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원 저 기원 흘러다니던 시절. 평소 가깝게 지내던 선배기객이 한 명 있었다.

일찍이 부인과 사별한 그는 어린자식을 시골 할머니에게 맡기고 떠돌이 기객이 되어

이 곳 저 곳 떠돌며 격랑(激浪)의 세월을 살고 있었다.

그런 그가 어느 날 기원 골방에서 술에 취해 쓰러졌고 결국 깨어나지 못한 채 그 길로 영영 세상을 떠났다. 죽은 그의 옷에서 피우다 남은 담배 한 갑, 천원짜리 지폐 몇 장, 겉옷 안주머니에서 손떼가 묻은 반질반질한 염주(念珠)가 나왔다. 보리수 열매로 만든 염주는 고동색빛깔의 낡고 오래된 염주였다. 난 그 염주를 승부의 염주라 명명했다.

그리고 그 염주가 승부의 염주가 아닌 삶의 염주란 것을 어렴풋이 깨닫기 까지는 그로부터 십 년이란 긴 세월이 흘렀다.

어머니는 늘 부적(符籍)을 가까이 했다.

집안의 장롱이나 잘 덮지 않는 이불속, 구석진 서랍장같은 곳을 뒤져보면 언제나 부적이 한두 장씩 있었다. 그럴때마다 난 미신이라 하며 어머니를 공박했고 배움이 없었던 어머니는 내 공박을 무척 곤혹스러워 했다.

어머니는 그냥 “ 다 너거들 잘 되고 집안이 편하라고 그러는 건데 왜 그리 화를 내느냐 ” 하면서 얼버무렸다.

세월이 흘러 가정을 가지고, 자식을 낳고, 어느 덧 내 삶이 부적에 가까워지고 있을 때

난 불현듯이 어머니를 떠올렸지만 어머니는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다.

위의 글은 제가 10년전쯤에 역수(驛水)라는 제목으로 처음 출간했을 당시 작가서문 중에 일부입니다. 

그 당시 그 서문속에 염주와 부적은 모든 업욕(業慾)을 경계하는 삶의 마지막 보류라 생각했는데 그 사이 세월이 흘러 이젠 그조차도 부질없는것인가 라는 생각이 불현듯 듭니다.

역수가 출판 될 무렵엔 조훈현의 흔적이 아직은 살아 있을 때 였고 그와 더불어 조치훈이라든지 다께미야 혹은 섭위평의 이름도 간혹 바람결에 들려오곤 했습니다.

그러던것이 이젠 이창호마저 이세돌과 그 또래의 기사들에게 승부의 고해(苦海)를 설(說) 하는 것 같아 세월의 섭리(攝理)를 다시한번 되새기게 합니다.

사실 소설 승부는 그들과 더불어 사라져야 할 책인데 이세돌이나 박영훈, 구리가 활보하는 시대에 다시 사이버오로에 연재를 하게 되어 시기적으로는 늦은 감이 있었지만 오로회원님들의 열렬한 성원으로 무사히 끝을 마치게 되었습니다.

목차를 보니 오로의 손 종수 작가님과 인터뷰를 한 게 지난 2월이더군요. 그 후 곧바로 연재를 시작했는데 벌써 가을입니다.

그 동안 책을 애독해 주신 회원님들께 깊이 감사를 드리고 열성독자님들에게는 제가 별도로 이별주라도 한 잔 사야 하는데 그러지 못해 죄송합니다.

늘 건강 하십시오. 회원님들.

또 인연이 있어 다시 만날 날을 기약하며 저는 물러갑니다.

감사합니다. 

조 세래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