깜박수, 아차수 그리고 파브르의 애벌레

                                                                                                           저니

바둑을 열심히 두는 것과 승리를 한다는 것은 하늘과 땅의 차이이다.

곤충학자 파브르가 애벌레에 대해 한가지 실험을 했다. 소나무를 심은 화분 테두리에

동그랗게 애벌레들을 배열했다. 애벌레는 본능적으로 앞의 애벌레를 따라가는 성향이

있다. "애벌레가 맹목적이지 않다면 배가 고프면 앞에 애벌레를 따라가지 않고 화분에

심어져 있는 소나무에 기어오를 것이다." 하는 가정하에 이루어진 이 실험에서

놀랍게도 애벌레들은 일주일 동안 동료 애벌레를 쫓아가기만 했고 모두 먹이를

근처에 두고 굶어 죽었다.

 
이 실험의 결과를 보면 맹목적으로 노력하는 것이 어떤 결과를 가져왔는가를 단적으로

알 수 있다. 바둑 대국에서도 실력의 차이는 분명하게 있지만, 자신만의 바둑을 둔다는

것이 중요하다. 상대의 의도대로 따라가기만 한다면, 이미 자신의 바둑이 아니다.

자신의 확신에 따라 돌고 있는 화분의 테두리를 벗어나 과감하게 남들과 다른 길을

걸어야 한다.

 
바둑대국에서 이루어진 대표적인 실수가 아차수와 깜박수 이다. 

아차수는 지나간 버스에 무언가 두고 내린 뒤에 느끼는 가슴 철렁함이다. 잘못된 것을

깨달았을 때는 뒤로 돌릴 수 없을 뿐만 아니라 그 손해가 막심해서 대국이 그대로 끝나

버리는 상황이다.

깜박수는 버스에서 잠깐 졸다가 무언가에 놀라 다시 깨어 놀랐을 때의 어리둥절함이다.

다행이 내릴 곳을 지나치지 않았고 설령 지나쳤다고 해도 다시 돌아 올 수 있기에

그 손해도 크지 않고 다시 바둑을 두어갈 기회가 있다.

습관은 무서운 것이라 항상 당연하게 두어지는 수가 경우에 따라서는 악수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잊어버린다. 상대의 손을 따라 둔다는 것 또한 우리를 편안한 16차선

대로의 중간기점이자 종착지인 깜박수와 아차수로 인도하는 결과를 가져온다.

 
두 점 머리, 세 점 머리를 맞고 세력을 얻기를 꿈꾸지 말라. 중앙으로 한 칸 뛰지 않고

상대 세력권에서 벗어났다고 자만하지 말라. 망둥이가 뛴다고 꼴뚜기 마저 뛰어간다면

알토란 같은 실리를 추수하는 농부는 어디에 있겠는가?  선수 해두어야 할 단수는

아끼다가 역 끝내기 당하고 못 먹는 감 찔러둔 수가 자충이 된 일이 얼마나 많은가?

그렇게 해서 생긴 아차수와 깜박수!  그것은 내가 뿌린 패배의 씨앗이 아닌가?

 
변화를 주자! 그것이 나에게 가치와 통찰력을 일깨워 준다.

물론 바둑판에서 전혀 다른 길을 걷다 보면, 처참하게 깨지고 부서질 수 있겠지만,

그리고 그것으로 인해 후회하고 과거 두었던 방식으로 돌아갈 수도 있겠지만,

그런 변화는 나에게도 나의 호적수에게도 큰 즐거움을 줄 것이다.

이것이야 말로 돈 안들이고 롤러코스트를 타고 환타지를 즐기는 것 아닌가?

 
건강으로 논한다면, 아차 하는 순간에 판을 접듯 스스로의 삶을 뒤돌아보고 인연을

거두어 들여야겠지만, 다행히 건강을 회복할 수 있게 되면 형광등의 불이 깜박하고

들어오듯 회생의 불을 밝힐 것이다.  문제는 이런 극단적인 삶과 죽음의 상황보다도

무심하게 매일 같이 지나치는 일상이다.

매일 같이 돌던 일상의 쳇바퀴에서 벗어나 보자.

지금이라도 나와 가정에 깜박했었던 과거가 떠오른다면 거창한 변화가 아니라 작은 미소

하나 지어보자.  처음에는 어색하겠지만, 몇 일 아니 한 달 두 달 동안 단단한 세력으로

이어진다면 아차 할뻔했던 굳어진 근육이 풀어지고 가정에는 화목이라는 실리를

가져오리라고 믿는다.

우린 더 이상 바둑판에서도 가정에서도 파브르의 애벌레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