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장님이 주실 선물이라는 게 뻔한 것이겠지요. 명품이나 금품 그런 것들인가요?”

“그런 흔한 것들을 드리려고 귀한 분을 모시겠습니까? 차관님에게는 다 흔한 것들일 텐데요,”

“무엇을 준비하셨기에 이렇게 자신만만하실까요?”

김차관이 짐짓 궁금해 하는 척 했다.

“명품입니다.”

“거봐요, 회장님! 식상하십니다.”

그의 얼굴에 실망스런 표정이 역력했다.

“이번에는 다릅니다. 명품은 명품인데 그게 사람입니다.”

의미심장한 미소를 띠우며 김회장이 능글맞은 어투로 말했다.

“사람이 명품이라니요?”

“명기.”

순간 김차관의 입이 헤벌쩍 벌어지고 눈이 크게 떠졌다.

‘침이나 닦아라.’

급 관심을 보이는 그가 김회장에게는 미끼를 물은 고기였다.

“확실한 것입니까?”

“제 눈썰미는 익히 아실 텐데요.”

“그거야 인정하죠. 그럼 믿어보겠습니다, 하하.”

그렇게 해서 시작된 라운딩이었다. 김차관은 정애를 처음 본 순간 그녀가 김회장의 선물인 것을 단박에 알아차렸다. 두 사람은 그녀와 자연스럽게 저녁식사를 할 수 있도록 작전을 짰고, 그녀는 이제 그 전략에 넘어온 것이었다.

무사히 라운딩이 끝났다.

“자기야 나 이제 일 끝났어.”

“응, 그래! 수고 많았네. 저녁에 내가 집으로 갈까?”

“미안한데 오늘은 자기 못 볼 거 같아. 오늘 운동한 고객들과 저녁 약속이 돼버렸어.”

“어쩌다 그렇게 됐어. 그런 일 거의 없잖아.”

“이따 집에 가서 전화할게. 일하다 보니 그렇게 돼버렸네! 얘기가 길어.”

“알았어. 그럼 이따가 전화해줘.”

이제 사실혼 부부처럼 지내는 그들이었다. 별다른 일이 없으면 마성이 그녀의 집에서 저녁을 먹으며, 민지랑 놀다 가기도 하고, 가끔은 자고 가기도 했다. 그러느라 그녀의 머릿속에서도 자연스레 윤철이 멀어져갔다.

“나는 당신하고 이렇게 지내는 게 황홀하게 행복해.”

“나도 그런데. 근데 자기는 왜 그렇게 지금이 좋아?”

“처음에는 당신과의 성생활이 주된 이유였는데, 이제는 당신집에서 민지랑 이렇게 사는 것이 원래 내 자리였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 더 좋아.”

그녀는 마성의 이 말에 울컥해져서 그의 품속으로 깊이 더 깊게 파고들며 그의 속옷을 눈물로 적셔버렸다.

자신도 그랬기 때문이었다. 처음에는 그와의 섹스가 강렬해서 좋았다. 윤철과의 섹스와는 다른 것이어서 좋았다. 섬세하게 배려 받고 수없이 오르가슴을 맛보도록 그는 섹스에 공을 들였고 진심이었다. 얼마 전에는 그와의 섹스가 점점 마음의 것이 되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흠칫 놀라기도 했었다. 그 생각 이후 그녀는 그를 남편처럼 여기게 되었는데 그가 이곳을 자기 자리처럼 여기게 돼서 행복하단다.

다섯 사람은 강남에서 손꼽히는 호텔의 음식점에 자리를 잡았다. 이 식당이 유명한 이유는 자타가 공인하는 세계적인 쉐프가 이곳의 주방장이라는 것이었다.

“정애씨는 이런 최고급의 식당이 더 어울리는군요.”

뜻밖의 말에 그녀는 깜짝 놀랐다. 김차관이 얼굴에 전혀 농담기가 없는 표정으로 말했기 때문이었다. 당황해하는 그녀를 보며 김회장이 거들었다.

“맞습니다. 미모도 그렇지만 지적인 이미지가 이런 장소에 무척 잘 어울립니다.”

“두 분께서 저를 너무 놀리시네요. 과찬이십니다.”

“이런 분을 만날 수 있게 해주신 감사의 마음으로 이 자리는 제가 쏘겠습니다.”

김차관이 마치 그녀를 차지하기라도 한 듯 말했다.

“그렇다면 2차는 제가 최고로 멋진 곳으로 안내하겠습니다. 모두들 기대하셔도 좋습니다.”

정애는 점점 부담스러워졌지만, 내색하기가 어려웠다.

“멋지고 훌륭하신 분들과 이런 자리에 있게 돼서 저도 영광입니다.”

그녀의 말에 네 사람은 박수를 쳤다. 주변에서도 돋보일 만큼 그들의 테이블은 흥겨웠다. 정애의 적절한 멘트와 리드 덕이었다.

최고의 음식을 재미있게 먹는 행복은 마음을 들뜨게 만들었다. 그들이 말하는 최고로 멋진 자리가 어디든 오늘 안으로 집에 돌아갈 수 있다면 문제될 것이 없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녀는 마음이 느긋해졌다.

“조금 멀리가도 문제없죠? 제가 책임지고 댁에 돌아가시는 것을 보장해드릴 것입니다.”

김회장의 말을 그녀는 아무 일 없이 잘 놀다가 집에 돌아갈 수 있다는 의미로 알아들었다.

“알겠습니다. 즐거운 시간 함께 하겠습니다.”

그녀의 말에 김회장은 만족스럽게 웃으며 차를 출발시켰다. 호텔에서의 분위기는 이동하는 차 안에서도 그대로 이어졌다. 기업의 회장이 되려면 입담이 좋아야 하는구나 생각이 들 정도로 두 회장의 언변은 거침이 없었다. 정치와 경제를 넘어 야담까지 적절한 농담을 섞어 쏟아내는 덕에 정애는 차가 외곽으로 멀리 빠지는 것도 알아차리지 못했다.

“멀지 않네요. 여기가 어디예요? 김포쯤인가!”

“썩 훌륭하지는 못하지만 제가 작은 별장 하나를 가지고 있습니다. 최고급 손님들만 모시는 곳이랍니다.”

장소가 어디인지는 말하지 않은 채 김회장이 일행을 안으로 안내했다. 초가을임에도 밤공기는 차가웠다. 엷은 옷차림의 정애는 서둘러 건물 안으로 들어섰다. 그녀의 뒤를 따르던 김회장이 엄지를 치켜세우자 김차관이 오케이 사인을 보냈다.

건물 안은 호화롭고 휘황찬란했다.

“우리나라에 이런 곳이 다 있네요. 영국의 대 저택에 들어온 것처럼 우아하고 고급스러워요.”

“정애씨가 마음에 들어 해서 다행입니다.”

“정말 귀족이라도 된 듯 착각이 들 정도입니다. 회장님의 재력이 엄청나세요.”

“귀한 분들을 귀하게 모시려고 준비한 곳이랍니다. 내 집처럼 여기고 편하게 즐기세요.”

다섯 사람에게 각각 방이 배정되었다. 정애는 방에 들어서며 다시 한 번 놀랐다.

‘이게 어떻게 된 거야. 노랗게 번쩍이는 거 이것들이 모두 황금이잖아!’

부자들도 진짜 큰 부자를 만나면 기가 죽는다고 하더니, 그녀는 벌어진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방안은 발 한 짝을 내딛는 것조차 조심스러울 만큼 귀중품들로 채워져 있었다. 새삼스레 자신이 초라하게 느껴지고 주눅마저 들었다.

“똑똑”

갑작스러운 노크 소리에 정애는 화들짝 놀랐다. 가뜩이나 움츠러들었던 마음이라 더 기겁을 한 것이다.

“네! 누구세요?”

“룸서비스입니다.”

부르지도 않았는데 룸서비스가 오고, 별장에 방이 얼마나 많아서 직원들까지 있는 것인지 선뜻 이해되지 않았지만, 들어오도록 허락을 했다.

“실례하겠습니다.”

깍듯한 인사와 함께 단정하게 차려입은 젊은 여자가 들어섰다.

“저는 회원님의 방을 담담한 직원입니다. 씻고 치장하시는 것을 도와드리겠습니다.”

“아니 그런 것들은 저 혼자서도 충분합니다.”

“제 업무입니다. 거절하지 말아주세요.”

하는 수 없었다. 자신의 일이라고 하니 나가라고 말하기도 어려웠다. 직원은 화장실로 들어가더니 욕조에 물부터 채우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들고 온 가방을 열어 주섬주섬 세면대와 욕조에 늘어놓았다.

“저기, 제가 씻는 동안에도 안에 계시는 건가요?”

“네. 제가 다 알아서 하니 회원님은 그냥 가만히 계시면 되십니다.”

“저를 씻겨주신다고요?”

“물론입니다. 그리고 말씀 낮추십시오. 오늘은 제 주인이시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