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균이 연지의 손을 이끌어 도착한 곳은 9번 그린이었다. 골프장의 모든 9번 그린은 클럽하우스가 지척이다. 모든 팀이 홀 아웃 한 그린은 내려앉은 어둠으로 고즈넉했다.

“뜬금없이 왜 여기냐. 나는 일 끝나고는 코스 쪽은 바라보기도 지겹던데.”

“나는 이곳 그린만큼 가여운 곳도 흔치 않다고 생각해.”

“왜 이곳으로 왔냐고 물었더니 갑자기 그린이 불쌍하다는 말은 또 뭐냐. 내가 좀 알아들을 수 있게 말해줘.”

“너는 왜 그린이 평탄하다고 생각해?”

“매일 깎아 주니까 그렇지.”

“깎아 주는 게 아니고 깎이는 거야. 나는 봄에 상고머리처럼 잘려나간 채 노란 꽃 몇 송이만 매달고 있는 개나리가 너무 불쌍해. 본래 개나리 가지는 넝쿨처럼 뻗어 길게 늘어져 자라는 거잖아. 거기에 매달린 수많은 꽃송이들이 아름다운 것이고. 그걸 단정하게 보이려고 잘라버리니 볼썽사나운 모양밖에 안 남는 거야. 그린의 잔디도 마찬가지야. 매일 잘라대니 위로는 자라지 못하고 옆으로만 자라. 잔디들이 촘촘하게 짜여 져 그린 스피드는 잘 나오겠지만, 그게 생물의 본능을 생각하면 죽지 못해 사는 거잖아. 사람들은 잔디를 마음대로 죽게 내버려 두지도 않아. 강력한 영양제와 농약을 써서 살아있게 만들지. 닭을 살찌우려고 케이지에 가둬 기르며 항생제를 먹이는 것과 하나도 다르지 않아.”

“나는 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않은 것들이네.”

“너만이 아니고 대부분 그래! 그런 그린에 하루에도 몇 번씩 구멍을 내잖아.”

“홀컵 위치를 바꿔줘야 하니까.”

“왜 바꿔줘야 하는데?”

“홀 컵 주변은 그린 다른 곳보다 더 많이 밟으니까.”

“사람들이 그만큼 그린을 많이 밟아 댄다는 의미지.”

“그래서 그린이 불쌍하다는 네 생각이구나. 그런데 우리는 이 시간에 또다시 쉬어야 하는 그린을 밟고 있네.”

“그러네.”

현균이 피식 웃었다.

“너 지난번에는 그린이 성스럽다고 했잖아.”

“이런 지난한 고통을 겪으며 아침마다 말짱하게 모습을 드러내던 봄날의 그린이 그런 거야. 이 가을의 그린은 안쓰러워.”

“우리 같이 그린을 위로해주자고 이 야심한 시간에 여기로 나를 데려온 거네.”

“그건 아니야. 나는 로망이 하나 있어. 이 그린 위에서 너와 하고 싶어.”

“뭘 하고 싶은 건데. 뽀뽀 한 번 해줄까?”

“아니! 섹스.”

연지는 잘못 들은 줄 알았다.

“뭐를 하고 싶다고?”

그녀의 말에 현균은 고개를 푹 떨구었다.

“내가 너무 격하게 놀라서 미안해. 그런데 너 제정신이야? 아무리 밤이지만 가끔은 사람들이 지나다녀. 그리고 그린이 망가지면 어쩌려고.”

“그래서 더 로망을 갖게 된 것인지도 몰라.”

연지는 풀죽어 있는 그의 어깨를 까치발을 하고 토닥였다.

“나는 언제 어디서든 너와 섹스할 수 있어. 너를 사랑하니까. 그래도 9번 그린은 너무 심하다. 우리 다른 곳으로 가자.”

그녀에게 이끌려 나오는 그의 모습이 가을의 그린 만큼이나 처량했다.

김차관은 오랫동안 기회를 엿보며 간절하게 갖고 싶었던 물건을 배달받은 사람처럼 조심스럽게 그녀를 매만졌다.

손으로 볼을 쓰다듬고 그녀의 고개를 살며시 젖혀 이마에 입술을 지그시 누른 뒤, 눈썹을 거쳐 감긴 그녀의 눈꺼풀에 뽀뽀를 했다. 그의 입술이 그녀의 콧잔등을 지나더니 그녀의 입술 꼬리부터 시작해 조금씩 옮겨가며 입술을 정성껏 탐했다. 이런 사소한 전희 동작에마저 한껏 달아오른 그녀는 몸을 비비 꼬았다. 그렇지만 그는 애써 서두르지 않았다. 손길이 둥그런 어깨를 지나 겨드랑이의 털을 간질이더니 도톰하게 솟아오른 곡선을 따라 작지만 탄력 있는 가슴을 애무했다.

“자기야 나 너무 뜨거워졌어. 나 좀 어떻게 해줘라.”

끈적거리는 여자의 속삭임에 남자의 성기가 꺼떡거렸다. 하지만 남자는 계속 손을 움직여 흥분으로 불쑥 솟아오른 유두를 건드렸다.

“나 거기 너무 민감해. 거기를 만지니까 내 조개가 너무 목말라 해.”

말과 신음이 뒤섞인 여자의 콧소리에 남자의 상징이 다시 꺼떡였다. 젖꼭지를 손가락으로 비틀며 다른 유두를 입술로 빨고 혓바닥으로 돌리자 여자가 남자의 사타구니 사이로 조개를 밀어 넣으며 부비기 시작했다.

“자기야, 그거 빨리 넣어줘.”

여자의 손이 남자의 몸을 더듬어 육봉을 찾아냈다. 남자는 슬그머니 조개 입구에 살짝 넣어 주었다. 여자는 더 깊이 들어오기를 바라며 한층 몸을 밀착했다. 그렇지만 남자는 엉덩이를 살짝 뺐다.

‘나도 지금 너를 갖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 그래도 조금만 더 달궈야 해.’

남자는 유두를 만지던 손을 천천히 밑으로 향했다. 배꼽을 지나자 곧 털이 만져졌다. 부드럽게 털을 쓰다듬던 손이 살이 갈라진 사이로 솟아 있는 작은 봉우리에 닿았다. 탱탱하게 발기되어 있는 그것은 잘 익은 앵두의 촉감이었다.

“헉,,,,거기 너무 좋아.”

살짝 건드렸을 뿐인데 여자는 비명을 터트렸다.

“이 녀석이 왜 이렇게 탱탱하지. 여기도 발기한 거야?”

“자기야, 발기는,,, 남자가 하,,,능거,,,지. 여자가 어,,,뜨케 그런,,,걸 해.”

흥분으로 인해 말을 제대로 이어가지 못하는 여자는 아직도 환각상태에 빠져 있었다. 남자는 환각상태의 여자와 섹스하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흥분을 최고조에 이르게 하는 것은 좋지만, 제 정신이 아닌 상대방과 하는 것은 유린이었다. 과정은 비록 정당하지 못했지만, 남자는 이 여자만큼은 정상적인 상태에서 얻고 싶었다.

‘이제 얼마 안 있으면 약 기운이 사라질 것이다. 나는 마음도 온전한 너를 얻고 싶다.’

남자는 조금 더 시간을 끌며 애무에 집중했다.

“팀장님! 도대체 뭐가 여기에서 난리 굿판을 벌였는지 감도 안와요.”

코스담당 과장이 황망한 모습으로 하소연을 하며 경기팀장을 찾았다.

“아침 일찍부터 무슨 일인데 그래.”

“이 사진 좀 한 번 보세요.”

그는 다짜고짜 휴대폰을 내밀었다.

“여기는 클럽하우스에서 가장 먼 인코스 6번 그린이잖아. 어? 그린이 왜 이 모양이야.”

“제 말이요. 곧 티오프 시간인데 큰일 났어요. 오늘 팀이 많아서 코스하나를 닫을 수도 없고.”

“그건 말도 안 되는 소리야. 같이 가보자.”

팀장도 6번 그린을 보자 입이 떡 벌어졌다.

“이건 뭐 홀컵 꽂을 자리도 안 보이네. 근데 멧돼지나 고리니 같은 짐승들 짓은 아닌 거 같지 않아? 회사에 불만이 있는 직원이 일부러 그랬나? 들어가서 CCTV 돌려보자.”

그린이 깊이 파이거나 완전히 망가진 곳은 없었다. 그렇지만 딱 퍼팅이 불가능 할 만큼만 망가져 있었다. 특히 다른 홀에 비해 넓지 않은 6번 홀 그린은 대책을 찾기 어려웠다.

“코스팀 모든 직원 6번 홀로 동원해. 홀컵 꽂을 만큼만 그린 잔디 다섯 평을 교체한다. 티오프까지 30분 남았고, 6번 홀까지 오는데 35분 여유 있다. 한 시간 내로 복구해. 그리고 경기팀장은 왜 이렇게 그린이 망가졌는지 원인파악해서 보고하고.”

보고를 받은 본부장은 불같이 화를 냈다.

‘하필 회장이 오는 날에, 그것도 라운딩 하려고 하는 그 코스에. 이건 나한테나 회사에 불만이 많은 놈들 짓이다. 나를 골탕 먹일 속셈이 분명해. 꼭 잡아서 처벌해야만 해.’

본부장은 아침 티오프 팀을 나머지 두 코스로 서둘러 이동 배치했다. 이렇게 해서라도 시간을 더 벌어야 했다. 그린의 잔디를 교체하려면 시간도 촉박했지만, 그린사를 덮어야 하는데 아무리 애를 쓴다 해도 표시가 날 것이다.

“그린 잔디를 교체한 자리에 이번에는 모래를 채우지 마라. 팀들이 빠지고 나서 저녁에 작업해. 회장님이 잔디 이어 붙인 자리 분명히 알아채실 텐데 걱정이다.”

“최대한 정밀하게 작업하겠습니다. 제가 현장에 함께 가겠습니다.”

“그래, 최팀장! CCTV 확인하는 것은 코스 정비 마치고 해라.”

지시를 마친 본부장이 씩씩거리며 밖으로 나갔다.

“오늘 하루의 시작도 만만치 않구나.”

최승진팀장이 자리에 털썩 앉으며 중얼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