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저께인가 밤에 화면을 돌리는데

작곡가와 작사가가 만나서 사연을 꾸리는 영화가 나왔다..

무언가 끌리는 것이 있어서 보고 있자니

어디선가 듣던 멜로디를 테마로 하고 있는 것 같았다..

진행의 경과를 보고 있으니, 작곡자는 며칠 안에 곡을 만들어 주어야 하는데

우연히 만난 여자의 표현감에 끌려서 자꾸만 가사에 관한 의견을 물어본다..

알고보니 여성은 문학수업의 경험이 있는 사람인데

공부과정에 지도교수와의 연분과 그로 인한 상처가 깊은 상황..

두 사람은 작사에 성공하고나서 기념식사를 하러 갔다가, 그녀의 악당과 만나게 되고

속풀이를 하지 못하는 여자를 대신해서 작곡자가 나서다가 다툼이 벌어지고 운운...

드라마가 펼쳐지는 흐름을 보면서, 미국영화는 정말 소재가 다양하구나,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어쩌면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지금 우리의 생활환경은 그 문명의 기조 자체가 서양적인 것이고, 미국적인 것이다..

그러니 그들은 원조적으로 창조성을 발휘하기 쉬운 상황인 것이고

개발도상국가에서 출발해서 아직도 일정 수준의 혼란을 금하지 못하는 우리가 남들이 만들어놓은 게임의 룰을 좇기 바쁘니, 그들의 창조성이 대비되는 것은 불가피할 지도 모른다..

창조성이 달리 따로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판세 자체를 보고서 거기에 합당한 고유한 관찰을 하는 과정에 새로움과 수순의 묘합이 그려내는 것이 창조성이 아니겠는가?

한국이 당면한 문제의 근원은, 삶의 의미와 방식을 스스로 관찰하고 가꾸는 문명창조의 용기와 노력의 부족함에 있을 지도 모른다는 평소의 생각을 다시 하게 되었다..

개별적으로는 눈에 띄기도 하고 관심가는 일들이 꾸준히 생겨난다..

어제 밤인가에는 위대한 계춘빈인가 하는 영화를 다시 접했는데

미술치료사와 유치원 같은 곳에서 일하는 여선생이 만나서 그리는 드라마였다..

사랑의 의미와 트라우마의 개인적 극복 같은 것이 모티브로 얽힌 것이었는데, 이번에도 시작도 끝도 보지 못하였지만, 여주인공을 하는 사람은 볼 때마다 관심을 끈다..

정유미를 처음 접한 것은 가족의 탄생이라는 영화에서였는데

지금 생각해도 가족의 탄생과 같은 이야기가 한국에서 영화로 만들어지고, 이따금 재방송으로라도 보여진다는 것이 참 신기하다..

그 영화도 시작과 끝을 제대로 보지 않았지만, 부분적으로 여러번 겹쳐본 경험을 회상해보면

가족이란 과연 무엇인가? 에 대한 성찰과 고찰, 묘사가 이루어진 작품이 아니었나 생각된다..

특히 마지막에 그려지는 그 길가는 사람들을 잇는 어떤 선분들이 의미하는 것은

모든 사람들이 잠재적인 가족이라고 말하는 것 같아서, 처음 볼 때의 내 마음에 찬탄을 일으켰었다..

흔히들 곧잘 습관화되는 가족 이기주의를 경험하고 곤란해하던 나로선 공감이 갔던 그 영화에서

정유미는 대책없이 정주는 습관이 있어서 남자애인의 속을 뒤집는 아가씨로 나왔었는데

처음엔 낯익은 배우들의 인상과 스토리텔링을 좇기 바쁘다가, 뒤늦게 느껴지는 그녀의 독특한 여백의 여운이 하도 강해서 그 뒤부터는 그녀가 등장하는 이야기에는 괜히 관심을 갖게 된다..

영화 자체에서 매력을 일으키고 성공하기도 하는 것이 축적되니 그것도 좋은 일이지만

무엇보다도 문명 자체가 인간들의 집단창작이라는 것을 의식할 때에라야

비로소 한민족도 역사 자체에 참여하고 기여한 보람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바둑 분야도 그렇지 않은가?

지금 우리가 두는 바둑은 엄밀히 말해서 일본에서 수입한 일제 게임이다.. 단지 그 분야에 기여하고 참여한 기간이 늘어나면서 성과를 얻고 있지만, 애초에 하나의 문화와 문명으로서 바둑이 어떠한 역할을 할 수 있는 지에 대한 토대적 성찰은 아직도 미약해보인다. 그러니 대체로

일본적인 특성과 현대중국의 기획력의 중간 쯤에서 다만 성과를 유지하고 있는 상황인 것이지

향후 전개될 세계화의 과정에서 바둑분야가 어떤 문명적 기여를 해줄 수 있는지, 또 그 참여와 공헌에 있어

한국사람들이 특히 잘 하고 우선적으로 해낼 수 있는 것인지에 대한 성찰의 토대가 아직 약해보인다..

얼마 전 소개된 관철동 사람들, 같은 프로그램의 속내도 따지고보면, 그러한

단위분야로서의 방향성에 대한 갈구 같은 것으로 추정되는데

그런 점을 생각해보면 역시 또 떠오르는 사람은 문 용직 사범이기도 하다..

뿌리를 튼튼히 하는 일은 단지 업계의 이해관계자들과, 그것의 대외적 소비와 수익창출에 관심있는 외부활동가라는 두 그루핑만으로는 잘 되지 않는다..

무언가 오 청원의 이름에서 연상되는, 바둑 분야에서 성취를 이루고, 또 그러면서도

그 분야자체가 보다 보편적으로 무슨 의미를 가질 수 있는 지를 아는 뉘앙스

그의 이름이 기성이라는 타이틀에 어울리는 어떤 속성 같은 것이, 보편성과 일반성을 갖춘 문명이나 문화로서의 한 분야의 뿌리가 될 수 있는 것 같다..

그런 면에서 문 용직 같은 이가 굳이 은퇴라는 형식을 갖추도록 방치된 상황은 무언가 크게 아쉬운 상황의 상징이 아닌가 크게 아쉽다..

개별분야의 천재는 원래 자꾸 이어지게 마련이다.. 하지만 그 분야가 보다 더 큰 그림 안에서 토대를 튼튼히 하려면, 천재나 장인의 범주를 넘는 역할과 사람이 필요하다..

오 청원의 시대는 바둑 자체로 보면 아직 덤이 없는 시대였으니, 합리성의 뿌리가 약한 시대였는데도

그같은 사유와 창조성의 느낌이 가능했다는 것을 생각하면

향후의 바둑분야의 무대확장과 그 과정에 필요한 토대정립 등을 지금 염두에 두지 않고 단기적 생존에만 너무 급급하다면

21세기 형의 바둑성인은 도리어 서양에서 생겨날 가능성도 없지는 않을 것 같다..

하긴 그것이 꼭이 나쁠 이유는 없지만

기왕에 조 훈현과 이창호, 그리고 이세돌의 맥이 이어지는 상황이라서 그런지

한국이 그런 의미정립 자체에 기여하기를 바라는 마음은

또 하나의 민족이기주의인 것인지도 모르겠다..

제행이 무상하다고 하지만

무상하기 때문에 도리어 의식적 창조성의 발휘는 도리어 그러한 무상함의 내부적 가치가 될 수도 있을 것이라는 막연한 느낌...

모든 순간에 창조성이 공재하고 있다면

모든 순간과 일이 그러한 본연의 의미의 나툼이 될 수 있기가 막연히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