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참을 울던 최선애가 겨우 울음을 그쳤다.

“요즈음 처음으로 내가 일본에 온 것을 후회했어.”

“당신 심정 잘 알아. 이 일이 보통 사건이야? 동서가 저런 일을 벌일 줄 누가 알았어. 처제도 우리 집에 여행 온 것처럼 하고, 동서를 도운 거잖아.”

“걔들이 의식이 남다른 것을 알았지만 이렇게 큰일을 벌일 줄은 생각도 못했어.”

“한국민이 가진 일본에 대한 감정을 나는 충분히 이해해. 그런 이해가 바탕이 되었기에 내가 당신과 살 수 있는 것이고.”

“당신 마음을 내가 왜 모르겠어. 일본 사람들이 다 당신 마음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우리 아버지만 해도 나와는 생각이 많이 달라. 이번 일 때문에 한국에서 하는 일을 접으려고 생각까지 하는 것 같아. 그렇지만 당신과 타이키에 대해서는 무척 좋게 생각하셔. 그동안 타이키가 일본인으로 열심히 살려고 노력하는 것과 당신이 우리 부모님께 노력을 많이 하는 것도 고마워하시고. 특히 타이키가 동서를 검거하는데 일등공신이라는 것을 알고는 크게 상을 줘야 한다고 매우 흡족해 하셨어.”

“나는 타이키가 잘 할 것인지 판단이 안 돼.”

“당신 심정은 물론 그렇겠지. 모두 당신 가족인데! 그렇지만 이번 일은 가족이라고 감싸기에는 너무 엄청난 일을 저질렀어.”

“알아! 일본 사람인 당신이 이렇게 차분하게 나와 타이키를 대해주는 것이 무척 고마워.”

“당신과 타이키는 아무 잘못도 없어. 그렇지만 타이키가 무척 큰 충격을 받은 것 같아서 걱정스러워. 자고 나서 마음이 조금 안정되면 당신이 얘기 좀 나눠봐. 나도 기회를 봐서 대화를 해볼게.”

최선애는 이렇게 말해주는 하시모토가 무척 고마웠다.

한국 정부가 대변인의 명의로 입장을 표명했다.

‘우리 국민이 이웃나라 일본의 영토에 들어가서, 일본인들이 아끼고 소중하게 여기는 신물을 무단으로 탈취한 사건에 대해 깊은 유감을 표명한다. 우리는 이번 사건의 전말을 소상하게 밝히고 다시는 이런 일이 재발되지 않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 할 것이다. 또한 관련자들에게 대한민국의 국법에 따라 준엄하고 적합한 징계를 내릴 것이다.’

그렇지만 한국 정부의 발표는 일본의 우익 단체와 언론들을 더욱 반발하도록 만들었다. 그들의 주장은 자국의 법으로 범인들을 처벌 할 수 있도록 관련자들을 넘겨주는 성의를 나타내라는 것이다. 그런 주장을 하는 것이 억지임을 그들이 모르지 않는다. 어느 주권국가가 자국민을 다른 나라의 법에 의해 처벌하도록 넘긴다는 말인가. 저들의 주장이 자국의 여론을 달래기 위함임을 모두가 아는 일이다.

그런데도 그런 사실을 모를 리 없는 한국 정부의 고위 당국자들 중 일부가 ‘의현단’이라는 불법단체를 조직한 관련자들을 색출하여 처벌하자는 주장을 내세웠다. 그렇게 함으로써 우방국은 일본과의 관계를 회복하고, 일본 내의 반한 감정을 누그러트려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그들은 [문부성장학생]이라고 불리는 일당들이었다. 송준병이 그들의 맨 앞에 다시 나타났다.

“사회에는 규범이 있듯이 국가 간에도 규율이 있습니다. 우리 국민은 한국이 보호해야 마땅한 일이지만, ‘의현단’이라는 불법조직은 현실의 불만과 잘못된 의식을 가지고, 이웃인 우방국에 심대한 범죄를 저질렀습니다. 우리는 국익에 지대한 손해를 끼친 범죄자들까지 자국민이라는 이유로 보호 대상에 포함시켜서는 안 됩니다. 그 일당들은 야스쿠니의 신물을 훔쳐서 조직의 운영자금과 일신의 영달을 꾀하고자 암시장에서 거액의 거래를 하려는 시도까지 하였습니다. 정부는 즉시 저들을 색출하고 일벌백계로 사회에 경종을 울려야 합니다.”

일본학회측은 의현단에게 의도적으로 부조리의 프레임을 덧칠하고자 했다.

타이키는 보름동안을 두문불출했다. 곡기도 끊고 지내는 그가 걱정되어서 최선애가 강제로 밥을 떠먹여서 겨우 목숨만 부지시키는 형편이었다. 그녀는 아들의 심경을 알고 싶어서 온갖 방법을 써보았으나 그는 도무지 말을 하지 않고, 가족들마저 피하기만 했다. 그녀는 아들이 이모부가 자신 때문에 잡힌 것으로 여겨 죄책감에 사로잡혀 있는 것으로 짐작했다. 사실 여부를 떠나서, 아들의 잘잘못을 가리기 이전에, 엄마의 마음은 아들의 마음속 짐을 내려놓을 수 있도록 돕고 싶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최대 피해자가 되어버린 동생의 말 한마디가 필요했다. 그렇지만 그녀는 동생에게 전화할 용기를 내지 못하고 전전긍긍 중이었다. 동생이 지금 어떤 지경에 있을지는 너무도 뻔한 일이었다. 그녀는 아들에게 미안하고 동생에게 미안해서 마음속이 지옥 같았다.

최선미는 남편의 검거가 조카 때문임을 알고 있었다. 그 사실이 그녀를 때로는 분노하게 하고, 때로는 좌절하고, 때로는 슬프게 하였다.

‘어떻게 조카가 이모부를, 혈육의 잘못을 벌할 수도 없기에,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을 조카의 처지를 알기에···’

그녀는 바다 건너에 있는 언니가 안고 있을 고통이 넉넉하게 짐작되었다. 그런 언니를 도와주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그녀는 어떤 일도 할 수 없었다. 막상 남편이 돌아오지 못하게 되자, 거사를 일으키기 전에는 가지지 않았던 두려움이 그녀를 떨게 했다. 막연한 공포가 그녀를 무력함에 빠지게 만들었다. 소식은커녕 어디에 감금되어 있는지조차 알 수 없는, 살아있기는 한 것인지조차 모르는 답답한 절망은 그녀를 눈을 뜨는 것 마저 힘겹게 했다. 보이지 않게 자신을 지키고 있는 ‘대한독립의군부’ 대원들조차 부담스러웠다.

일본이 한국에 설민국과 야스쿠니 신물의 맞교환을 요청했다.

정부는 그 제안이 반가웠다. 양국은 모두 이번 사태를 타개 할 돌파구가 필요했지만, 일본은 일본대로, 한국은 한국대로 여론이 만만치 않았다. 그나마 이 방안이 양국에게는 최선이었다. 서로를 향해 악화되고 날카로워진 감정들은 세월의 힘을 빌어서 조금씩 다듬어 가야 할 일이었다. 협상단이 자리를 마주했다.

“이번 사태는 가해자인 한국이 먼저 성의를 보여야 합니다. 야스쿠니 신물이 제 자리를 찾은 다음, 범인을 한국 정부에 인계할 수 있도록 협조하시기를 원합니다.”

일본은 야스쿠니 신물을 먼저 회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렇지만, 야스쿠니의 물건을 먼저 넘긴다면 자칫 일본에게 끌려 다닐 염려가 있는 것을 잘 아는 한국은 쉽사리 동의하기 어려운 문제였다.

“이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일본의 요구를 들어줘야만 합니다.”

한국 정부 내에 있는 ‘문부성장학생’들의 목소리가 커졌다. 자칭 일본 전문가들인 그들은 일본 내에 있는 지인들을 통해서 일본인들의 여론 동향을 잘 파악하고 있다며 한국 정부를 강하게 압박했다. 한국정부는 특별한 대책이 없는 지금 상황에서, 만약에 일을 그르치더라도 일본 유학파들에게 책임을 떠넘길 길이 있을 때, 일을 처리하는 것이 낫다는 판단을 했다.

“양국 간에 약속을 이행 한다는 각서를 교환한다면 우리가 먼저 행동을 취하겠습니다.”

한국정부는 한 발 물러섰다. 한국이 가해국이라는 일본의 주장을 수용한 것이다.

정부의 움직임과 별개로 이재길은 한영운의 도움을 받아 설민국의 행방과 그의 신변에 대한 정보를 얻기 위해 필사적인 노력을 기울이고 있었다.

“총사령관님께서 저희 가족의 안위를 살펴주셔서 감사합니다. 덕분에 무사한 가운데 점차로 평온을 찾고 있습니다.”

“저희 조직의 당연한 의무입니다. 그보다 설의사가 어디에 있는지는 알아내지 못했지만, 신변에 이상이 없다는 것은 파악되었습니다.”

“우리나라에 들어오기 전까지는 안심할 수 없지만, 살아있다는 것만으로도 다행이고 감사한 일입니다. 정부 간에 각서를 주고받으며 맞교환을 성사시키기로 했다니 한국으로 생환할 가능성이 높아보여서 기쁩니다.”

“제가 설의사 부인에게는 남편 소식을 전했습니다. 그러나 의장님 말씀처럼 그분이 우리 땅에 발을 딛는 순간까지는 절대로 마음을 놓을 수 없습니다. 하지만 설의사가 한국에 들어온다고 해도 상황이 녹록치 않습니다. 통탄스러운 일이지만 국내에도 설의사를 위협하는 부류들이 적지 않은 것이 현실입니다. 어쩌면 일본은 이런 한국의 현실에 대한 노림수로 그분을 한국으로 생환시키겠다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소위 ‘남남갈등’으로 한국이 분열되는 것이 자국에 유리할 테니까요.”

“정말 분통이 터져서 미칠 일입니다. 이 땅에는 왜 그렇게 아직도 이념이 대립을 하고, 자유를 가장한 방종이 넘쳐나는지 납득을 못하겠습니다.”

“이 모든 것이 정치권에서 이념 대립을 이용하고, 남과 북이 해묵은 이데올로기에서 벗어나지 못한 탓입니다. 우리나라는 앞으로도 긴 세월을 이런 갈등으로 서로에게 상처를 입히며 살 것입니다.”

두 사람은 설민국이 한국 땅을 밟은 뒤에도 경호를 맡을 계획까지 세운 뒤 헤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