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이 갈수록 사태가 단순화되는 면이 있다..

아직 말구가 사라지지는 않아서인지

떠오르는 구절들이 있다..

하나는 작업구불 생사대조라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고요함이 본연의 지혜를 나타나게 한다는 것이다..

뒤의 것은 내용적으로 보면 정혜의 구조와 같지만

마음으로 어느 정도 계합한 것은 고요함의 지혜를 보다가가 아니었나 싶다..

마음이 고요하면 거기에 지혜가 드러난다는 말이 나오는데

원래 계정혜 3학의 구조에 내재된 말이지만, 유난히 공감되었다..

고요함이란 공,의 청각적 버젼이다..

색이 공이라고들 하지 않는가? 모든 형체들의 근원을 알라는 뜻이다..

고요함을 말할 때에는 모든 소리들의 근원을 인식하라는 말이 되고, 고요함이란 바로 공의 청각 버젼인 것이다..

눈에 보이는 것을 안보이는 것으로 인식하는 것은 연속성의 제공이라는 친절이 부족하지만

소리가 고요함으로 가는 것은 연속적인 흐름을 느끼게 하니 자연스럽다..

모든 소리가 침묵을 배경으로 하는 것이야 누가 모르겠는가? 다만 침묵이란 다만 청각과만 연관된 것이 아니라

침묵은 바로 만상의 근원이라는 뜻일게다.. 노자식으로 말하면 무명천지지시라고 할 때의

그 무名에 해당한다..

고요함이란 또한 심리적 버젼이기도 하다.. 모든 심리적 불안 이전에 절대적 안정이 항상 공존한다는 것으로 볼 수도 있다.. 좀더 확장해석을 하면

모든 번뇌와 생사의 이전에 언제나 어디에서나 열반이 공존한다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이 경우의 고요함은 적정이라고 하기 보다는 적멸이라는 번역이 어울리겠다.. 즉

모든 생멸은 언제나 적멸과 공존한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인간으로 태어난 일의 장점은

이러한 사태를 주체적으로 체득하고 운용할 수 있는 자각력을 갖춘 일이라는 것이 아마도

인간으로 태어난 일이 귀하다고 하는 말의 의미이리라..

작업구불 생사대조라는 말은 대승찬,이라는 책에도 나오고, 또 유명한 임제록에서도 인용되고 있다..

업을 지어서, 즉 일을 벌여서, 즉 신구의 3업을 조작해서 부처를 구하는 것은 그것이 도리어

생사의 조짐일 뿐이라는 말이다.. 즉 부처를 구하는 것은 노력의 측면보다도 발견의 뉘앙스가 강하다는 뜻일 것이고, 아마도 여기에서도 고요함의 지혜라는 말이 은근히 연결되고 있을 것이다..

기법의 훌륭한 조작 이전에 마음의 고요한 그곳을 잘 발견해보는 것이 요긴하다는 것이리라..

본래성불이라는 말도 있고, 마음이 부처라는 말도 있는데, 아마도 모두 연관될 것이다..

도대체 그래서 무얼 어쩌라는 것인가? 라는 말이 나올 수 있는 곳이 인간세상이고, 한국사회라는 생각도 든다.. 세상에는 왜 이런 구절들이 전해져 오는 것일까?

한 세대 쯤 전이었는데, 어느 전통경전을 30년 간 연구했다는 분과 간략한 소풍에 참여한 적이 있었다..

어쩌다가 잠깐 대화의 기회가 생겨서 당시의 내가 질문하기를, 왜 이런 연구를 이렇게 오래 하시게 된 것입니까? 라는 식으로 질문을 했더니, 당시의 나로선 예상밖의 답이 나왔었다..

진리를 구하는 데에 무슨 이유가 있냐는 것이었다.. 마치 그대는 왜 사는가? 라고 되묻는 식이었다..

30년 간의 연구를 통한 덕스런 답을 기대하던 젊은 나로선 의외의 답에 당황했는데

세월이 오래 흐른 지금 가끔 생각나는 장면이다..

우리는 흔히 세상을 살면서 학교를 다니고, 대학을 나오고, 결혼을 하고, 가정을 가꾸고, 세상에서 무언가를 성취하는 것이 인생이라고들 생각하게 맹글어지고 있지 않은가?

그런데 그 분의 답은 그게 아니었다.. 얌마 그럼 사람이 할 일이 이런 일 밖에 뭐가 있냐? 머 이런 식의 답이었던 것 같다..

가끔 인터넷을 보다가 보면, 법문을 하다가 투정을 부리는 분들이 있다..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공부가 무슨 여가선용이나 고급교양 쯤 되는 줄 안다고 투덜거리는 것이다.. 달마에게 팔을 잘라바쳤다는 신광의 이야기가 다만 동화책인 줄로만 아느냐는 식이다..

가끔 그런 내용을 접하면 혼자 웃게 된다... 나도 세월이 흐르다보니 유사한 심정을 겪어본 일이 있었고

또 앞서 소개한 옛날의 저 장면이 떠오르기도 한다..

사람들은 대개 마음의 평화를 세상에서 부귀영화를 누리는 한 부분이나 수단으로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그게 아니라 마음의 평화 속에 모든 것이 담겨있다고 보는 분들도 있는 것 같다..

어느 책의 표현을 빌면, 산하대지가 모두 평화로움 속의 영상에 불과한 셈이다..

고만 쓸 때가 된 듯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