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에는 냉면을 한 그릇 접수허고

먼 길 갈 처지가 못되어서 인근에서 한 바퀴 돌았는데 산길을 가로지르는 코스이다..

이 정도면 그래도 거리 상으로 3킬로미터 정도 되니까, 기본적으로는 쓸모가 있다고 느껴져서 기쁘다..

모두가 순례 혹은 도보여행이라는 개념의 힘이다..

산길의 중간 쯤에는 작은 누각인지 정자가 하나 있는데, 여기에 앉아서 좀 쉬었다..

매미소리도 듣고 수건으로 닦기도 하면서 아래에 놓인 풍경을 보니

어느새 새로운 도구들이 생겨났다..

나는 이전에 관악산을 즐겨 등산하던 시절에는 그 어떤 도구도 사용하지 않았다.. 그러다보니

뒷산과 같은 한국산을 등산하면서 온갖 장비를 쓰는 사람들의 속내를 알기 힘들었는데

금년에 처음으로 땡볕에서 머리를 보호해야 하겠다는 생각에 차양모자를 구매하였다..

처음에는 밀집모자와 차양모자를 각각 하나씩 샀는데

밀집모자에 둘러진 띠가 왠지 이상해보여서 차양모자만 둘을 구하였더니

며칠 가지 않아서 그 사연이 드러난 것이, 차양모자는 서둘러서 벗고쓰면 머리를 두르는 띠가 부러진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후부턴 모자를 쓰고 벗을 때엔 자연히 주의력이 생겨나면서 조심스레 쓴다.. 마치 테레비에 등장하는 미인들이 밥을 먹을 때에 입모양과 숟가락 조정을 잘 하듯이 말이다..

다른 도구도 하나 등장했는데

우연히 집안에서 발견된, 수년 전에 마라톤대회에 참가등록을 했다가 수령한 기능성 수건이었다..

나는 그런 수건을 사용한 적이 없었는데, 잘 접혀진 수건을 펴는 순간 바로 용도를 알고 즐거웠다..

보통의 수건들보다 길고 좁은 것이라서

어깨에 두를 때에 자연스럽고 편하다.. 그리고

오늘 차양모자를 쓰고 그 긴수건을 두르고 걷다가 보니까

중동사람들이 머리에 두건을 쓰고 머리를 천으로 덮는 이유가 저절로 알아지는 것이었다..

만약 내가 차양 모자를 쓰기 전에 그 긴수건을 먼저 머리에 놓고 쭉 내려오게 한 다음에

그 차양모자를 쓰게 되면 그기 바로 요즘 말많은 리비아 등지에서 사용되는 중동식 두건의 모습이 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중동식 두건은 그러고보면, 이전에 우리나라 사람들이 쓰던 삿갓의 중동 버젼인 것이다..

나도 이전에 지리산에 갔다가 기념으로 삿갓을 쓰고 돌아다닌 적이 있었는데

그 쓰임새가 참 좋았다..

비올 때엔 우산이요, 물을 마실 때엔 컵이 되어주기도 하고, 시선을 어느 정도 가려주니

정서적으로 안정되는 느낌도 가질 수 있었다..

돌아올 때에 영등포 지하보도를 올라서는데, 옆에 늘어섰던 미인들이 보고 낄낄 거리던 기억도 난다..

요즘은 창녀라는 용어도 사라졌지만, 다른 양태로 몸을 팔아서 사는 인구도 좀 있을 것이다..

경험이라는 면에서 평등하다고 볼 순 있겠지만, 만약 장기적인 비젼이라는 것이 있다면 어렵더라도 피하는 것이 나을 것이라는 느낌이다..

이전에 어느 영화를 보니까 여자가 자기를 무시한다고 창녀촌에다가 팔아버려서 보복을 하는 내용이 있었다.. 마지막 장면은 아마도 그렇게 상황에 길든 여자가 그 남자를 따라간다는 내용이었던 것 같은데

습관의 무서움에 대한 메타포라면 명징한 것이겠지만, 눈뜨고 보기엔 좀 곤란했던 느낌이 있다..

아마도 난 아직 인간인가보다....

그때 그 삿갓은 언젠가 사라져버렸다.. 인생은 참 묘해서, 이건 잘 간수해야지,라고 다짐해도

묘한 맥락을 통해서 그게 사라진다.. 그 삿갓도 없어졌고, 대학시절에 즐겨쓰던 하늘 색 차양모자도 사라졌다..

그런가 하면 누군가가 짜주면서 잃어버리면 안돼... 그럼 쥑인다,라고 하던 애정깊은 목도리도 언젠가부터 없다..

거리가 멀어지면 도구도 늘어나는 모양인데, 여행이 길어지면 거주기간도 길어지고

아마도 그래서 우리도 집이라는 물건을 사용하게 되고 해지기 전에 귀가하라는 말도 생겨나고 했을 것이다..

요즘 들어서 인간들의 제도라는 것들을 생각해보면

여행지에서 과도하게 자리잡은 것이 아닌가 의심스럽다.. 크게 보면 모두가 임시적인 것인데...

 ** 6일 오후 3시 14분-

면허시험을 960번 만에 합격한 차 사순 할머니에게 차가 생겼다는 기사가 나온다..

필기시험에만 949회를 실패하였다고 하니

정말 놀라운 사례가 아닐 수 없다..

인내심의 한계를 벗어난 마음씀을 보고 배운 것 같다..

감사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