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삼이 고가로 돌아온 지 두 해째 나던 가을 최해수와 정명운이 스승의 기일(忌日)에 맞춰 고가에 나타났다.

정명운은 이미 국수 6연패의 찬란한 금자탑을 쌓고 있었다.

명운도 스승이 동삼의 바둑을 무덤 속으로 안고 들어갔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 때문인지 명운이 동삼을 대하는 품세는 예전에 비해 달라진 게 없었다.

비록 벽송을 물려받아 공식적인 계승은 자신이 받았지만 어쩐지 그것은 다 부질없이 생각되었다. 동삼에게서 모든 것을 소유한 자의 여유를 보자 과거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올라 다분히 심란하기도 했다.

스승의 제사가 끝나자 최해수가 뜻밖의 제안을 한다.

「천하의 두 명인이 모였으니 후학들을 위해 명국을 남겨야 하지 않겠는가.」

명운이 긴장한다.

「스승님 앞에 예를 다하시게.」

동삼은 부드럽다.

「하늘에 계신 스승께서도 두 사람의 바둑을 보고 싶어할 것이네.」

최해수가 스승까지 들먹이며 부추기자 두 사람의 가슴속에 서서히 투지가 살아나기 시작했다. 어떤 면에서는 최해수의 그 말은 이 자리에서 누가 스승의 적통을 이어받았는가를 확실히 가리자는 말로 들렸다.

그리하여 젊은 시절 같이 기예를 연마했던, 스승이 만년을 보내고 임종한 그 고가에서 정 국수와 동삼의 마지막 바둑이 두어졌다.

당시 정명운은 국수위 등 여러 타이틀을 석권해 가면서 최고 전성기를 맞고 있었다. 지난번 한·일 교류전에선 일본 중견 기사들을 상대로 5승 1패의 일방적인 우세를 보였다. 최해수의 생각엔 비록 동삼이 강하기는 하나 그 동안 명운이 워낙 체계적으로 발전해 있어서 승부가 될 만하다는 게 그의 판단이었다.

그러나 막상 승부의 뚜껑을 열자 최해수는 이내 자신의 생각이 크게 잘못 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각종 기전에서 단련된 명운의 바둑은 눈에 띌 만큼 향상되어 있었다. 하지만 동삼에겐 역시 미흡했다. 초반부터 동삼의 비범한 포석은 뭔가 모르게 명운을 압도했다. 그리고 중반에 접어들면서 동삼의 눈부신 반면 운영은 단연 압도적이었다.

동삼의 바둑은 필설로 형용키 어려운 미묘한 향기를 뿜고 있었다. 우둔하면서도 날카롭고, 화려한가 싶으면 어느새 고요했다. 치열과 초연이 조화를 이루었고, 기개와 겸양이 판을 흔들었다. 가다가 돌아보면 그의 행마는 어느새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최해수의 가슴이 섬뜩했다.

그제서야 동삼이 내뿜는 미묘한 향기의 정체를 알 수 있었다. 불가사의하게도 동삼의 바둑엔 설숙 스승이 묻어 나왔다. 걷잡을 수 없는 감동이 최해수의 가슴속으로 밀려들었다.

동삼은 덤덤하게 바둑판만 내려다보고 있었다. 어떻게 보면 동삼의 표정은 이제 승부의 굴레를 벗어나 있었다.

하루 반이 지나 명운은 돌을 거두었다.

다음날 최해수와 정명운은 고가를 떠났다.


「고수들의 바둑은 납득하기 어려울 정도로 일정한 틀 속에서 움직일 때가 있네. 한편으론 상상도 못할 방향으로 움직이기도 하지. 고수들은 항상 최선을 다해서, 모든 가능성을 읽은 후에야 움직이네. 일견 평범한 것처럼 보이는 수 밑바닥에는 짐작도 할 수 없는 수읽기와 치밀한 계산이 깔려 있다네.」

박 화백은 뻔한 이야기를 끄집어내는 해봉처사의 저의가 궁금했다.

박 화백이 해봉처사에게 물었다.

「여목 스승을 비롯한 모든 분들이 저마다 바둑을 통하여 기예에 일가를 이루었지만 엄밀히 보면 그 기풍은 조금씩 다르지 않을는지요?」

「당연한 말씀이네. 기풍과 방식의 차이는 분명히 있네. 자네 돌의 생리를 아시는가?」

「…….」

「돌의 생리란 묘하네. 건드리면 강해지네. 마치 해조류에 손이 닿으면 오므라드는 이치와 같은 법이지. 그래서 상대가 어떡하든 건드려 주기만을 학수고대 기다리네. 스스로 보강하면 발이 느릴 뿐 아니라 오히려 약점이 생기기도 하지. 그래서 고수가 될수록 그 주위를 배회하며 쉽게 근접하질 않네. 그러다가 이젠 됐다 싶어 잡으러 가면 때로는 시체가 된 줄 알았던 돌이 벌떡 일어나 맞받아 쳐 오네. 돌의 생리는 그만큼 오묘한 것일세.」

돌에 대한 해봉처사의 논리가 나름대로 명쾌하다.

「여목 대스승은 그 돌에 초연하네. 처음부터 끝까지 시종일관 그 돌을 거들떠보지 않네. 결국 상대는 기다리다 기다리다 지쳐 스스로 자멸해 버리고 말지……. 설숙 스승은 멀리서 그 돌의 주위를 배회하네. 그리고 상대가 우왕좌왕 흐트러지면 그때는 오히려 몸을 돌려 유유자적 그곳을 떠나 버리지. 상대는 스스로 만든 약점에 의해 무너져 버리네.」

박 화백은 흥미진진하게 선대 명인들의 기풍에 대한 해봉처사의 이야기를 경청한다.

「추평사 선생은 정확하고 치밀한, 완벽한 수읽기로 단칼에 일도 양단해 버리네. 상대는 그 완벽한 수읽기에 전율하다가 허무하게 목이 달아나 버리지……. 동삼이라면 어떻겠나?」

박 화백은 바짝 긴장한다.

「동삼도 일단은 그 주위를 서성대지. 스스로를 어쩌지 못하는 상대는 날로 허약해지네. 그러다가 숨도 못 쉬는 압박감에 결국 빈사지경에 이르게 되네. 그제사 동삼은 그 시신을 거두러 가네. 동삼이 갈 땐 시체가 다시 일어선다든지 하는 기적은 영원히 없네.」

동삼은 스승의 산소를 꼬박 3년간 돌보았다.

3년이 지나고 어느 화창하게 개인 봄날 동삼은 마지막으로 스승의 산소에 올랐다.

봄기운을 받아 스승의 무덤에는 파릇파릇 잔디가 돋아났다. 볕이 내리쬐는 양지 바른 곳에 스승은 누워 있었다.

언제나 그렇듯 스승은 말이 없었다. 예나 지금이나 스승은 그저 침묵할 뿐이었다.

(무엇이오니까 스승님…….

무엇이 정녕 사람의 길이오니까.

흙을 빚어 부처를 만드오리까.

이 한 몸 바쳐 성불을 하오리까.

그러나 저는 돌아갑니다.

사람이 사는 곳으로 다시 돌아갑니다.

…….)


「아저씨, 떠나시는 겁니까?」

「그래.」

「다시는 안 돌아오실 거지요?」

「…….」

동삼은 아이에게 문갑 속에 있던 스승의 글씨를 내밀었다.

「이걸 잘 간직하도록 해라.」

아이가 두 손으로 공손히 글씨를 받아 들었다.

「잘 있거라.」

「……예.」

종열이가 서운해하자 동삼은 아이의 머리를 쓸어 주었다.

「사람은 누구나 헤어진다.」

동삼은 아이와 헤어져 삽짝 밖 동리 쪽으로 걸어간다.

지난 세월 젊음과 열정을 다 쏟아 바친 곳, 고가는 한 줄기 미풍 속에 고요히 서 있었다.

동삼과 고가의 사이가 조금씩 멀어져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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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억 포인트 제목 공모 깜짝 이벤트 수상자]

안녕하세요. 사이버 오로 입니다.
민족의 대이동이 시작되었군요. ^^

이제 슬슬 떠날 채비를 하시는 분도 계실 거고 일찌감치 귀향하신 분도 계실 테지요. 모두 모두 풍성한 한가위 맞으시길 빕니다.

약속대로 9월 4일부터 16일까지 ‘승부’의 새로운 제목을 공모하는 깜짝 이벤트의 당선자를 발표합니다. 먼저 뜨거운 호응 보여주신 애독자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정말 많은 분께서 좋은 제목을 주셨습니다.

눈에 띄는 제목도 상당히 있었습니다. 하지만 아쉽게도 현 제목인 ‘승부’ 이상 소설 내용과 색깔을 온전히 담아내는 제호는 없다는데 작가선생과 함께 합의를 봤습니다.

비록 당선작은 선정하지 못하였으나 1억 포인트를 드리겠노라 이왕 약속한 바이니 1등 없는 2등을 뽑아 대신 시상하겠습니다. 가작 스무 분도 뽑았습니다.

1억 포인트를 받을 1등 없는 2등 한 분은 평소 가장 열렬히, 성심껏 격려의 꼬릿글을 달아주신 이쁜바둑돌 님께 드리고자 합니다. 
가작 20분께는 오로볼 5개씩을 드립니다. 오늘 중으로 충전 완료하겠습니다. 더 많은 독자께 일일이 다 드리지 못함을 양해 구합니다.

-사이버 오로.

당선작(1등없는 2등) : 이쁜바둑돌

제목    :  혼의 승부

가작 20명(오로볼 5개)

숑태곤  한돌등대  한솔몽스  청계천별곡  일루얼렁와  ufo2002  당근돼지  검은장미 
민준명인  yongmi  한돌청진  푸른툭눈  한개1EA  totoking  홍풍구  dori124  taigon 

꾹리가아  절담  cdk2002