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오른 생각에 확신이 들자, 그의 심장이 무섭게 요동쳤다. 몸마저 흔들릴 정도였고 다른 사람이 자신의 심장 박동을 듣겠구나 싶은 생각에 두 손으로 심장을 눌렀다. 머릿속이 온통 뒤엉켜버렸다.

‘이모와 이모부가 우리 집에 온 이유가 이것이었어?’

영상속의 남자는 분명히 이모부 설민국이었다. 조금 전에 가슴에 피어올랐던 가족의 애틋함은 배신감으로 인해 무참하게 꺾여버렸다.

지금 그를 분노하게 만드는 것은 이모부가 신사의 어신체를 도둑질한 것도 큰 잘못이지만, 이모 부부가 범행을 위해 가족을 이용했다는 것이었다. 그 사실도 모른 채 자신은 그들의 방문으로 행복해했다는 사실이 그를 더욱 괴롭게 했다. 사람의 마음을 이용하는 것이 가장 잔인한 범죄라는 생각으로 분노는 극에 달했고, 마음이 분노에 지배를 당하자 그는 엉겁결에 소리치고 말았다.

“저 사람 내가 알아요.”

‘아차’하는 생각으로 그가 입을 막았지만, 이미 상황은 돌이킬 수 없게 되어버렸다. 모든 직원들의 시선이 그를 향하고 있었다.

“타이키, 정확하고 신중하게 말해야 한다. 네가 정말 저 사람을 알아? 어떻게 알 수가 있지.”

잠시 동안 그는 갈등에 휘말렸다. 그러나 곧바로 그는 마음을 진정시킬 수 있었다. 이모부는 이미 이모와 함께 어제 오후에 한국으로 돌아갔다는 사실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지금 신사의 직원들에게 말한다 해도 이모부는 이미 한국으로 돌아갔기 때문에 위험하지 않다는 생각에 안도감마저 들었다. 아무리 자신이 일본인으로 살고, 일본에서 앞으로 뿌리를 내려야 한다 해도 가족을 위험에 빠트리는 것은 별개의 문제인 것이다.

신사의 보안요원들이 타이키를 데리고 그들의 사무실로 데리고 갔다. 그들은 순식간에 그를 범인처럼 다루기 시작했다. 그들은 타이키의 이력서등 그와 관련된 자료 분석을 마쳤다.

“너 조선인이었구나! 그리고 네 가족 중에는 독립운동가가 있었네. 너는 악질 불량선인이다. 네가 여기 신사에서 일본인인 것처럼 신분을 위장하고 저 범인을 도운 것이다.”

그 시점부터 타이키는 용의자로 분류되었다.

“아닙니다. 내가 그를 도왔다면 왜 일부러 강당으로 가서 저 사람을 안다고 말했겠어요. 내가 한패라면 그럴 리가 없잖아요.”

“너는 다른 범인 일당에게 여기 정보를 주려고 염탐하러 온 거야. 만약 네가 저 사람의 신상에 대해 정확하게 말한다면 네 말을 참고해주겠다. 만약 거짓을 말한다면 너는 여기에서 나가지 못한다. 이 자리가 네 무덤이 될 것이다.”

타이키는 무서웠다. 그렇지만 이모부에 대해 사실을 말해도 이미 한국에 있을 테니 아무 문제가 없을 것이라는 믿음 때문에 그는 설민국에 대해 알고 있는 모든 것을 말했다. 일본 경찰은 즉시 설민국의 신상 파악에 돌입했다. 그는 입국 기록만 있고, 출국기록이 없었다.

“놈이 아직 이 나라 안에 있다. 다른 범행을 준비하고 있을지도 모르니 2급 경보를 발령한다. 그리고 놈을 즉시 출국금지 명단에 올린다. 공항의 보안 요원들 모두에게 각별하게 검색 작업을 진행하도록 지침을 하달한다.”

이렇게 긴박한 일이 벌어진 것을 상상하지도 못하고, 공항으로 스스로 걸어들어 간 설민국은 허망하리만치 쉽게 검거되고 말았다.

최선미는 한국의 공항에서 저녁을 같이 먹자고 약속했던 남편을 기다리고 있다.

최선애는 집에서 늦은 시간까지 집에 들어오지 않고 있는 아들을 기다리고 있다.

동생은 남편이, 언니는 아들이 연락이 닿지 않았다. 각각 다른 장소에서 두 자매는 서로의 소중한 사람을 기다리며 애만 태우고 있는 것이다.

설민국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완벽한 작전에 완벽한 거사였다. 이들이 이렇게 빨리 자신의 신상을 파악하고 검거 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검거되자 그는 살아날 기대하지 않았다. 일본 제국주의 시절의 고문기록을 보면 사람이 견디지 못하고 끝내 기밀을 누설하도록 만드는 방법을 아주 잘 아는 일본 경찰이다. 결국 고문을 이기지 못하고 자신이 자백을 하도록 만들 것이다. 그는 당당하게 모든 것을 밝힐 결심을 했다.

“배후가 분명히 있을 것이다. 밝혀라. 한국 정부가 지시를 했나.”

취조실에서 조사를 하는 경찰의 눈에 분노가 이글거리고 있었다. 그런 그를 설민국은 대답 없이 바라보고 있었다.

“감히 신사에서 우리 일본의 정신적인 지주인 어신체를 탈취하고, 명부를 빼내다니! 이런 일을 네 놈 혼자서는 저지를 수 없다. 배후에 누가 있는지 불어라.”

그는 기필코 사건의 내막을 밝혀내고야 말겠다는 결연한 의지를 온 몸으로 뿜어내고 있었다.

“너무 겁주지 마라. 내가 숨기려든다고 한들 너희들은 어떤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내게서 자백을 받아낼 것임을 나는 잘 알고 있다. 나는 너희들에게서 고통을 당하고 싶지 않다. 숨길 이유도 숨길 수도 없다는 것 잘 안다.”

“고마운 말이다. 나도 너를 취조하고 고문하는 수고를 덜겠구나.”

“수십 년 전, 대한민국의 위대한 독립운동가이신 안중근 장군께서 너희들에게 잡혀서 취조를 받으며 그분이 당당하게 밝히신 것이 있다. '대한의군 참모중장 독립특파대장 안중근'이라고 하신 것이다. 감히 나도 당당하게 밝힌다. 나는 대한민국 비밀조직 ‘의현단’의 제3단장 설민국이다. 너희도 잘 알겠지만 비밀조직이란 점조직으로 운영된다. 나는 제3단을 이끄는 단장으로 나의 단원 1명과 같이 이 의거를 결행했다.”

“네 윗선을 불어라.”

“그 분은 ‘의현단’의 의장이신 이재길이다. 의장님은 이 거사를 말리셨다. 신사 야스쿠니가 가지는 상징성이 너무 크기에 한국은 물론 주변의 어느 나라도 동의하지 않을 것이라 하셨다. 그 말을 듣지 않고 나는 다른 동지와 거사를 벌인 것이고, 치밀하지 못하게 일을 벌여서 이렇게 빨리 내가 너희들에게 검거를 당한 것이다.”

이재길은 제3단의 단원 홍설민을 마주하였다.

그는 일본에서 구매한 것으로 보이는 일본 군도와 서류뭉치를 탁자에 올려놓았다.

“의장님! 야스쿠니신사에서 ‘어신체’라고 부르는 군도와 일본이 합사한 한국과 동남아 국가 국민들의 영새부, 그리고 야스쿠니 A급 전범인 이타가키 세이시로 전 육군대장을 비롯한 14명의 명부입니다.”

“이것들을 정말로 야스쿠니 신사에서 가져왔단 말이오?”

그는 믿기지 않는 듯 놀라며 그것들을 찬찬히 들여다보았다.

“그렇습니다. 설민국 동지가 직접 탈취하였고, 저는 일본에서 한국으로 운반만 하였습니다. 제가 이렇게 ‘의현단’의 규율을 어기고 의장님을 직접 뵙게 된 이유는 설민국 동지와 연락이 끊어졌기 때문입니다.”

이재길은 뜻밖의 비보에 소스라쳤다.

“설단장이 그럼 일본을 탈출하지 못했다는 뜻입니까?”

“제 생각에는 그런 것으로 보입니다. 면목 없습니다.”

홍설민은 고개를 푹 수그렸다.

“큰일이군요. 설단장의 생사를 장담할 수 없게 되었어요. 그가 붙잡힌 거라면 ‘의현단’ 조직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국가 간의 분쟁으로 비화될 것입니다. 분명히 저들은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설동지를 고문해서 배후를 파악하려 들 것이고, 그 고문을 설동지는 이겨낼 수 없습니다. 조만간 한일 양국에 격변이 일어나겠군요.”

이제 앞으로 닥칠 파장이 그로서도 가늠조차 되지 않았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설단장의 안전을 확보하는 일이었다. 그는 서둘러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제 책임이 큽니다. 단원들의 섣부른 거사를 막았어야 했습니다.”

이재길은 다시 한영운을 찾았다.

“나는 설단장이 자랑스럽습니다. 이 통쾌한 의거를 그 누가 감히 폄훼하겠습니까. 이렇게 자랑스럽게 그가 목숨을 던져서 거사를 성공했습니다. 다른 어떤 일들보다도 이것이 가장 중요한 것입니다.”

한영운의 목소리가 떨려나왔다.

“저도 통쾌한 쾌거임을 인정합니다. 그렇지만 이 일의 후폭풍을 어떻게 감당합니까. 국가간의 분쟁이 일어날 것이고, 사회 전반에 커다란 후유증이 생겨날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가장 중요한 것은 설단장을 잃게 될 것입니다.”

“이 일은 안중근 대장의 거사나 윤봉길의사의 거사에 버금가는 일입니다. 당연히 여파가 크겠지요. 그리고 목숨을 던지고 설단장은 거사를 성공했습니다. 이것이 가장 중요한 일입니다. 앞으로 발생될 일은 그에 합당하게 대처를 하면 됩니다.”

“설단장의 목숨을 구할 길은 없겠지요?”

“단원을 걱정하는 의장님의 염려는 충분히 공감합니다. 그렇지만 저는 구명 할 방법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재길은 한영운 총사령관이 무엇을 믿고 저렇게 자신만만해 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