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몇 년이 지난 1835년 마쓰다이라(松平)의 로오쥬우(老中) 직위 은퇴기념 바둑회가 열리게 되었다. 마쓰다이라가 바둑계의 거물이었기에 벌어진 바둑 모임회였다. 죠와 명인은 일반 대국은 피할 수 있었지만 바둑계의 거물인 마쓰다이라의 초빙만은 거절할 수 없었다.

한을 품어 온 겐낭에게는 참으로 천재일우의 기회였다. 마침내 암암리에 자신과 죠와의 대국을 성사시킨 그는 뜻밖의 결정을 내렸다. 자신이 죠와와 붙는 대신 자신의 제자 아카보시 인데쓰로 하여금 죠와와 대결할 것을 명했다.

겐낭의 계산은 수제자인 인데쓰가 7단으로, 8단인 자신이 죠와를 이기는 것보다 파급 효과가 크리라 생각했다. 거기다가 당시 인데쓰의 기력은 겐낭의 생각에 정선(定先)으론 충분히 죠와를 누를 것이라 확신했다.

결전의 날, 스승의 한을 익히 알고 있는 인데쓰는 스승 겐낭에게 눈물로써 고했다.

「스승님, 목숨을 걸고 기어이 이겨서 돌아오겠습니다.」

말을 마친 인데쓰는 비장한 각오로 마쓰다이라가로 떠났다.

죠와와 인데쓰의 대결은 마쓰다이라 저택에서 이루어졌다. 이것이 그 유명한 ‘마쓰다이라 바둑회’이며, 표면적인 바둑 동호인 모임과는 달리 그 실상은 명인기소를 계속 지키려는 죠와와 이를 탈취하려는 겐낭 인세키간의 가문의 흥망을 건 대결투였다.

대국 첫날까지만 해도 흑을 쥔 인데쓰가 앞서 나갔다. 이노우에가의 비수로 무장한 인데쓰가 착실하게 선착의 효를 지켜 나가 59수로 봉수될 때까지만 해도 흑이 유망했다.

첫날 대국이 끝난 후 죠와는 심각한 고민에 빠졌다. 아무리 보아도 백이 쉽지 않은 형국이었다. 죠와는 무거운 심정으로 집에 돌아와 형세를 만회하기 위해 깊은 수심에 잠겼다.

『좌은담총(坐隱談叢)』에는 그날의 죠와를 이렇게 표현하고 있었다.

「……이리하여 죠와는 전심전력으로 연구에 연구를 거듭하여 밤중에 이르러 드디어 묘수를 찾아내고는 이제 되었다라고 한 소리 크게 지르고 자리에서 일어서는가 하였더니, 또 죠와가 큰일이구나 큰일이구나 소리치며 사람들을 불렀다. 제자들이 놀라서 뛰어가 본즉, 죠와가 입은 바지가 오줌에 질펀히 젖었을 뿐 아니라 지린내가 코를 찌르니…….」

바둑 연구에 골몰한 죠와는 소변을 보는 것도 그만 잊어버렸던 것이다.

반면에 그 시간 인데쓰는 독감으로 심하게 앓아눕게 되었다. 그러나 이왕에 시작한 바둑을 중단할 수는 없는 일. 인데쓰는 하루를 쉬고 다시 대국장에 나와 아픈 몸을 끌고 정신력으로 죠와를 상대했다.

그리고 그날 죠와의 묘수가 반상에 떨어졌다. 소위 ‘죠와의 3묘수’였다. 그 3묘수로 인해 형세는 완전 역전되어 인데쓰는 벼랑 끝에 몰리게 되었다.

대국 사흘째와 나흘째에 접어들어 인데쓰는 초죽음 상태가 되었다. 가냘픈 몸으로 간신히 버티고 있는 모습은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을 정도로 애처로웠다.

마지막 대국 날, 결국 형세를 뒤집지 못한 채 인데쓰는 마침내 돌을 던지고 판 앞으로 피를 토하며 쓰러졌다.

인데쓰는 그대로 쓰러진 채 혼수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하다가 한 달이 못 돼 숨을 거두고 말았다.

자신의 욕심으로 인해 사랑하는 제자를 잃은 겐낭은 이후 평생을 떠돌아다녔다.

풍운아 겐낭 인세키, 자신의 첩과 눈이 맞아 도망 가 살던 제자에게 심심할 테니 바둑이나 두라며 비자판을 선물했던 괴걸. 그 희대의 괴걸 겐낭 인세키는 말년에 이런 말을 남겼다.

「바둑은 실력이 아니고 운이다. 승부는 하늘이 점지한다.」

말년의 그는 철저한 운명론자였다.

「그때 죠와가 놓은 묘수를 ‘죠와의 3묘수’라 하여 고금의 묘수 그 두 번째로 칩니다.」

준코는 내친 김에 세 번째 묘수까지 일사천리로 설명한다.

「세 번째 묘수는 조금 전에 언급한 겐낭 인세키와 후성(後聖)이라 일컫는 슈사쿠(秀策)와의 대국인데 당시 8단인 겐낭에게 4단인 슈사쿠가 선으로 둔 바둑을 말합니다. 초반에 선착의 효를 잃고 불리했던 슈사쿠가 중반에 가서 놓은 한 수로, 그 수 때문에 겐낭의 귀가 빨갛게 변했다 하여 이적의수[耳赤之手]라고 불리었던 한 수입니다. 결국 그 한 수 때문에 바둑은 슈사쿠가 세 집을 이겨 승리했지요. 어쨌든 그 세 번의 묘수를 일컬어 고금의 묘수라고 합니다.」

「…….」

평사는 무표정했다. 그의 표정으로 미루어 준코는 그가 고금의 묘수에 대해 별 흥미가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보통 사람이라면 이야기만 듣고도 당장 기보를 보자 할 터인데 이 사람은 그런 면이 다른 사람들과는 판이했다. 산쓰이도장 동문들과의 연습대국에서도 그의 수를 칭송하면 그는 자신의 바둑을 자랑하거나 뽐내는 법이 전혀 없었다.

준코는 평사의 그런 모습이 갈수록 안쓰럽고 마음에 걸렸다.

그 무렵 호리에 관장은 한 가지 문제로 고민하고 있었다.

평사를 산쓰이도장에 잡아 놓기 위해선 어떤 조치가 필요하다는 게 호리에가 내린 최종 결론이었다. 누가 보더라도 의심할 여지 없는 걸출한 천재인 평사가 자신의 제의를 받아들여 줄지 의문이었고 설사 받아들인 후 산쓰이도장의 명패를 걸고 일본 기계를 정복한다 한들 엄밀한 의미에서 그것은 겉으로만 그렇게 보일 뿐 실제로는 평사 개인의 승리에 지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사실이 그를 괴롭게 했다.

호리에 관장의 염원은 완전한 산쓰이도장 출신에 의한 일본 기계의 정복이었다. 호리에 관장이 진정으로 탐나는 것은 평사의 기재였고 그것을 온전히 소유하는 방법은 평사를 완전한 자기 사람으로 만드는 것이었다. 호리에 관장은 그 수단으로 평사와 준코의 결합을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