워낙 수익성이 높은 편이라 지역을 놓고 깡패 조직까지 이권 다툼에 연루되기도 했다.

어려운 집안을 살리고 입신양명을 꿈꾸었던 그였기에 그는 물불을 가리지 않고 핸들을 잡았다. 왕총알 자리를 놓고 수많은 총알들이 앞다투어 자리 다툼을 하던 시절. 총알로서는 비교적 신참에 가까운 박 총알의 운전 솜씨는 동료 총알들 사이에 심심찮게 화제가 되었다.

선천적으로 운동신경이 뛰어났고 팔과 다리 힘이 유난히 강했으며 거기다가 도로 중앙을 치고 들어가는 담력과 어떤 위급한 순간에도 냉정하게 상황을 보는 판단력까지 갖추었으니 총알기사로서는 거의 완벽한 조건이었다. 그러나 박 총알은 주위의 찬사에도 불구하고 항상 배우는 자세로 꾸준히 기술을 연마해 나갔다.

그런 박 총알의 솜씨가 한창 빛을 발하던 무렵.

한번은 은퇴한 왕년의 노(老) 총알이 소문을 듣고 박 총알의 차를 시험 삼아 한번 타 본 후 그날 밤 술자리에서 개판으로 취해 이런 평을 남겼다.

「대단한 총알이로고! 기세는 하늘을 찌르고 담력은 산천초목도 벌벌 떠니. 총알계의 경사로세! 총알계의 경사로세!」

그 말을 입증이라도 하듯 얼마 후 박 총알은 개가를 올린다.

총알택시 반 년 만에 공포의 구간으로 소문이 자자하던 서울―인천간을 평균 시속 200 킬로미터, 그것도 비가 내리는 미끄러운 길을 21분이라는 전무후무한 기록을 세우고 들어오던 날 동료 총알기사들은 기립박수로 박 총알을 환영했고, 박 총알은 운전대를 부여잡고 한동안 말이 없었다.

그 사건 이후 박 총알은 총알 세계에서 일약 스타가 됐으며 서울역을 비롯해 용산, 영등포까지 그 명성이 널리 퍼졌다. 파란의 주역으로 등장한 박 총알의 행보는 거기에 그치지 않고 그 여세를 몰아 서울―수원, 서울―오산, 서울―평택 구간까지 모조리 평정하자 비로소 총알시대에 왕총알로 급부상하며 파란만장한 그의 시대를 열었다.

박 총알은 명성에 걸맞게 돈벌이도 좋았고 그 사이 가깝게 지내던 총알 선배의 주선으로 결혼도 했다. 가정을 가진 박 총알은 사랑하는 아내와 자식을 위해 더욱더 있는 힘을 다해 차를 몰았다.

그러나 세상 일이 다 그러하듯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이 있고, 절대 권력은 절대 부패하듯이 영원한 승자도 패자도 없는 만고불변의 진리 앞에 긴 세월 전성기를 구가하던 박 총알의 화려한 아성은 일시에 무너졌다.

‘죽음의 질주’라는 기사로 그 당시 신문 사회면에 톱을 장식했던 사건의 개요는 이러했다.

교통 사고로 수술이 시급한 RH- 혈액을 필요로 하는 환자가 송탄에서 애타게 피를 기다리고 있었고, 마침 용산병원에서 그 혈액을 비축해 둔 것이 있어 송탄까지 혈액을 급히 공수해야 할 상황이었다.

병원측에서는 일분 일초를 다투는 일이라 구급차로 옮기기에도 시간이 꽤 소요될 것 같아 생각 끝에 평소 총알택시를 자주 애용하던 병원 서무과장이 혈액을 들고 용산 총알택시 조합으로 급히 달려와서 사정 이야기를 했다.

사건의 내용상 당연히 박 총알에게 임무가 맡겨졌는데 그와 비슷한 일을 여러 번 처리해 온 박 총알인지라 별 생각 없이 어두워지는 고속도로를 최대 시속으로 파고들었다. 그날따라 도로에 안개가 조금 끼긴 했으나 박 총알은 늘 하던 대로 1차선과 2차선 사이에서 절묘한 곡예를 펼쳤다.

사고가 발생한 건 차가 거의 송탄에 가까워서였다. 반대편 도로에서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던 승용차들이 서로 추돌하는 순간, 뒤에서 달려오는 차들이 엉겁결에 중앙선을 뛰어넘어 들어왔다.

박 총알은 본능적으로 핸들을 꺾었다. 절체절명의 순간에 두 대의 승용차는 가까스로 피했으나 뒤따라 들어오던 봉고차를 미처 보지 못하고 박 총알의 차는 봉고차의 옆을 들이박고 도로 밖으로 튀어나가 언덕길을 굴렀다.

대형 참사였다.

그 사고로 박 총알은 온몸에 수백 바늘을 깁고 왼쪽 다리를 절단당하는 비운을 겪으면서도 불사조처럼 다시 살아났다. 그러나 목숨은 요행히 건졌으나 이미 총알기사로서의 생명은 끝이었다. 그 후 다리 한쪽을 고속도로에 헌납한 박 총알이 눈물을 머금고 쓸쓸히 낙향하니 실로 총알 8년 만의 덧없는 영화(榮華)였다.

고향에 내려온 박 총알은 모든 것을 잊어버리고 살기 위해 몸부림쳤으나 불구의 몸으로 삶이 수월찮았고 그때 자신의 사고로 인해 혈액을 공급받지 못한 환자가 끝내 목숨을 잃었다는 이야기를 전해 듣고 오랜 세월 박 총알은 죄책감과 괴로움에 시달려야 했다.

그나마 기원으로 흘러 들어와 바둑에 젖어 들고부터는 마음의 상처가 조금씩 치유되어 갔다. 언젠가 딱 한 번 총알시절에 자신과 쌍벽을 이루었던 전남 여수(麗水) 출신 이동식(李銅式) 총알의 사고 소식을 듣고 목발을 짚은 채 서울로 올라갔다.

대학병원 영안실에 당도하니 난다긴다 하는 당대의 총알들이 총집합하여 영안실은 북새통을 이루고 있었다. 목발을 짚은 채 절룩거리며 박 총알이 영안실에 들어서자 일순 장내는 숙연해졌다.

박 총알을 알아보는 베테랑 총알 몇 명이 쫓아 나와 박 총알의 손을 잡으며 설움에 북받치는지 울음을 터뜨렸다. 박 총알은 절룩거리며 빈소로 갔다.

이 총알의 초상화가 걸려 있는 빈소에는 부인과 중학생쯤 되어 보이는 자식이 망연자실 앉아 있었다. 박 총알이 불편한 몸으로 향에 불을 붙이고 절을 2배 했다. 타오르는 연기가 빈소를 가득 메운다.

초상화 속의 이 총알은 웃고 있었다.

생전의 이 총알은 어찌 보면 불운한 총알이었다. 빠르기로 따지면 유일하게 박 총알과 버금가는 이 총알이었으나 그 능력을 인정받지 못해 늘 찬밥 신세였다. 총알택시에서 가장 중요하게 취급되는 구역 확보와 특이하게 들어오는 큰 건수는 대부분 박 총알이 차지하고 상대적으로 영업하기가 취약한 구역과 잔잔한 일들만 이 총알에게 돌아갔다. 그렇게 되자 자연 두 사람의 관계는 소원해졌고 어쩌다 서로가 마주쳐도 말 한마디 나누는 법이 없었다.

그때부터 이 총알은 틈만 나면 박 총알을 씹고 다녔으며 박 총알도 그 못잖게 이 총알을 비난했다. 동료 총알기사들도 마침내 박 총알계와 이 총알계로, 엄밀히 따지면 경상도 총알과 전라도 총알로 편이 갈라져 한 치의 양보도 없는 세력 다툼이 시작됐다. 서로의 이권을 위해서라면 주먹다짐도 서슴지 않았고 자기 편에서 누가 불이익을 당하면 패싸움도 마다 않는 살벌한 사태가 연일 계속됐다.

그렇게 총알시대를 이끌어 온 양대 총알의 갈등이 눈에 띄게 심화될 무렵 결국 박 총알의 사고가 터지고 총알시대는 순식간에 역사의 저편으로 사라졌다.

초상화 속의 이 총알은 계속 웃고 있었다.

사고가 나고 장기간 병원에 입원해 있을 때 그나마 쌀말이라도 팔아 준 사람은 이 총알밖에 없었다.

언젠가 이 총알이 병실에 찾아와,

「박 총알, 다아 먹고 살자고 하는 것인디, 인생도 그런개비여. 총알처럼 살다가 총알처럼 간단 말이시.」

그는 자신을 보고 씁쓸히 웃었다. 그는 정말 총알처럼 살다가 총알처럼 가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