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보실업’이라는 모자를 늘상 쓰고 다녀 이름 대신 삼보로 불리는, 막 스물이 넘은 그는 천성이 착하고 온순해 기원 선배들 중 누구 하나 그를 싫어하는 사람이 없었다. 매주 주말과 휴일에는 꼭 기원에 들렀는데 이즈음에 와서는 통 그의 모습을 대하기가 힘들었다.

기원에 나타난 지 반 년이 채 못 되어 초급자에서 중급자의 기력을 갖추었으니 머리도 괜찮은 편이었고 바둑도 그의 성격만큼이나 승패를 떠나 항상 배우는 자세로 임했기에 요즘 보기 드문 건실한 청년이라 하여 독립군들 사이에 칭송이 자자했다.

독립군들에게 대충 인사를 한 삼보는 편 교수 앞에 앉는다. 삼보는 편 교수에게 지도대국을 수차례 받은 경험이 있었다. 지도대국이라고는 하나 생판 그냥 둘 수는 없고 30원짜리(판에 300원) 내기바둑이었다. 편 교수가 삼보의 처지를 감안하여 고육지책으로 금액을 하한가로 조정했는데 사실 30원짜리는 내기바둑에선 거의 찾아보기 힘든, 소멸되다시피한 풍속이었다.

삼보가 편 교수에게 넉 점을 놓으며 계면쩍게 웃는다.

「얼굴 보기가 힘들어.」

「일한다꼬.」

「30원짜리?」

「죄송합니다.」

바둑이 빠른 속도로 진행된다. 삼보의 신중한 장고바둑이 오늘은 편 교수의 손 따라 쉽게쉽게 두어진다. 시간이 지날수록 전에 없이 삼보의 행동거지가 이상해 보인다. 대국을 하며 히죽히죽 웃는 모습이라든지, 왼손을 주머니에 푹 찌른 채 한 손으로 바둑을 두는 건방진 자세가 예전 같지 않다. 바둑판 앞에 바짝 붙어 서서 구경하던 안기복이 삼보에게 말했다.

「삼보야 끝나고 복기나 한번 해 보자.」

삼보는 기복의 말에 깜짝 놀라며 얼굴에 두려운 기색이 보인다.

안기복의 본명은 안창복(安昌福)인데 기원에서는 보통 창복이 아닌 기복으로 통한다. 기복은 복기를 거꾸로 한 말이다. 복기로는 세상 누구에게도 지지 않는다 하여 독립군들이 붙여 준 별명이다.

한번 복기를 시작하면 몇 시간은 기본이고 길게 할 때는 밤새워 가면서 야통으로 복기를 하기도 한다. 상대가 자신의 복기에 승복 할 때 까지 끝까지 복기를 한다. 어떨 때는 바둑을 두다말고 복기를 할 때도 있다. 물론 두던 바둑은 개판이 된다. 다른 사람의 복기에도 끼어들기만 하면 그 바둑을 둔 사람들조차도 결국은 두 손 두 팔 다 들고 도망을 가게 만든다.

고수고 하수고 필요 없다. 기복의 복기에 걸리면 만사휴의다.

동남기원에 나타나기 전 다른 기원에서 기복은 복기 때문에 큰 사고를 쳤다.  

그 기원의 어떤 노(老) 기객과 복기을 하다가 싸움이 붙었는데 70에 가까운 그 노 기객도 복기와 더불어 평생을 살아온 사람이라 복기만큼은 백전노장이었다.

두 사람은 밤을 새워가며 복기로 붙었다. 아침이 되어서도 결말이 나지 않자 해장국이라도 먹고 와서 다시 해 보자고 같이 해장국을 먹으로 가다가 노 기객이 그만 기원계단에서 발을 헛디뎌 굴러 떨어져 버린 것이었다.

기원원장이 노 기객을 급히 병원으로 옮겼으나 사흘 후 노 기객은 뇌를 크게 다쳐 결국 유명을 달리 하고 말았다. 평생을 복기와 더불어 살아 온 그 노 기객은 복기끝에 그만 저 세상 사람이 된 것이었다.

일설에는 복기를 좋아하던 분이 복기를 하다가 임종을 맞이한 것이나 다름없으니 그것도 복이 아니냐라는 여론도 있었지만 아뭏튼 그 사건 이후 그 기원원장이 기복에게 복기금지령을 내리고 말았다. 그러자 하루하루가 감옥살이가 되어 버린 기복이 더 이상 견디지 못하고 이곳 동남기원으로 숨어 들어온 것이 지난 해 이맘때 쯤이었다. 

동남기원에서도 기복은 틈만 나면 복기를 하면서 손님들을 괴롭혔다. 독립군들은 그런 기복을 못마땅하게 생각하여 사사건건 기복의 복기를 견제 했으나 장 원장의 중제로 기복에게 야통복기같은 큰 복기는 못하게 하는 대신 잔잔한 복기는 눈 감아 주기로 했다.

그런 전적이 있는 기복이니 만큼 복기 이야기가 나오자 삼보가 놀라는 것도 전혀 이상 할 것이 없다. 삼보가 불안 해 하자 편 교수가 기복에게 한 마디 한다.

「기복씨 앞날이 창창한 사람한테 그카마 우짜노 얼마 안 남은 사람을 찾아 가 봐야지.」

「얼마 안 남은 사람이라니?」

「전번기원에서도 영감하나 보냈다면서.」

「누가 그카더노 내가 보냈다고?」

「다 그카데.」

「미친놈들 아이가! 보내긴 누가 보내! 지 혼자 갔지.」

기복이 화를 내면서 다른 자리로 간다.

잠시 후 대국이 끝나고 계가를 하는데 여전히 삼보의 한 손이 주머니에 들어가 있다.

지난 몇 달 동안 무엇을 하고 다녔는지 짐작할 수는 없으나 독립군들의 눈에 지금의 삼보는 전혀 아니다. 삼보의 행동이 많이 거슬린다. 편 교수는 고수인 데다가 한참 연장자가 아닌가. 그것은 바둑의 매너가 아닐 뿐더러 후배로서의 예의도 아니다. 한 손으로 계가를 하니 계가도 순조롭지 못하다.

보다 못해 옆에서 바둑을 두던 송강이 삼보를 나무란다.

「삼보야 손으로 계가하기가 뭐 하면 발로 해라.」

그래도 삼보는 못 들은 척 계속 한 손으로 계가를 한다.

「삼보. 왼손은 가시나들 손목 잡을 때만 쓰는 손이가.」

마침내 편 교수가 화가 나서 삼보를 나무란다.

삼보가 머리를 긁적이며 왼손을 주머니에서 끄집어내는데 삼보의 왼손은 엄지 손가락에서부터 차례로 세 개가 무참하게 절단되어 있었다.

「삼보! 어떻게 된 거냐!」

송강이 놀라 물었다. 삼보는 대답이 없다. 얼굴만 붉어지는데 아무리 봐도 선량한 백성이다.

「야, 삼보! 말해 봐! 어떻게 됐어?」

송강이 계속 다그쳐 묻는다.

「작업하다가 그렇게 됐심더.」

「어떻게 했길래 그렇게 됐단 말이냐?」

「밤새미하다가 그만 깜빡 조는 바람에…….」

삼보가 오히려 무안해한다.

기가 막힌다. 그 건강한 젊은이가 하루아침에 손가락 병신이 되어 돌아왔다.

「피해 보상은 받았나?」

편 교수가 혀를 차며 삼보에게 물었다.

「30만 원 받았심더. 개당 10씩 쳐갖고 30만 원 주데요. 뭐, 군대도 안 간다 카데요.」

순간 송강과 건너편에 앉아 있는 마공의 눈이 마주친다.

바둑돌을 쥔 마공의 손이 부르르 떨린다.

잠시 후.

밖에 볼일 보러 나갔던 원장이 돌아와서 삼보의 손을 발견했다.

「아이고! 삼보 손이 와 이카노! 우짜다가 이래 됐노!」

원장은 대번에 대성통곡을 한다.

「이기 사람 손이가 개 손이가! 세상에 우째 이런 일이 다 있겠노!」

삼보가 머쓱해한다. 말려 봐야 들을 사람도 아니고 사람들은 원장의 모양새를 가만히 지켜 볼 뿐이다. 한참을 시끄럽게 떠들던 원장이 제풀에 지친다.

「이걸 우짜마 좋겠노. 손이 이래 되가 뭐하고 살겠노. 내가 뭐라 카더노 삼보야. 여기저기 돌아다니지 말고 기원에서 조용히 바둑만 뚜라 안 카더나. 뭐한다꼬 그 카고 다니노!」

원장의 과잉반응인 줄 알면서도 사람들은 묘한 카타르시스를 느낀다. 그렇게 말하는 원장의 마음도 비슷하다.

「내 말 안 들으마 이래 된다 카이. 불쌍해서 우짜마 좋겠노. 서양아! 삼보 짜장면 하나 시키조라 …… 보통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