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업에는 정(正)과 사(邪)가 있다. 사도라는 것은 과욕을 지칭한다. 욕심이란 안 보이는 수를 찾아내려 굳이 시간을 끌어서 생기는 수법이다. 모르는 수는 아무리 생각해도 여간해서 보이지 않는 법. 따라서 둘수록 후퇴한다.

정도란 욕심이 크지 않음을 의미한다. 욕심이 생기지 않으면 수법이 훌륭하여 날로 진보한다. 또 집 취하기, 말 잡기, 적진에 깊이 들어간 돌을 달아나도록 하는 따위는 모두 좋지 않다. 무릇 집 취하기는 틈이 생기고 돌 잡기는 무리하다. 깊이 들어가는 것은 욕심이다.

돌이 달아나는 것은 비겁하다. 집을 취하지 않으면 견고하고 돌을 잡지 않으면 무욕(無慾)하다. 돌을 버리는 것은 날카로움이다. 나의 돌을 감춰 굳힌 연후에 적의 허를 치라. 이와 같이 하면 진보할 수 있다.」

방 안에는 침묵만이 흐른다. 다카하시가 평사에게 물었다.

「죠와 선생의 이 말씀을 추선생은 어찌 생각합니까?」

평사가 자신의 생각을 밝혔다.

「옛 사람의 말이 틀릴 리가 있겠소. 다만 무수한 변화가 숨어 있는 승부에서 꼭 그 원칙을 고수하는 것은 어리석다고 생각하오.」

「옛 명인의 말씀이 허술하다는 것입니까?」

「그런 뜻이 아니오. 모든 변화를 검정해 보고 확인에 확인을 거듭하여 이기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이오. 취하지 않고 잡지 않으면 견고해지는 것은 당연지사이나 그것만으론 승부를 점하기에 족하다 할 순 없고 변화무쌍한 반상에선 승부의 기리(棋理)가 따로 없는 법이외다.」

다카하시가 그 말에 이의를 달았다.

「바둑이란 게 오직 승부만을 추구하는 건 아니지 않을까요? 이기기 위해서라면 바둑이 싸움과 다를 게 없지 않습니까?」

「그건 아니오. 내가 말하는 건 승부의 의념(意念)이오. 유리한 바둑을 지키기 힘든 이유는 이 승부의 의념이 떨어지기 때문에 그렇소.」

평사의 그 말에 많은 사람들이 수긍했다.

그렇게 겨울 한철 내내 평사는 호리에 관장과 그 밑의 문하생들과 어울려 격의 없는 바둑 토론을 벌이곤 했다. 호리에 관장과 문하생들은 바둑 토론에서 평사의 탁월한 감각에 탄복을 했다. 그리고 일견 평범한 듯이 보이는 수 뒤에 숨어 있는 평사의 뛰어난 직관에 부러움을 표시하기도 하였다.

그들의 첫 놀라움은 평사의 믿을 수 없는 기억력이었다. 처음 한꺼번에 취한 상견례 이후에 평사가 단번에 그들 모두의 이름을 기억하고 그 이름의 주인을 정확하게 구별하는 데는 놀라움을 금할 수 없었다. 어떻게 보면 평범한 일이라고 할 수 있겠으나 그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또한 산쓰이도장에 비치하고 있던 『창옥여운(敞玉餘韻)』에 실린 100종의 기보를 단 열흘 만에 한 수순도 어긋남이 없이 복기해 보이는 가공할 기억력을 과시하기도 하였다.

『창옥여운』이란 일본 바둑사의 영원한 기성으로 존경받는 도사쿠(道策)와 함께 기성의 반열에 올려진 슈사쿠(秀策)의 기보가 실린 책이었다. 기억력이 뛰어난 사람이라 하더라도 단시간 내에 기보 수십 국을 수순 하나 틀리지 않게 기억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하물며 100국이라는 방대한 양의 기보를 열흘이란 짧은 기간에 기억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한 일인데도 평사는 그것을 해낸 것이었다.

두 번째는 언뜻언뜻 내비치는 평사의 바둑에 대한 뚜렷한 주관과 그것을 뒷받침하는 예리하고 명쾌한 분석력이었다.

그날 저녁 준코가 다구(茶具)를 준비해서 평사의 방에 들렀다. 평사는 그때 마침 요미우리 신문에 게재된 연승전의 기보를 들여다보며 바둑판 위에 복기 검토를 하고 있었다.

준코가 차를 달여 평사 앞에 내밀었다. 평사는 준코가 들어온 줄도 모르고 바둑에만 정신이 팔려 있었다.

「오청원의 바둑입니까?」

준코가 평사에게 물었다. 평사는 그제사 준코에게 시선을 돌렸다.

「그렇소.」

「참으로 발상 자체가 새롭고 자유로운 신수가 아닐는지요?」

「신수라 했소?」

「그렇습니다. 사람들은 어린 오청원에게서 도인의 품격이 엿보인다고들 합니다.」

「도인이라…….」

평사가 눈을 감고 깊은 상념에 젖는다.

「나에게 바둑을 가르쳐 준 사람이 있었소. 언젠가 그가 말하길…….」

평사의 기억은 이제 돌아갈 수조차 없는, 치열하게 자신의 육신과 정신을 불태웠던 과거의 한 시점으로 거슬러 올라갔다.

주위의 사람들에게 바둑의 천재라는 소리를 수없이 듣곤 하던 평사였지만 평사가 얼마나 노력하고 있는지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 시절 평사는 하루에 세 시간 이상 수면을 취해 본 적이 거의 없었다. 도장에 있는 책들이 닳고 닳아서 걸레가 되도록 놓아 보고 또 놓아 봤다.

그런 피 나는 노력에도 불구하고 실전 대국에서 승부의 우위를 점한다는 것은 여전히 멀고 먼 풀리지 않는 숙제였다. 평사는 자신의 기재가 탁월하다는 주위의 평가에 아랑곳없이 스스로에게 깊은 절망을 하고 있었다.

갈수록 바둑은 오리무중이었고 수(手)의 길은 요원했다. 기리(碁理)의 늪은 깊고 깊어서 헤어날 수가 없었다.

어느 날 자시가 넘은 한밤중이었다. 모든 사람이 잠든 그 시각까지도 평사는 새로운 수를 발견하기 위해서 바둑판과 씨름하고 있었다.

방문이 열리면서 스승이 나타났다. 여간해서 제자들 방에 걸음을 하지 않는 스승이었다. 뜻밖에 스승을 대하자 평사는 저으기 당황했다.

「공부를 하느냐?」

「…….」

「……완벽한 수는 없다.」

스승의 말이 송곳처럼 평사의 가슴을 찌른다. 평사는 감히 대꾸할 엄두를 못 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