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널이 뚫렸다.

징용자들도 일본 군인들도 모두 술렁이고 있었다. 터널이 뚫렸다는 말은 반대 쪽에서 공사를 해 오던 선로와 연결되어 공사가 완료된다는 것을 의미했다. 마무리 공사가 끝나고 선로가 완전 개통되면 이곳은 더 이상 징용지로서의 가치를 상실한다. 이제까지 공사에 종사했던 징용자들은 어딘가 다른 곳으로 징용지를 옮길 것이며 수용소를 관리 감독했던 부대도 철수한다.

예정보다 2개월 단축된 공사였다.

공사 기간이 단축되었기 때문에 양쪽 공사를 지휘했던 소장들은 확실한 진급을 보장받은 거나 다름이 없었다. 호소카와 소장은 얼마 전 동경 주둔 군수부대 군수참모로 내정되었다. 그 동안 공훈에 따라 군인들에게는 특별 포상과 휴가가 주어진다고 해서 부대는 여느 때보다 들떠 있었다.

마지막 마무리 공사가 끝나는 대로 징용자들은 재편성되어 다음 징용지로 흩어질 예정이었다. 조만간 이곳은 모두가 철수하고 텅 빈 황폐한 곳으로 바뀔 것이다.

엔도가 소장실 문을 열었을 때 소장은 한창 서류를 결재하고 있는 중이었다.

「잠깐 기다리시오.」

소장은 서류를 마저 정리하고 결재란에 도장을 찍은 후에야 엔도 앞에 마주 앉았다. 아직도 결재할 서류가 한 뭉치 그의 책상 위에 올려져 있었다. 소장의 얼굴에 조금 피곤한 기색이 비쳤다.

「어쩐 일이오?」

「부대 분위기가 예전 같지 않게 좀 산만하군요.」

엔도가 딴청을 부리며 부대 분위기를 언급한다. 소장이 담배를 꺼내 물었다.

「곧 여기를 떠나게 되오.」

「발령이 났다면서요. 듣기로는 동경 근처에 있는 부대로 간다던데, 작전참모로.」

「작전참모가 아니라 군수참모요.」

「영전이오?」

「진급될 거요.」

소장이 담배 연기를 훅 내뿜는다.

「축하하오.」

엔도는 소장에게 딱히 더 할 말이 없자 본론을 끄집어냈다.

「내일 승부가 있소.」

「내일이라…… 왜 하필 내일이오? 본부에서 사람이 내려오는데…….」

「저쪽 사정이 그리 되었소.」

잠시 생각하던 소장이 어쩔 수 없이 동의했다.

「사정이 그러면 할 수 없지.」

「추평사 그 사람은 어쩔 생각이오?」

「…….」

「이대로 내버려 둘 생각이오?」

「다른 방법이 없지 않소.」

「솔직히 좀 안됐다는 생각도 듭디다. 탄원서도 읽어 보았는데…….」

두 사람 사이에 침묵이 흘렀다. 한참 만에 소장이 입을 열었다.

「위험 부담이 너무 크오.」

「까짓 지천으로 죽어 나가는 게 징용자들인데, 마음만 먹으면 쉽지 않소?」

「물론 풀어 주기는 쉽소. 그러나 그 뒤가 문제요.」

「무슨 소리요? 이해가 안 가는구료.」

「그는 평범한 사람이 아니오. 벌써 잊었소? 우리가 어떻게 마쓰모토와 게이오를 따돌렸는지!」

그 말엔 엔도도 수긍했다.

5, 6개월 전 일이었다. 우연히 엔도의 귀에 마쓰모토와 게이오가 며칠째 구마모토에 나타나 이곳 저곳 돌아다니며 평사의 소식을 수소문하고 있다는 정보가 들어왔다. 엔도와 소장의 입장에서는 그들이 곤경에 처한 평사와 마주치게 된다면 자칫 시끄러워질 수도 있는 일이었다. 잘못하면 엔도와 소장의 입장만 난처해질 뿐이었다. 엔도와 소장은 그들을 따돌리기 위해 대국을 연기하고 그들이 돌아갈 때까지 기다렸다.

온 구마모토 시를 헤집고 다니며 그들은 여간해서 돌아갈 생각을 하지 않았다. 소장과 엔도는 은밀하게 기타 큐슈에서 평사가 바둑을 둔다는 헛소문을 퍼뜨렸고 그들은 그 길로 황급히 기타 큐슈로 떠났다.

그런 일이 있고 한 달 후 그들은 다시 구마모토로 돌아와 평사를 찾기 시작했다.

소장과 엔도는 또다시 가고시마에서 내기바둑이 있다는 소문을 퍼뜨렸다. 그들이 퍼뜨리는 소문에 속아 이번에도 가고시마로 평사를 찾아 떠난 마쓰모토와 게이오는 그 후로는 다시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소장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그렇게 일을 처리할 수밖에 없었던 평사의 현재 입장이었다.

한참 만에 엔도가 다시 어렵게 말을 꺼냈다.

「나에게 맡기시오. 그러면 내가 그를 데리고 조용한 곳으로 가겠소.」

「그는 위험 인물이오. 그가 만약 이곳에서 풀려나 쓸데없는 소문이라도 내고 다니면 우리들에게 좋을 게 뭐 있겠소.」

「그는 함부로 이 말 저 말 하고 다닐 사람이 아니오.」

「엔도상, 욕심을 버리시오. 그만하면 충분히 재미를 봤잖소.」

「…….」

「그를 잊어버리시오.」

「어디로 보낼 작정이오?」

「이곳에서 떠나는 징용자들은 두 군데로 분산되오. 한 곳은 북해도 철도 건설 현장이고 다른 한 곳은 사할린이오.」

「그는?」

「아직 결정을 못했소. 아마 오늘중 결정을 내려야 되겠지. 거기가 거기라곤 하지만 그나마 좀 편한 데가 있을 거요.」

엔도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엔도가 소장실 문고리를 잡았을 때 소장이 엔도를 불렀다.

「엔도상!」

엔도가 그 자리에 섰다.

「허튼 생각 하지 마시오.」

「알았소.」

엔도의 멀어지는 걸음소리를 들으며 소장은 그때까지 생으로 타 들어가고 있던 담배를 재떨이에 비벼 껐다.

평사가 소장실 안으로 들어섰다. 소장은 창 밖 연병장을 내려다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